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서지수는 가능한 한 빨리 병원으로 달려왔다.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손이 차가울 정도로 긴장됐다.
그녀는 곧장 주현민을 찾았고 다급하게 물었다.
“선생님, 제 엄마 상태가 어때요?”
“일단은 안정시켜 놨지만 수술이 필요해요.”
주현민은 검사 결과가 적힌 서류를 건네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 수술은 위험도가 높은 편입니다. 성공하면 한두 달 안에 의식이 돌아올 확률이 있지만, 실패할 경우 평생 호흡기에 의존해야 할 수도 있어요.”
서지수의 손이 떨릴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주현민은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수술을 하지 않으면 이번 달도 버티기 힘드실 겁니다.”
“해 주세요.”
서지수는 고민할 여유도 없이 결정을 내렸다.
“비용이 얼마나 들든 꼭 살려 주세요.”
주현민은 잠시 머뭇거리다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며칠 안에 최소 10억 원은 마련해야 해요. 상황이 악화하면 그 이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서지수는 순간 멍해졌다.
“10억...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요. 제발 엄마만은 살려 주세요.”
“그럼 우선 수술 동의서부터 써 주세요.”
주현민은 서류를 내밀며 설명했다.
“응급 상황이 생기면 즉시 수술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서지수는 펜을 잡으려 했지만 손이 심하게 떨려 글씨가 잘 써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주현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진수혁 씨께 도움을 요청할 순 없나요? 법적으로는 아직 부부니까, 아무리 그래도 손 놓고 있진 않을 수도 있잖아요.”
서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취업까지 막을 정도라면 돈을 내줄 리 없다고 확신했다. 오히려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또다시 자존심만 상할 게 뻔해 보였다.
서명까지 마치고 어머니 서수민의 병실로 가려던 순간 밖에서 키 큰 남자가 들어왔다. 바로 진수혁이었다. 여전히 귀티 나는 모습으로 서지수에게 흘끗 시선을 주더니 이내 무관심하게 고개를 돌려 주현민에게 물었다.
“수술 비용은 얼마 정도 듭니까?”
“최소 10억은 준비하셔야 할 듯합니다.”
주현민이 한결같이 대답했다.
그 말에 진수혁은 서지수를 한번 바라보고 낮고 단호한 톤으로 말했다.
“따라와.”
서지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수혁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지금 기분이 어때? 후회돼?”
그는 의자에 앉아 특유의 우월한 자세로 서지수를 올려다봤다.
서지수는 그가 며칠 전에도 했던 질문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역시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니. 후회 안 해.”
진수혁은 비웃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고는 그녀 손목을 확 잡아당겨 무릎 위에 앉혔다. 서지수가 깜짝 놀라 일어서려 했지만, 그는 단단히 제압해 버렸다.
“알잖아. 난 순종적인 걸 좋아해.”
그는 한 팔로 허리를 감아 부드럽게 손을 움직였다. 차가운 목소리와 달리 손길만은 은근히 달콤했다.
“네 피부 감촉, 예전부터 참 좋아했거든.”
서지수는 힘껏 몸부림쳤으나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태도 바꿔서 나한테 빌면, 이전 일은 눈감아 줄 수도 있어. 네 엄마 수술비도 책임지고.”
진수혁은 엄지손가락으로 그녀 입술 윤곽을 그리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터치가 서지수에게는 잔인한 전율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