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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6화 소성의 조건

하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소성이 부시혁의 어머니 얘기를 꺼냈을 때의 반응이었다. 그 그리움은 연기 같지 않았다. '소성이 아직도 어머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건가?' 하지만 사랑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부시혁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이미 그녀를 배신했다. 지금 죽은 사람을 두고 애절한 척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감동하는 것뿐이었다. 남이 보기에도 정말 토가 나올 정도로 가식적이었고 꼴 보기가 싫었다. 윤슬이 생각하고 있을 때 소성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엄지손가락의 반지를 돌리며 미안한 표정으로 윤슬한테 웃었다. "죄송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자꾸 옛날 생각이 나네요. 젊은 사람은 그저 제가 시끄럽다고 생각하겠죠?" 윤슬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요. 하지만 우선 본론을 말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이 말은 즉 시간 낭비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윤슬은 소성의 과거에 대해 전혀 알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 반감을 느꼈다. 소성이 그녀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웃고 있지만 그의 눈빛은 냉정하기만 했다. 그는 옆에 있는 이 비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 비서는 어디서 팔 만큼 긴 지팡이를 가져와 공손하게 소성한테 넘겨주었다. 소성은 지팡이를 받고 땅을 짚었다. 그리고 두 손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지팡이를 짚은 소성의 몸에서 드디어 한 가문의 집권자 모습이 보였다. 방금 온화한 분위기와 달리 그는 상위자의 기세로 윤슬을 마주했다. 이게 바로 소성이 다른 사람과 거래할 때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윤슬은 이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속으로 더 경계하기 시작했다. 소성이 갑자기 본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진지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그녀도 더 이상 방심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윤슬과 소성은 비교가 안 되었다. 소성은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고 또 한 가문을 책임진 지 십여 년이 되었다. 그는 교활한 여우 같은 남자였다. 윤슬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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