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노을 아래,구름층을 뚫은 노을빛은 너무나도 눈이 부셨다. 심경준은 지쳐서 뒷좌석에 앉았고 차는 효원별장으로 향했다. “대표님,작은 사모님 찌라시 올린 계정들 전부 처리했어요.그리고 계정들 비활성화 시키고 고소장도 넣었어요.콩밥 꽤나 먹어야 할거예요.다만 결혼소식쪽은 인기검색어 순위에서 안내려가서 이거는......좀 힘들거 같아요.”한민수가 난감해 했다. 심경준은 그윽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어는길 내내 여러번이나 백아연한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저번 대화가 안좋게 끝난걸 생각하면 이번에도 또 유진성을 통해야만 그녀와 대화가 가능한거여서 어느정도는 입이 떨어지지 않은것도 있다. 전화를 한다고 한들 그녀가 받으면 뭐라고 할건데?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다고 해야할가? 남자는 입이 떨어지질 않는데 가슴은 커다란 돌덩이에 눌린거마냥 호흡이 가빠왔다. 롤스로이스가 곧 효원별장쪽으로 들어서려는데 심경준은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차세워.” 기사는 브레이크를 밟고 길가쪽에 차를 세웠다. 한민수가 물어보려는데 심경준은 이미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남자를 길을 건너 곧장 오래된 재봉소로 들어갔다. 투명한 옷장안에는 단정하게 만들어진 양복이 걸려져 있었고 윗쪽 간판에는 붓글씨 두글자가 써져 있었다——구념. 심경준은 순간 백아연이 그한테 선물했던 양복포장박스 윗쪽에도 똑같은 두글자가 써져 있었던 기억이 났다. 남자는 건장한 체구로 문을 밀면서 들어가는데 풍경이 올리더니 안에서 재봉장인이 걸어 나왔다. “손님,옷 찾으세요 아님 주문제작하러 오셨어요?” 심경준이 한참 망설이다가 묻는다. “대략 한달전쯤에 어떤 이십대 여자가 여기서 남성 양복 주문제작 하지 않았나요?” “아!네네!어떤 아가씨가 오셨었어요!손이 아주 야무져서 인상 있어요!” 백아연을 떠올리는 재봉장인의 눈에서는 빛이 났다. “그 아가씨 참 디자인에 재능 있었어요.내가 여기 40년 했는데 진짜 그 아가씨보다 못하다니까요!” “그여자 그 사이에......매일 여기와서 옷 만들고 그랬어요?”심경준은 목이 메여서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매일 오전 시간 마춰서 왔었어요.와서는 우리가 퇴근할때까지 만들고 했죠.어떨떄는 아가씨가 지쳐서 책상에서 엎드려 잔적도 많아요.하루동안 물도 안먹으면서 만드는데 어찌 마음 아프던지.” 재봉장인이 떠올리면서 말했다. “내가 아버지한테 줄건지 아님 남자친구한테 줄건지 물어보니까 얼굴이 빨개지면서 애인한테 주는거라 하더군요.그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했을줄 생각이나 했겠어요.누군지는 몰라도 참 복받았어요!” 애인. 이 두글자가 장미줄기에 있는 가시마냥 남자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 “애인 애기 꺼내니까 눈이 반짝거리면서 말이 많아지더라고요.그 아가씨 남편 엄청 사랑하는거 같아 보였어요.안그럼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직접 옷을 만들어 줄수 있겠어요?한땀 한땀 이게 다 정성이 깃든건데.아참,근데 누구시길래?어떻게 아셨어요?” 심경준이 목을 움직이더니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제가 바로 그 애인이거든요.” 재봉장인은 눈이 커져서는 남자를 내리훑었다.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요!” 심경준이 재봉소를 나서는데 석양빛이 남자의 얼굴에 비춰지는데 모든게 꿈만 같았다. 백아연이 그한테 남겨준 꿈같았다. 그여자,설마 남자한테 진심이였을가? 하지만 이 세상에 어찌 너무 이성적이다 못해 어떻게 조현병 걸린 사람마냥 남자랑 있을때는 온세상이 남자였다가 남자를 떠날땐 바로 다른남자로 갈아탈수 있을가? 심경준은 마음이 허전했고 이건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대표님!갑자기 재봉소는 왜요?평소에 명품밖에 안입으시는 분이 언제 취향이 바뀌셨어요?”한민수 이 바보 멍청이 같으니라고 아직 상황파악이 안됐다. “아니야,가자.”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심경준은 오늘만 해도 핸드폰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것만 같았다.이마를 찌푸리고 꺼내 확인하는데 그제서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최가네 도련님 최여준이다. “뭔데?” “오늘 나와.친구들이 축하해줘야지.”최여준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고 어느 정도 비꼬는 말투도 없지 않아 있었다. “뭘 축하해?”