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이를 본 성 비서는 바로 와서 열쇠를 받아 기사 업무를 도맡았다.
안소희는 조수석의 문을 열어 차에 탔고, 나영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성 비서는 안소희가 또 뭔 폭탄 발언을 할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모님, 저기……”
“운전해요.”
안소희는 담담하게 답했다.
성 비서는 백미러로 자신의 상사가 별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차에 시동을 걸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가는 내내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성 비서는 차 안의 저기압때문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였다.
하필 사장님과 사모님은 모두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둘은 모두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장님은 원래 성격이 그래서 그렇다 치더라도,
왜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사모님마저 저 지경인지!
성 비서는 맘 속에 고충이 많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영재는 뒷 좌석에 앉아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조수석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안소희에게로 향했다. 눈가에는 그 자신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감정의 동요가 생겼다.
30분 뒤,
차가 병원 입구에 멈췄다.
나영재는 크고 힘있는 손으로 안소희의 손목을 잡고 입원부의 vip 병동으로 향했다.
“나사장님.” 잡혀있는 손목에 통증이 느껴지자 안소희는 참지 못하고 비꼬듯이 얘기했다. “이렇게 부서지듯 잡으면, 내 죄가 정해지기도 전에 그쪽의 고의상해죄가 먼저 정해지겠는데.”
이 말을 듣고서야,
나영재는 잡고 있는 손을 놓아주었고, 눈길이 닿은 그녀의 하얗던 손목에는 빨갛게 자국이 남아버렸다.
안소희는 그에게 맘에 안든다는 불쾌한 눈빛을 보냈다.
나영재는 그녀의 눈길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마음 속에는 조금 미안한 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미안함은 안소희가 이 모든 사단의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니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따라와.” 그는 눈길을 돌려 긴 다리로 허가윤의 병실까지 성큼성큼 걸어가 병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병상에 반쯤 누워 있던 허가윤은 나영재를 보자마자 얼굴에 미소를 보였고, 한없이 다정하게 "영재 씨."라고 부르는 목소리에서 그녀가 나영재에 대해 얼마나 깊이 의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영재는 얼른 걸어가 그녀을 다독였다.
안소희는 마침 이 순간에 병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서로 죽고 못사는 듯한 둘의 모습을 보고는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제가 자리라도 비켜줘야 하는거 아니에요? 당신들이 외도를 끝까지 마칠 수 있게?”
“소…… 소희 씨…… 오해하지 말아요. 저와 영재는 결백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에요.” 안소희를 본 허가윤은 갑자기 긴장하여 애써 해석할려고 했다.
안소희: “?”
안소희는 별로 감정 기복 없이 의미심장하게 얘기했다. “그 사람 잡고 있는 손이라도 놓고 얘기하면 그 말에 좀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네요.”
말하는 사이, 그녀는 병상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녀는 허가윤의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온화하고 친절하며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연약한 모습,
이것이 바로 허가윤이 그녀에게 준 첫인상이였다. 어쩐지 나영재가 죽어도 못 잊더라니.
“영재 씨……” 나영재를 잡고 있는 허가윤의 손에 서러움이 더해졌다.
이 모습을,
마침 안소희가 봐버렸고,
맘 속에는 비웃음이 더 한층 더해졌으며, 허가윤의 얕은 수를 이미 다 꿰뚫어보았다.
허가윤은 단지 안소희가 말괄량이처럼 막무가내로 병실에서 난동이라도 피워, 나영재의 분노를 자극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영재는 허가윤이 안소희가 자신을 난처하게 할가봐 두려워하는 줄 알고, 손으로 그의 등을 토닥토닥하며 그녀를 안심시켰고,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괜찮아, 내가 여기 있어.”
“나영재.” 안소희는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나 아직 여기 있어.”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으로 눈 앞에서 외도를 하다니,
정말 날 만만하게 보는 건가?
나영재는 못 들은 척 계속하여 허가윤의 기분을 진정시켜주었다.
“성 비서님, 언제까지 보고 있을거에요?” 안소희는 곁눈질로 문밖을 한번 훑어보았고, 이미 분노에 차 있었다.
