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염정훈의 손에 잡혀 있는 서정희의 발목은 마치 연약한 나비 날개같아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염정훈은 몸을 굽히며 느긋하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서정희의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칠흑같이 어두운 두 눈동자에 비춰졌고 그녀의 거절은 염정훈의 마음속에서 마지막 불을 지폈다.
서정희는 심장이 마구 뛰어댔다. 두려움에 겁을 먹은 그녀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버럭 화를 냈다.
“다른 사람을 만졌던 손으로 날 만지지 마. 더러운 손 치워!”
다음 순간, 염정훈은 그녀의 입술을 막으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서정희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염정훈의 손은 그녀의 목을 지나 뒤통수를 단단히 틀어지더니 억지로 고개를 들어 강제적으로 처벌의 의미를 담은 키스를 했다.
청량하고도 폭력적인 기운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그의 입술이 어쩌면 백지연과 닿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서정희는 역겨움을 참을 수 없었다.
어디서 나온 힘인지, 염정훈을 밀쳐낸 그녀는 침대 끄트머리에 엎어져 토하기 시작했다.
토하고 난 뒤 고개를 돌리자, 염정훈의 잘생긴 얼굴을 먹물이라도 칠한 듯 새카맣게 어두워져 있었다.
그의 두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본 서정희가 또박또박 말했다.
“말했지, 만지지 말라고. 너 더러워!”
염정훈의 마음속에는 불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서정희가 이렇게 토를 하자 방금 전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감정은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마침 전화가 오자 염정훈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이내 고용인 장미란이 다급하게 들어와 방을 치우다 서정희의 지친 모습을 보자 안타까워했다.
“사모님.”
서정희는 힘없이 인사를 건넸다.
“이모님,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도련님이 본가로 이사 가신 뒤로는 거의 일 년을 넘게 못 뵈었네요. 도대체 두 분 어떻게 되신 거예요? 예전에 도련님이 얼마나 잘해주셨어요? 전 도련님이 누군가를 그렇게 아끼는 건 처음 봤어요.”
서정희는 무력하게 침대에 누워 천장에 있는 별을 쳐다봤다. 그것은 염정훈이 특별히 그녀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밤이 되어 불을 끄면 뭇별들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예전의 염정훈은 지금과 달리 무심하게 한 말도 마음에 담아두었다. 지금의 염정훈은 그녀가 설령 그의 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연기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서정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너도 우리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장미란이 한숨을 쉬었다.
“사모님, 비록 도련님이 그 불여시를 예뻐하긴 하지만 여전히 사모님을 마음에 두고 있어요. 이 1년 넘는 시간 동안 도련님은 아무리 늦어도 잠은 얌전히 집에서만 잤지 한 번도 그 불여시네 집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어요.”
서정희는 순간 멈칫했다. 그녀는 언론에서는 그가 밤에 들어가 이튿날 아침에 나왔다는 뉴스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그런데 해경 별채에 남지 않았다고?
이내 그녀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이 아이도 낳았는데 그 집에서 밤을 보냈는지 아닌지가 중요할까?
“사모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도련님께 먼저 숙이고 들어가세요. 부부 사이에 무슨 큰 원한이 있겠어요? 저…”
다른 사람이 둘 사이의 갈등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를 향한 염정훈의 원망은 이미 깊어져 있고 염정훈을 향한 그녀의 사랑도 점차 원망이 되어가니 두 사람은 백지연이 없었다고 해도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었다.
장미란의 호의에 서정희는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모님, 저 씻으러 갈게요.”
“네, 사모님.”
염정훈이 손을 댔던 곳을 그녀는 한번 또 한 번 씻어내리며 며칠 동안 씻지 못했던 머리도 조심스레 한 번 씻었다.
바닥에 한가득 떨어진 머리를 본 서정희는 두 무릎을 끌어안은 채 욕실 구석에서 한참을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밖에서 장미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하나하나 전부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녀는 염정훈에게 자신의 병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