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장
염정훈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없이 서정희를 내려다보았다. 욕실에는 물 흐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염정훈의 손목을 잡은 그녀의 손은 축축했다.
서정희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가지 마.”
염정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는 냉정하게 말했다.
“아직도 그 놈을 위해 사정하고 싶은 거지?”
서정희는 벽이랑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자신이 어떻게 설명하든 이 사람은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신은 당신이 했잖아.
서정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빈이와 범이의 앳된 얼굴을 상기하자 한숨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문득 욕조에서 일어서더니 물에 젖은 상태로 염정훈에게 안겼다.
서정희의 몸에 묻은 물이 조금씩 염정훈의 흰 셔츠에 퍼졌다. 염정훈은 그런 그녀를 밀치지 않았다.
서정희는 조심스레 그의 결후를 살짝 입 맞추었다. 그러자 염정훈의 몸이 바로 팽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훈 씨, 나 당신을 배신한 적 없어.”
그녀의 가벼운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말투에 비참함과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남자는 갑자기 두 손으로 과격하게 그녀를 감싸더니 진하게 입맞추었다.
서정희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2년 만의 친밀한 행위. 예전에는 그렇게도 달콤하고 좋았던 품이었는데, 백지연과도 이런 행위들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역겨웠다.
서정희가 지금 막 밀치려는 그때, 염정훈의 전화가 울렸다.
백지연의 벨소리였다.
염정훈은 전화소리를 무시하고 계속하고 싶었지만, 벨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욕실에 울려 퍼졌다.
염정훈은 귀찮아서 서정희를 놓고 먼저 전화를 받았다. 전화 저편에서 백지연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미간에 잡힌 주름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리더니 언짢은 태도로 전화를 끊고, 옆에 걸어놓은 샤워가운을 걸치고 말했다.
“나갔다 올테니 집에서 기다려.”
서정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염정훈은 마치 그녀가 몰래 기뻐하는 마음을 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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