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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딴 남자는 사랑할 수가 없어

진현수는 그녀의 대학 동기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는 지금처럼 양복 차림이 아니라 종일 공부에 찌든 모범생 이미지였다. 남들이 연애할 때 그의 눈엔 오직 공부밖에 없었다. 훤칠한 키에 출중한 외모를 지녀 연애편지도 수없이 받았지만 아무도 그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성시연이 말하지 못할 비밀은 바로 진현수가 그녀에게 대시한 일이다. 물론 그녀도 거절했지만 말이다. 그때 성시연에겐 강찬우 말고 딴 남자가 눈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를 짝사랑하고 또 그와 오랜 시간 ‘애틋한 관계’를 이뤄왔기에 딴 남자는 사랑할 수가 없었다. 몇 년 만에 진현수를 만난 그녀는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여기가 진현수네 집인 걸 알았다면 피아노 알바가 조금 망설여졌을 텐데... 한편 진현수는 그녀처럼 쭈뼛거리지 않았다. 마치 그해 일을 까맣게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나 여기 살아. 전엔 전혀 몰랐지? 친구가 피아노 선생님을 소개해줄 때 네 이력서를 보면서 동명이인일 줄 알았는데 정말 너였네? 내 동생 조금 난폭해. 앞으로 주말마다 신경 좀 써야 할 거야. 그럼 수고해줘.” 진현수의 해맑은 눈빛을 마주하며 성시연은 자연스럽게 귀밑에 흘러내린 긴 머리를 뒤로 넘겼다. 거절하려던 말은 좀처럼 입밖에 튀어나오질 못했다. “괜찮아,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세 시간씩 레슨하면 시급으로 10만 원을 벌 수 있다. 이 금액이면 그녀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지금 유일하게 거부하지 못하는 게 바로 돈이니까. 레슨을 마친 후 진현수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미처 거절할 이유를 찾기도 전에 이 남자가 또다시 그럴싸한 핑계를 둘러댔다. “밖에 곧 비 와. 너 비 맞으면서 집에 갈 순 없잖아.” 그는 말할 때 늘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어 보는 사람까지 마음이 흐뭇해진다. 차에 탄 후 진현수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건넸다. “카톡 추가하자. 나중에 카카오 페이로 이체하게. 너 오기 전까지 저 녀석 집에 오는 피아노 선생님들 죄다 쫓아냈거든. 이제야 드디어 시름 놓을 수 있겠네.” 성시연도 머뭇거리지 않고 카톡을 추가한 후 고마움을 표했다. 두 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그해 일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서로의 근황만 가끔 물었다. 곧이어 차가 강씨 저택 대문 앞에 도착했다. 그제야 하늘에서 비가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고요한 정적도 빗소리에 뒤덮였다. “시연아, 왜 난 안 되는 거야? 그게 항상 궁금했어.” 이제 막 차에서 내린 성시연은 그의 말이 잘 안 들려 의아한 듯 물었다. “뭐라고?” 이에 진현수가 웃으며 답했다. “아니야, 아무것도. 얼른 들어가, 비 맞을라.” 그녀는 지붕 아래에 서서 멀어져가는 진현수의 차를 묵묵히 바라봤다. 방금 잘 안 들리긴 했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단지 못 들은 척 외면했을 뿐이다. 그녀 같은 사람은 진현수에게 가당치 않으니까. 비가 점점 거세지자 성시연은 종종걸음으로 집안에 달려갔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는데 진현수가 카카오 페이로 송금한 알림음이었다. 그녀는 그 돈을 받고 아무런 답장도 없으면 무례한 것 같아 예의상 짤막한 문구를 보냈다. [비 내려서 길이 미끄러울 거야. 안전 조심해.] 이때 문득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자 강찬우의 음침한 눈빛과 마주쳐버렸다. 일찌감치 돌아온 강찬우는 금방 씻었는지 은은한 바디워시 냄새를 풍기며 넉넉한 홈웨어로 갈아입었는데 평소보다 한결 온화해진 모습이었다. 그녀가 무심코 질문을 건넸다. “식사했어요?” 강찬우는 아무런 대답 없이 오히려 그녀에게 되물었다. “누가 바래다줬어?” 성시연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대학교 친구가요.” 그녀는 아르바이트하는 걸 애초에 숨길 생각이 없었다. 숨겨봤자 강찬우는 그녀가 일부러 티 낸다고 생각할 테니까. 이때 강찬우가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꽉 잡고 앞으로 잡아당겨 오더니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 “알바로 피아노 가르치는 것 말고 또 뭐가 더 남았어? 돈이 그렇게 궁해? 아니면 알바하는 핑계로 돈 많은 사람 만나고 싶은 거야? 나 하나론 만족 못 해? 꼭 너희 엄마처럼 천하게 굴어야겠어?! 천한 건 태생이라 고칠 수 없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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