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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죽은 목숨

성시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러다가 길 옆에 서 있는 서유천을 발견하고 의아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서유천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말했다. “달 보러 왔어.” 기분이 잡친 성시연은 그가 일부러 따라왔다는 걸 알았지만 그와 얘기 나눌 심정이 아니었다. “천천히 구경하세요. 저 먼저 가볼게요.” 서유천은 여유작작하게 그녀 뒤를 따랐다. “진짜 사람 마음 몰라주네. 위험할까 봐 따라온 거지. 내 집에 세를 든 사람인데 사고라도 나면 내가 책임져야 될 거 아니야.” 성시연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지금은 그쪽이 저한테 가장 위험한 존재예요! 세입자를 따라다니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서유천은 할 말이 없어 웃기만 했다. “그래, 그래. 내가 변태지. 앞으로 나 조심해.” 그 후로 김민기는 일주일 내내 성시연한테 문자를 보냈다. 이런 작은 마을에 있지 말고 자기와 같이 해주시로 가자는 등, 그녀의 삶을 책임진다는 내용이었다. 김민기가 입은 옷들이 명품이고 손목에 찬 시계로 그가 성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시연은 그의 재물을 탐할 생각이 없었다. 강씨 가문에서 자라며 누릴 건 다 누렸었다. 그녀는 돈과 재물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성시연은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지만 김민기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밤낮 가리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김민기는 떠나는 날까지 그녀한테 문자를 보내고 작별 인사를 했다. 하지만 성시연은 여전히 답장하지 않았다. 마을 병원의 일은 매우 여유로웠다. 도시의 빠른 템포에서 벗어나니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여생을 여기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유일하게 힘든 건 불시로 떠오르는 강찬우와의 추억이다. 그때마다 커다란 물결이 잔잔한 마음을 뒤집었다. ‘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정적을 깨뜨린 건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오전이었다. 성실하고 착해 보이는 남자가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고 성시연이 일하는 병원에 왔다. 남자는 마침 성시연의 사무실에 들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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