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2장

문 쪽으로 걸어간 염정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머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곰돌이 전화 시계를 손에 든 변선희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건 정훈씨 약혼 전날 밤에 정희한테 선물한 것이예요. 어렸을 때 정희가 1등만 하면 이 시계를 선물로 준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해에 그 애를 떠났어요. 이제라도 약속 지키려고 준 거였어요." 변선희가 시계를 가슴에 갖다댔다. "분명 정희가 다녀갔어요. 근데 이제는 이 시계도, 이 엄마도 필요 없다는 뜻이겠죠. 다 내 잘못이예요. 내 잘못." 염정훈은 이미 병실을 뛰쳐나갔다. 이 큰 병원에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데 그가 그리는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희야!" 염정훈이 아무리 크게 외쳐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진영이 다가왔다. "대표님, 병원 청소도우미 아줌마가 시계 놓고 갔답니다. 누가 돈을 주면서 시켰대요. 사모님은 병원에 온 적이 없구요." 염정훈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변선희가 위급한데도 서정희는 와보지 않았다. 정희는 이미 얼마 남지 않은 가족애를 버린 것이었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까지도 버릴 수 있는데, 나는 버리기 얼마나 쉬울까. 염정훈은 머리가 핑 돌더니 몸이 바닥으로 쏠리는 것만 같았다. 진영이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염정훈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진영아, 정희가 나를 버렸어." 언제부터인지 하늘에서는 빗줄기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염정훈은 진영을 밀쳐내고 목적 없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찬바람이 섞인 빗줄기가 그의 얼굴을 매섭게 때렸다.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간 염정훈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나 알았어!" "네?" "비행기나 KTX나 정희가 티켓만 끊으면 내가 바로 알 수 있고 또 모든 고속도로 출구에 사람 붙여놔서 정희도 무작정 뚫으려하진 않을거야." 진영이 뭔가를 깨닫기라도 한 듯 염정훈을 바라보았다. "대표님, 그렇다면..." "그래. 정희는 배에 탔어." 염정훈의 눈빛이 밝아졌다. "해외로 나가는 화물선에 사람 하나 숨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