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3장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 오래동안 묵혀뒀던 어두운 감정들이 너무 많았다. 분명 지금 이 시기의 서정희는 아직 허약해 크게 슬퍼하지도, 크게 기뻐하지도 못하고 그 어떤 자극도 받아서는 안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염정훈은 서정희가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터지는게 더 두렵게 느껴졌는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후련하게 털어내도록 했다. 그렇게 서정희는 한참을 울었다. 목소리가 잠겨버리고 끓은 다리와 발의 감각을 상실할때까지, 그래서 더이상 눈물이 단 한방울도 나오지 않을때까지. 염정훈의 품에 안긴 서정희는 낮게 흐느끼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으로 그녀의 등을 포근하게 다독여준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안정을 되찾은 서정희를 바라보던 염정훈은 그제야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서정희의 슬픔이 힘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염정훈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죽느니 사느니 하며 소란을 피울때가 아니다. 이건 배후세력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살아가야만 한다, 이 악물고 살아내 자신이 감내한 고통을 백 배, 아니 천 배로 그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 서정희는 마지막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냈다. 다시금 차안심의 시체를 볼땐 방금 전과는 달리 견결함이 물씬 묻어나왔다. 흰 천을 잡아당기자 그녀의 손이 보인다. 손목엔 여전히 귀한 보물마냥 아끼던 그 팔찌가 둘러져있다. 그 날 팔찌를 집까지 끼고 온 안심이는 어찌 알았겠는가, 이 팔찌가 목숨을 앗아간 흉물이 될줄은. 서정희가 입을 연다. “이 팔찌 가져가서 기술자들더러 해체하라고 해. 안에 뭐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고.” “네.” 서정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심 언니, 언니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할게. 나 서정희는 하늘에 대고 맹세하는바 살아 숨쉬는 한 전의현의 피로 언니의 억울함을 되갚아 줄거다. 그러니까 걱정 마, 다시는 건들지 못하게 언니 가족들도 잘 보살펴 드릴게.” 염정훈이 묻는다. “가족들한테 알려야 할까?” “평생 속일순 없잖아. 난 안심이가 가는 길 외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