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장

하지훈이 마음대로 안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반항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이번에 사람을 볼 때 겉모습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이 남자는 평소에 매우 점잖고 금욕적으로 보이지만 침대에서는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이튿날, 나는 갈증에 잠에서 깼는데 눈을 떠보니 하지훈은 이미 없었다. 어수선한 침대를 보면서 어젯밤 그 남자의 독기가 떠올라 나는 마음속으로 분하고 슬펐다. 나는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와 물을 따라 마시려고 했지만 발이 땅에 닿자마자 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비참한 몰골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하지훈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지금 통화를 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아마도 그의 여신인 것 같았다. 그의 미간에는 보기 드문 부드러움이 어려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바닥에 앉아 있는 나를 담담하게 흘끗 보았는데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나는 난감하게 침대 위의 이불을 당겨 몸을 덮었다. 그는 가볍게 비웃고는 옷걸이에 있는 양복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가며 시종일관 그는 나를 별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카펫을 후비며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참았다. 하지훈이 떠난 후 나는 시큰시큰한 몸을 이끌고 욕실로 가서 샤워했지만 그래도 온몸에 힘이 없었다. 물을 많이 마셨는데도 목이 너무 아팠고 열이 나는지 몸이 더운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의 도박 빚이 떠오른 나는 재빨리 꺼진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보려고 했다. 휴대전화가 켜지자 수많은 부재중 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한밤중에 걸려온 것도 있고 오늘 새벽에 걸려온 것도 있었다. 어젯밤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는 하지훈의 번호였는데 여러 통을 연달아 걸었었다. 그 시간은 바로 내가 변태남에게 쫓기고 있을 때였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문득 한 가지 문제가 떠올랐다. ‘그래, 어젯밤 하지훈이 왜 갑자기 그 골목에 나타났지?’ 어젯밤 나는 두려움과 분노로 정신이 없었고 하지훈으로부터 한밤중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