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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장

두 눈이 마주치자, 주위의 시간이 순간 멈춘 것 같았고 숨소리도 순간 멈추었다. “심 대표다! 정말 심 대표야!” 심경준을 알아본 사람이 말했다. “오, 오빠…….” 심윤혜는 심경준이 여기서 나타날 거라고 예상 못 하고 속으로 당황했다. 그녀는 심경준을 무서워했다. 진미숙이 뒤에서 아무리 그가 못난 사생아라고 욕해도, 지금의 심씨는 심경준의 말을 듣고 있다. “민수야, 일단 아가씨를 데리고 가. 얼른.” 심경준은 아무 표정 없이 분부했다. 이때 몰래 핸드폰을 들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사람이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지체한다면 심씨 가문은 심윤혜 때문에 망신을 당할 것이다. 한민수도 지체하지 않고 아직 어리벙벙한 심윤혜를 끌고 나갔다. 유민서는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차가운 시선을 거두었다. ‘그래, 이게 바로 심경준이지. 한겨울 바람보다 더 냉정한 남자. 그는 옳고 그름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이야. 심씨 가문의 체면만 고려한다고.’ “큰일 났어요! 혀를 깨물었나 봐요!” 임주승이 놀라서 소리쳤다. 유민서도 긴장하더니, 급한 마음에 자기 손목을 직원의 입안에 넣었다. 그러자 직원은 그녀의 하얀 손목을 꽉 깨물었다. 두피가 저릿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유민서는 이마를 찌푸린 채, 움직이지도 않고 그 통증을 참았다. “너!” 심경준의 몸이 흔들리더니, 그녀를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그렇게 자기 몸으로 환자를 살리고 있는 유민서를 쳐다보기만 했다. 연약한 그의 몸집에 마치 무시무시한 박력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이 장면은 심경준을 오랜만에 놀라게 했다. 갑자기 그의 머리에서 비둘기의 연약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때 전쟁터에 있을 때도 비둘기는 이렇게 다친 자기를 끌고 아주 멀리멀리 걸어갔던 거, 같아. ——“포기하면 안 돼! 우리 다 살아남을 수 있어! 꼭 살아남아야 해!” 그리고 숙영지가 난장판이 되자, 그는 비둘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를 끌고 왔던 밧줄에 피가 묻어있는 걸 보았다. ‘그 손, 지금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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