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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장

”나 지금 네 집 앞에 있어.” 주한준은 나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남진아, 지금 당장 돌아와.”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주한준은 전화를 끊었다. 말하는 말투는 늘 그렇듯 거침없는 말투였다. 파티에서 병풍이 되었던 임지아를 떠올리면 이해는 됐다. 아마 주한준은 금쪽 같은 애인을 위해 화풀이를 하러 온 게 분명했다. 오늘 일은 오늘에 마치겠다는 심산으로 나는 평온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라면 언젠간 마주해야 했다. 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집 문 앞에 기대 있는 주한준을 보자 그래도 마음속에 의아함이 스쳤다. 그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피곤한 얼굴로 문에 기대 있었다. 좋은 질감의 양복과 넥타이는 이미 풀어서 팔에 걸치고 있었고 상의는 흰 셔츠 뿐이었다. 얌전하게 잠겨 있던 옷깃은 풀어헤쳐져 하얀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어두운 불빛의 복도에 그의 정교한 이목구비가 더해지자 왠지 모를 아련함이 느껴졌다. 파티에서 화려하게 빛을 내던 영한 그룹의 대표 이사와는 전혀 달라보였다. 어쩐지 지금의 나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나는 별안간 어떻게 인사를 건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내 존재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슬쩍 눈꺼풀을 들어올린 주한준은 검은 눈동자를 드러냈다. 서로 시선이 마주치고, 주한준의 질문이 들렸다. “아예 더 늦게 오지, 왜?” 원래도 목소리가 조금 낮은 편이라 엄숙할 때면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지만 소리를 조금 낮추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온화함이 느껴졌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나는 차키를 움켜쥔 채 담담하게 말했다. “이 늦은 시간에 저한테 무슨 볼일이시죠?”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더니 내 손으로 향했다. 이내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엄겨울에게 잘보이겠다고 남 팀장 꽤 심혈을 기울이고 있네.” 주한준이 보고 있는 건 내 차키였다. 주한준도 차종이 같다는 것을 알아차린듯했다. 나는 차키를 흔들며 평온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면, 여기에 주 대표님의 공도 있는 걸요.” 주한준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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