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강다인은 자리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아직도 내가 예전의 강다인인 줄 아는 거야?’
단 한 번도 그녀의 의견을 묻지 않고 단지 과거의 일을 없던 걸로 치자며 넘기는 이 태도, 마치 그것이 그녀에게 큰 은혜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모습이 정말 역겨웠다.
이제 그녀는 그러한 제안이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강별은 마음에 찔려 강다인의 시선을 피하며 불안한 표정으로 강서준을 바라보았다.
강서준은 집안의 가장으로서 말을 이었다.
“다인아, 이번 경기를 통해 네 실력을 모두가 봤어. 앞으로 이 팀에서 너를 대신할 사람은 없을 거야.”
이렇게 말하면 강다인도 안심하고 받아들일 거라 믿었다.
김지우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녀는 몹시 불만스러웠다.
‘난 그토록 열심히 했는데, 왜 강다인은 이렇게 쉽게 내 자리를 차지하는 거야?’
비록 재능은 없었지만 노력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강별 역시 기대 어린 시선으로 강다인을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강다인이 팀에 합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 정도로 양보했으니, 이제 더는 고집부리지 않겠지?’
하지만 강다인의 대답은 단호했다.
“거절할게.”
강별은 당황해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번 경기에 참여한 건 상대 팀이 부모님을 모욕했기 때문이지, 팀에 합류하고 싶어서가 아니야.”
“그럼 뒤에서 몰래 연습한 건 뭐야? 그거 결국 팀에 들어오려고 준비한 거 아니야?”
강다인의 실력이 갑자기 이 정도로 향상될 리가 없었다. 언제든 팀에 들어오려고 분명 뒤에서 몰래 연습했을 것이다.
강별은 강다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강다인의 희고 맑은 얼굴에는 차가운 냉소가 어렸다.
“아니.”
강별의 마음이 순간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물었다.
“그럼 내가 너한테 직접 사과해야 용서할 거야?”
강다인은 발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세상에 강인 크루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이 말 속에 담긴 뜻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했다. 그녀는 경기를 사랑했지만 강인 크루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다.
갑자기 김지우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다인 언니, 내가 미워서 그러는 거 알아!”
모두의 시선이 김지우에게 쏠렸다.
김지우는 강다인에게 다가가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별이 오빠는 정말 언니가 팀에 들어오길 바라고 있어. 내가 방해된다면, 당장 팀에서 나갈게. 절대 언니와 경쟁하지 않을게!”
강다인은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닥치고 조용히 해. 내가 팀에 안 들어가는 건 내 선택일 뿐이지, 누구 때문도 아니야. 괜히 잘난 척 나대지 마.”
“나도 알아. 언니가 아직도 나한테 화난 이유, 내가 주제도 모르고 언니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잖아. 나는 그냥 언니가 버린 기회를 주었을 뿐이야. 열심히 노력해서 내 실력을 증명하고 강씨 가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부족했나 봐.”
김지우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지만 강다인의 눈빛에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그녀는 김지우가 또다시 사람들의 동정을 유도하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강서준은 김지우의 말을 듣고 그녀를 다독였다.
“지우야, 너 때문이 아니야. 다인이가 마음 상한 건 별이 잘못이야.”
잠자코 있던 강별은 그 말을 듣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는 김지우가 불쌍한 척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별다른 감정이 일지 않았다. 오히려 김지우를 팀에 넣은 것에 대해 후회가 밀려왔다.
김지우는 그냥 착한 동생으로만 남는 게 딱 어울렸다. 함께 일하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강별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김지우는 결심을 굳히고 갑자기 눈썹칼을 꺼내 손목에 가져다 댔다.
“내가 죽으면 이제 더 이상 언니랑 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람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강다인은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진짜 미친 건가? 내가 팀에 들어가지 않는 게 도대체 김지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김지우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바로 강다인이 팀에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는 자해까지 하며 억지로 끌어들이려 하다니, 정말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강별도 깜짝 놀랐다.
