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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장

서정희는 지훈이 뭘 하려는지도 모른 채 등불을 들고 따라 일어섰다. 작은 등불이 희미한 빛을 내며 지한의 발걸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렸지만 정희의 앞을 밝혀주었다. 정희는 주방으로 끌려왔다. 앞치마를 두른 지한이 재빨리 식재료를 준비했다. 저녁에 남은 밥에 계란을 풀고 베이컨과 완두콩을 넣어 볶았다. 훤칠한 체격의 남자는 작은 불빛 아래 야채 손질부터 볶는 것까지 손쉽게 해치웠다. 웍 주위로 화력이 솟구쳤고 불빛을 받은 그의 얼굴은 환히 빛났다. 서정희는 이전의 염정훈을 떠올렸다. 밤 늦게라도 자신이 배고프다고 하면 일어나서 면 한 그릇 끓여주고, 볶음밥을 볶아줬었다. 금세 향긋한 볶음밥이 완성되어 그녀 앞에 놓여졌다. 지훈은 특별히 이쁘게 플레이팅까지 했다. “드세요.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래요.” 서정희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머리를 숙인 채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낯선 이의 관심은 푸른 고래 같았다. 커다란 입을 벌리고 그녀를 한입에 삼켜버리는 푸른 고래. 정희로 하여금 배신의 불행을 잠시 잊게 했다. 뼈마디가 뚜렷하고 가늘고 긴 지한의 손이 정희의 머리를 살며시 쓸었다. “하루밖에 안 남았다 해도 잘 살아야 해요.” “응…” 남은 시간은 심플하고 행복했다. 서정희는 지한이 준 임무를 받아 섬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글을 가르쳤다. 염정한은 그 옆에 앉아 얌전히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면 정희의 뒤에 딱 달라붙어 졸졸 따라다녔다. 정한은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엄마, 안아줘.” 처음에 정희는 이모라고 부르도록 가르쳤지만 시간이 지나니 정희도 익숙해졌다. “한아, 이모 봐봐. 또 넘어졌지. 얼굴 긁힌 것 좀 봐.” 서정희는 조심스레 정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정한은 간지러운 듯 꺄르륵 웃으며 정희의 볼에 뽀뽀까지 했다. “누나,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거야?” “언니, 사람은 정말 바닷속에서 잠수할 수 있어? 안 힘들어?” “언니, 언니.” 섬의 아이들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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