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5장

“아버지, 목소리가 아직도 이렇게 크신 것을 보니 저도 한시름 놓겠네요.” 염성진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정확히 들려왔다. 요 몇 년 동안 올 때마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바람에 체면이 중요한 염성진은 그 후로 다시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같이 강한 그의 태도에 문을 지키던 경호원도 그를 막지 못했다. 염성진의 어르신의 유일한 혈육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르신이 언젠가 다시 아들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아무도 함부로 그를 대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염성진뿐만 아니라 전화정과 염승하, 가족 전부를 다 데리고 염씨 집안에 나타났다. 서정희는 밥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안쪽으로 들어오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앉아 있는 서정희는 이 자리에 있는 자신과 심여정이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은 것인지 아니면 염성진의 가족들이 주제넘게 나타난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심여정은 서정희가 숟가락을 내려놓은 것을 보고 한마디 했다. “더 먹어. 쓰레기 같은 인간들 때문에 기분 상하지 말고.” 내연녀까지 집에 찾아왔지만 심여정의 얼굴은 더없이 차분해 보였다. 몇 숟가락 더 뜬 서정희는 지금 이 상황이 염씨 집안의 윗분들의 원한일 뿐이지 염씨 집안으로 시집온 그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때, 전화정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손에 쥔 예쁘게 포장된 박스를 어르신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버님, 우리 승하가 할아버지가 차를 즐겨 마시는 것을 알고 직접 공수해 온 거예요. 제가 차 한잔 우려서 따라 드릴게요.” 그러자 어르신은 바로 손을 들어 전화정이 건넨 포장 용기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옆에서 보고 있는 서정희는 그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포장만 봐도 비싼 이 차는 분명 그 가격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싼 차를 염씨 집안 내연녀가 가져왔다고 생각하면 서정희는 그 차를 밟아 찌그려 놓지 못하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우리 염씨 집안에 마실 차가 없겠어? 이런 쓸모없는 물건으로 내 환심을 사려는 거야? 너는 어떻게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