성 비서는 문을 열고 들어왔고, 안소희가 어떻게 자신을 발견한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모님.”
“성 비서님, 휴대폰으로 사장이 다른 여자랑 좋다고 놀아나는 화면을 좀 찍어두세요.” 안소희는 아주 침착하게 얘기했다. “NS그룹 사장이 풍기문란을 일으키고, 혼인 존속 기간에 외도를 했다는 기사가 뜨면 NA그룹의 주식이 과연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아주 궁금하네요.”
성비서: “!!!”
사모님, 왜 저한테 이런 시련을.
“영재 씨……” 허가윤은 낯색이 창백한 채로 나영재의 손을 놓았다.
“안소희, 너 계속 그렇게 떠들거야?” 나영재는 분위기가 갑자기 차가워졌으나 여전히 허가윤의 등을 토닥이며 그를 안심시켜주었다. “난 허가윤한테 사과하라고 여기 데리고 온거야.”
안소희는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며 말했다. “난 또 나더러 당신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라고 부른 줄 알았지.“
이 말을 뱉자마자,
병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내가 이걸 당신 어머니한테 보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안소희는 휴대폰을 클릭하여 동영상을 저장하고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나영재의 눈가에는 화가 더해졌다.
안소희는 그의 얼굴을 보며, 냉랭함이 가득한 그의 얼굴도 여전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날 협박하는거야?”
“농담이야. 난 그저 둘의 모습이 예쁘길래 방금 찍은 화면을 캡처하고 프린트해서 귀신을 물리치는 용도로 사용할려고 했지.” 안소희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시선은 둘에게 머물렀다. “근데 지금 정말 이런 식으로 나랑 얘기할거야?”
나영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 태도는 마치 "네가 뭐라고 하던 난 허가윤의 옆에 있을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안소희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무도 그녀가 뭘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오직 성 비서만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그의 직감은 그에게 사모님이 뭔가 사단을 낼거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은 역시,
그의 예상이 맞았음을 증명해주었다.
안소희는 성 비서 옆으로 다가와 그의 팔을 당기며, 아까와 별 다를바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 얘기 있으면 어서 해. 애기 끝나면 난 성 비서와 또 따로 해야 할 말이 있거든.”
성비서: “!”
그는 다급하게 “사장님, 전 사모님과 절대 결백해요. 절대 사장님께 미안한 일은 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고, 평소의 침착함은 전혀 찾아볼 수 가 없었다.
“뭘 그렇게 조급해해요?” 안소희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을 진정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무슨 남자가 여자인 가윤 씨보다도 못해요, 봐봐요, 가윤 씨가 얼마나 차분한지.”
성 비서: “......”
나영재: ”......“
허가윤의 눈가에 한순간 사악함이 돌았다.
나영재는 성 비서의 팔목을 잡고 있는 그 손이 아주 눈에 거슬렸다.
“성진영.” 성 비서를 부르는 나영재의 목소리에 경고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성 비서는 안소희가 잡고 있는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빼낼 수가 없었다!!!
당황함이 역력한 얼굴을 한 성 비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덤덤한 사모님을 보고는 눈 앞에 수많은 물음표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사모님이 왜 이렇게 힘이 세지!
“사장님……” 성 비서는 당장이라도 울 지경이였다. “저랑 사모님은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정말 결백해요.”
나영재 주변의 기압이 점점 더 낮아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영재는 베개 하나를 꺼내 허가윤의 등 뒤에 받쳐주었고, 그 순간 자기 손도 같이 치웠다.
안소희는 살짝 눈썹을 찡긋하더니 본인도 성 비서에게서 손을 떼고 의자를 찾아 앉았다.
성 비서는 마치 죽다 살아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사람의 행동이 이토록 일치한 것을 눈여겨 본 허가윤은 이불 안에 있던 손을 자기도 모르게 꽉 쥐었다.
“우리 영재 씨가 그러는데, 가윤 씨가 제가 사람을 고용해 일부러 차사고를 냈고 증거도 있다고 그러던데요.” 안소희는 호칭까지 바꾸고는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그 증거 저한테 보여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