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장

술기운을 빌려 그는 모든 분노를 전부 터트렸다. 그는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인내심이 많은 남자였다. 당시 전장을 누비며 몸에 총알이 두 발 박혔을 때도 앓는 소리 한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심 대표가 지금 화를 내는 이유는 내 사람이 당신을 때려서도, 내가 하마터면 총에 맞아 죽을 뻔해서도 아니고 내가 당신을 속였다고 생각해서, 분해서 그러는 거야?” 강서진은 심장이 저려올 듯 아파왔다. 실망이 폐부 곳곳에 치밀었다. 심경훈은 멈칫하며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심경훈, 우린 이미 헤어진 마당에 뭘 그런 걸 신경 써. 아무 의미도 없잖아.” 강서진은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이 화를 내는 이유는 그저 자신의 것이었던 게 이제는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야. 넌 손에 넣었는데 다시 잃은 기분이 싫은 거고, 당신의 통제 하에 있지 않는 그런 기분이 싫은 거, 그뿐이야. 심 대표, 당신 몸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배상에 대해 상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합의를 하겠다고? 좋아.” 눈을 꾹 감은 심경훈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붉어진 눈시울에 살기가 가득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그 사람과는 어떤 관계인지 말해주면 합의하도록 하지.” “안 돼.” 강서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럼 강주원을 떠나 앞으로 강씨 가문과 더 이상 왕래하지 않는다면 합의해 줄 수 있어.” “하, 혹시 꿈꿔?” 뻔뻔하게 선만 넘고 있었다. 입술을 여닫으며 말을 하는 강서진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지만 사람의 정신을 흩트려놓았다. 심경훈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술이 아직 깨지 않은 탓인지 왠지 강서진이 아름답다 못해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는 재벌 가문 출신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아 모든 유혹에 저항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지금…. “됐어. 심 대표는 나와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것 같으니 내 비서를 보내 해결을 하는 수밖에. 방해하지 않을 테니, 푹 쉬어. 난 이만 가보지….” 별안간 강서진의 시야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