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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장

변해길은 야경이 예쁘기로 유명한 명소였다. 넓은 아스파트길 양측에는 환하게 가로등이 밝혀져 있어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 같았다. 쭉 뻗은 길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서정희는 차 창문을 내리고 바닷바람을 맞았다. 차가운 바람이 목을 타고 들어오자 심장까지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전아영은 핸들을 붙잡으며 말했다. “감기 조심해.” “아주 잠깐만 맞고 있을래.” 서정희는 양손을 차창문에 올리고는 머리를 팔뚝에 기댄 채 두 눈을 감고 자유로운 바람을 만끽했다. “아영아, 나 결정했어. 나 죽고나면 내 유골은 바다에 뿌려져.” 전아영은 별안간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길가에 세웠다. “정희야, 야밤에 그런 농담하는 거 아니야. 하나도 안 웃겨.” 차문을 연 서정희는 차에서 내려 바다 내음 풍기는 바닷바람을 마셨다. “원래는 본가를 사와서 너에게 날 우리집 마당 매화나무 아래에 묻어달라고 하려고 했어. 어디서 왔으면 어디로 갈 수 있게. 어차피 나와 술을 우리 아빠는 평생 보지 못할 테니까. 근데…” 거기까지 말한 서정희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런데 그럴 기회를 안 주네. 됐어, 어차피 죽으면 다 한 줌 재가 되는 걸. 어디에 묻히나 다 똑같지 뭐.” 전아영은 이미 서정희를 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똑같아? 너희 본가에 묻으면 적어도 네가 보고싶을 때면 인사하러 갈 데라도 있지, 널 바다에 뿌리면 널 보려고 내가 용왕한테 구슬까지 얻으러 가야 해?’ 서정희는 전아영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넌 말이야, 참 보물이야.” “정희야, 봐. 웃으니까 얼마나 예뻐. 자주 웃어주면 안 돼?” “그래.” 서정희는 입꼬리를 활짝 올렸다. “사실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많은 것들을 제대로 알아보게 됐어. 인생도 그런 것 같아. 무언가를, 누군가를 원하면 원할수록 더 손에 넣기 힘든 것 같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한때 진심으로 한 사람을 사랑했었고 또 오직 글속에나 존재하는 감정들을 실제로 느끼기도 했었더라고. 이제는 바람에 따라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아.” 전아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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