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이지.결혼축하 해주는걸수도 있고 아님 이혼축하 해주는걸수도 있고.” “꺼져.” “하하!농담이야 농담.오늘 새로 가게 오픈했는데 와서 좀 놀다가면 안될가?너 나 안찾은지도 오래 된거 알아.너 나한테 식은거야?어떻게 사랑이 변해?” 심경준은 고민하는듯 싶더니 숨을 돌리면서 말했다. “이따봐.” 그날밤,유민서는 주방에서 유진호한테 풍성한 저녁밥을 해주었다. “민서야,너 기름냄새에 예민하잖아.이런 주방에서는 기름냄새가 심하게 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적게 맡는게 낫지.”유진성이 한상 가득 차려진 진수성찬들을 보면서 민서가 걱정되어서 말한다. “괜찮아,어차피 나......” 유민서는 그제야 말이 새나간걸 인지했다.어쩌겠어.오빠랑 있으면 너무 편하니까 아무런 걱정도 없다. “설마!너 삼년동안 매일같이 심경준한테 밥 차린건 아니지?!그놈은 그런거 받을 자격없어!” 유진호는 화가 나서 하마터면 상을 엎어버릴뻔 했다. “별거 아니야.와이프가 남편한테 밥 차려주는게 당연한건데 뭘.근데 이제는 상관없어.그딴거 다시는 해줄일 없어.” 유민서가 통쾌해서 웃었지만 웃음으로는 그녀의 눈에 비친 실망과 슬픔을 가릴수는 없었다. 항상 긍정적이던 유진호가 갑자기 정색하면서 그녀앞에 다가가서는 두팔을 벌려 동생을 소중히 안아주었다. “그 삼년 그냥 개한테 줘버렸다 생각해.앞으로 평생 오빠들이 목숨바쳐 너 아껴줄게!공주마마!” ...... 저녁 아홉시 정각. 최가네에서 새로 오픈한 에이스 클럽에는 여러 재벌들이 모여 들었다.그래도 명색에 유명한 최여준이 오픈한 가게다. 엔진소리가 들려왔고 전세계 리미티드 부가티는 모든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고 남자들은 부러워했다. 조수석에서 유진호가 먼저 내렸고 오늘밤의 그는 캐주얼하게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평소의 엄숙한 검사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훈훈하면서도 고귀함을 잃지 않았다. 이때,운적석쪽의 문이 열렸다. 유민서는 남자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린다.오늘밤 그녀는 아주 섹시한 실버컬러의 미니 원피스를 입었다.불빛아래에서 그녀는 눈이 부셨고 굵은 웨이브 머리와 유니크한 다이아 귀걸이는 그녀를 주인공마냥 화려하게 받쳐주었다. 밖에 서있던 남자들은 눈이 돌아갔다. 유진호는 놀라서 동생을 끌어 안았다. “아미타불,너 오늘 너무 야하게 입은거 아니야?” “왜?안예뻐?”유민서가 눈을 희번뜩인다. “예뻐!너무 예뻐!난 그냥 이 늑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너한테 달려 들어서 너 물어뜯을가봐 무서워서 그래!” “누가 나 물어뜯으면 내가 이빨 뽑아버릴거야.믿지?”유민서가 사악하게 웃는다. 클럽안은 분위기거 너무 뜨거워 아드레날린이 폭발할것만 같았다. 유진호는 감히 동생을 홀에 앉힐수가 없어 룸을 예약했다.그리고는 좋은 술들을 잔쯕 시켜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할만한 아우라를 풍겼다. “여기 들어오니까 잘생긴 남자들이 널리고 널렸던데.나 살짝 오빠랑 온거 후회할가 해.” 유민서가 술잔을 흔들면서 입을 삐죽거렸다. “나 방금 이혼했는데 오빠가 내옆에 있으면 생길 남자도 안생길거 같잖아!” “자,동생.우리 이혼했다고 몸값 떨어지는거 아니야.제발 이런데서 남자 고르지 말아줄래?” 유진호는 그녀옆에 바짝 다가가 앉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민서를 쳐다보는 욕망에 찬 눈빛들을 막을수는 없었다. 한편,이층에 위치한 그나마 조용한 럭셔리 룸안. 최여준과 심경준 두 잘생긴 도련님이 걸어 들어온다. 오늘밤의 심대표는 여전히 도도했고 최여준은 그런 그를 보면서 혀를 내차면서 머리를 저었다. “너 몸에 양복문신 했냐?놀러 나온거 모르는 사람들은 네가 인수하러 나온줄 알겠다.” “지금 서울에 있는 클럽들 모두 다 하락 추세여서 매년 흑자가 나는 판에 여기는 내가 인수할만한 가치는 없지.” 심경준은 우아하게 자리에 앉는다. “하하 남들이 흑자 난다고 나도 그럴거 같아?” “흑자 안난다고?” “흑자 나지.근데 난 괜찮아.어차피 흑자 나봤자 돈이 많거든 하하하하!” 최여준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위스키가 담긴 잔을 들고는 마시면서 아래층을 내려다본다. 그순간 남자가 시선을 고정하더니 소리 질렀다. “존나 예뻐!나이트 퀸처럼 입은 모습이 완전 재벌 같은데!” 심경준은 전혀 여자한테 관심을 가지지도 않거니와 관심도 없는데 최여준이 억지로 보게 만들었다. 안보면 그만인데 한번 보고는 심경준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고 피가 거꾸로 솟는것 같았다! 백아연이였다!진짜 백아연이다!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유......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