“지우야, 일단 진정해. 이 일은 너랑 상관없어.”
김지우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별이 오빠,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처음부터 다인 언니가 버린 기회를 잡지 말아야 했어요. 그랬다면 언니도 화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동안 강씨 가문에서 살아서 정말 행복하고 고마웠어요. 그러니까 전 죽어도 행복해요!”
강별은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원래 김지우에게 약간의 불만이 있었지만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강서준은 급히 강다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인아, 정말 지우가 다치게 내버려둘 거야?”
강별은 김지우의 행동이 다소 과하다고 느꼈지만 강다인이 팀에 들어오겠다고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결국 강다인이 고개만 끄덕이면 끝날 일이었다.
강다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혹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강서준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뜻이야?”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팀에 들어가지 않는 건 내가 원하지 않아서야. 누구 때문도 아니라고. 그리고 김지우가 자해로 날 협박하는 건, 내가 자해로 킹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거랑 뭐가 다른데?”
강다인의 조소가 담긴 말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그럴싸한 논리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강별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래도 지우는 우리 가족이잖아.”
비록 김지우의 게임 실력은 형편없고 책임감도 부족했지만 그래도 어린 동생일 뿐이었다.
강다인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김지우가 자해를 하든, 자살을 하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그러니까 억지로 나한테 책임 전가하지 마.”
“강다인, 지우 아버지가 네 목숨을 구해줬잖아! 그런데 넌 어떻게 지우한테 이럴 수가 있어?”
강별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강다인의 뺨을 때리려 했다.
강다인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설마 강별이 자신에게 손을 대려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강하늘을 제외하면 다른 오빠들은 한 번도 그녀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다행히 그 손길은 강다인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이석훈이 옆에서 재빨리 강별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싸늘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제 두 번째 폭행 사건에 해당합니다. 미성년자 보호법에 따르면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강다인은 그를 쳐다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엔 왜 온 거지?’
강별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쪽이 뭔데? 이건 우리 가족 문제라고. 그쪽이 참견할 일이 아니야!”
강서준은 이석훈을 알아보았지만 그가 여기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석훈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요? 그럼에도 내가 나선 걸 보면, 당신들 행동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겠죠?”
그의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이들이 또다시 강다인에게 손을 댔다는 사실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강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변명하듯 말했다.
“이석훈 씨, 오해예요.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라요.”
“뭐가 다르죠? 실력 없는 가짜 여동생이 설치다가 사라지고 진짜 여동생이 나서서 경기에서 이겼잖아요. 상대 팀으로부터 사과까지 받아냈는데, 그런 동생을 때리려고 하다니, 정말 부끄럽지도 않아요?”
강서준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강다인에게 말했다.
“다인아,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나는 그저 지우가 다치는 걸 막고 싶었던 거야.”
강다인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미소라고 부를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석훈은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가짜 여동생이 다치는 게 두려워서, 진짜 여동생을 다치게 한다? 어이없는 논리네요.”
강서준은 더욱 큰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는 강별을 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강별! 당장 다인이에게 사과해! 누가 너더러 함부로 손대래!”
강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는 머뭇거리며 손을 슬며시 감추고 시선을 회피했다. 자신이 정말로 손을 올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강다인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너도 말을 심하게 했잖아. 그래서... 그래서.”
강별은 자신도 왜 이렇게 화를 억누르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망설임 없이 손을 올렸다. 예전처럼 그녀에게 함부로 말하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가 얼마나 과하게 굴어도 강다인은 항상 묵묵히 참아주었다. 이번에도 별다를 것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앞으로는 이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뺨을 맞았더라도 그 고통은 그녀의 마음속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차가운 냉소가 서려 있었다.
“그래서?”
강다인은 이제야 자신이 과거에 강별의 화풀이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그녀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사과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그 말을 남긴 이석훈은 강다인의 손을 잡고 강별의 뺨을 단호하게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