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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장

유민서는 당황하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작은 얼굴을 머리카락 뒤에 숨기며 억지로 참았지만, 동그란 두 눈에는 여전히 쑥스러운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심경준의 마음도 움찔했고 호흡이 뜨거워졌다. 이때 그의 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심경준은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복도의 벽에 기댄 채, 은주라를 발신자 이름을 보며 씁쓸한 눈빛으로 전화를 받았다. “경준 오빠, 아직도 화난 거야?” 남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은주의 울먹거리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아니.” 남자는 별 정서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김은주는 그의 화가 아직 안 풀렸다는 게 느껴졌다. “그, 그럼 나 만나러 오면 안 돼? 나 정말 오빠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단 말이야…….” 김은주는 얼른 부드럽고 끈적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오늘은 안 돼. 할아버지랑 있어야 하거든.” “할아버지 집에 있어? 그럼 내가 할아버지 집으로 갈까? 전에 나한테 그랬잖아. 할아버지한테 많이 효도 하라고. 그러면 할아버지도 날 받아들일까? 마침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밤떡을 만들었는데. 어렸을 때, 골목길에서 몰래 먹곤 했잖아. 할아버지 몫도 싸갈게. 내 솜씨 좀 맛보게.” 김은주의 말투는 그야말로 현모양처였다. “은주야, 오늘은 불편해서 안 돼.” 김은주가 어릴 적 얘기를 꺼내자, 심경준의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백아연이 지금 여기 있어. 네가 오면 안 좋잖아. 너도 알다시피 할아버지는 박아연을 좋아해…….” “오빠 지금…… 백아연이랑 있어?” 부드러웠던 김은주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응. 할아버지가 며칠째 백아연을 찾았거든. 할아버지 때문에 데리고 온 거야…….” “정말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데려간 거야? 오빠가 백아연을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김은주는 또 울먹거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화가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아니야. 헛생각하지 마. 심경준의 목구멍이 마르면서 씁쓸했다. “그 여자 정말 염치 있는 거야,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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