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장

염정훈은 조용히 서정희를 지켜보았다. 요 며칠 동안 서정희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기껏해야 며칠 전 병원에 머물렀던 시간이 길었을 뿐이다. 나날이 나빠지는 서제평의 곁을서정희가 오래 지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요 며칠 간 정희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지 않았다. 진아영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산들바람이 베이지 색 중국풍 레이스 스커트를 입은 정희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바람에 흩날린 벚꽃잎이 그녀를 감쌌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나를 떠나니 이렇게 사람이 부드러워질 수도 있구나. 서정희는 멀리서 염정훈과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고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떠나갔다. 염정훈은 가슴이 미어졌다. 분명 결정을 내렸는데, 분명 그녀와 약속을 했는데, 몇 번이고 서정희를 위해 자신의 규칙을 깼다. 정희가 떠나려하자 염정훈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손목을 낚아챘다. 서정희는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며 나지막이 경고했다. "염 대표님." 여전히 수트를 빼입은 염정훈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넥타이가 삐뚤고 머리카락도 흐트러져 있었다. 이건 염정훈이 아니었다. 내일이면 약혼할 사람이 기쁜 얼굴이 아니라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풍겼다. 염정훈은 마른 침을 삼켰다. "뭔가 그냥 불안해서." 정훈도 서정희를 찾아오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며칠 째 이유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서정희는 눈을 깜박이며 무덤덤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머리 위의 가로등이 홀연히 켜졌다. 가로등 불빛이 거대한 몸집 위로 쏟아졌다. 얼굴에서도 그전의 냉정하고 담담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염정훈은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고개를 들어 정훈의 눈을 바라보았다. "없어. 이제 그만 놔줄래?" 그녀의 얼굴에 안개가 흐려진 듯 정훈은 그녀의 생각을 보아낼 수가 없었다. "당신 약혼녀한테 오해받을까 봐 겁나." "만약에." 정훈이 잠깐 말을 멈추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남자가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