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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진가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돈이 필요한 이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도훈도 다른 사람의 비밀을 파헤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도훈은 계속해서 진가희를 주시했다. 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리에 서 있었다. 조명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애매모호한 모양새로 길게 늘어뜨렸다. 하도훈은 담담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퇴근하고 주차장에서 기다려." 진가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도훈은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뒤에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 진가희를 짓누르고 있던 하도훈의 그림자도 점점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그러고 나서야 진가희는 몸을 움직였다. 진가희는 저녁 6시가 되어서 퇴근했고 하도훈은 6시 30분에 룸에서 나왔다. 하도훈은 수행인도 없이 혼자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도훈은 힐끔 진가희를 쳐다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에 외투를 걸친 채 우아한 모습으로 그녀의 앞을 스쳐 지나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를 향해 걸어갔다. 진가희는 하도훈이 말없이 앞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고 꼬리처럼 뒤로 따라붙었다. 하도훈이 차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진가희는 차에 타야 할지 몰라 몇 초간 앞에 서서 고민했다. 하도훈은 진가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기다리기만 했다. 대치 상황이 얼마 지속되지도 못하고 진가희는 차에 올라탔다. 차 내부는 물론 주차장 전체가 조용했다. "돈 얼마나 필요해?" 문득 하도훈이 입을 열어 질문했다. 하도훈이 이런 질문을 할 줄 몰랐던 진가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하도훈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돈 필요한 거 아니야? 얼마나 필요해?" 진가희는 치마를 찢을 듯이 꽉 움켜쥐고 고집스럽게 입을 열지 않았다. 하도훈은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어갔다. "넌 이나 여동생이니까 내 여동생이기도 해.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해 봐." 하도훈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시동을 걸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주차장을 벗어나며 바깥바람이 차 안으로 불어들어와 진가희의 뺨을 스쳤다. 진가희는 하도훈에게 목적지를 묻지 않았고 하도훈도 말이 없었다. 마침내 차가 한곳에 멈춰 섰다. 차를 세운 하도훈은 진가희에게 내리라는 말도 하지 않고 운전석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진가희는 이런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집에서 나한테 못해 준 건 없어. 그냥 돈을 모아서 독립하고 싶은 것뿐이야." 진가희는 다른 말을 더 보태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가 없었던 집을 떠나 독립하여 자신만의 집을 갖고 싶었다. 하도훈의 표정이 조금 느슨하게 풀렸다. 그는 시선을 내려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바라보았다. "독립을 한다고 해도 학업을 위주로 해야지. 이런 곳에 올 게 아니라." 하도훈은 미간을 찡그리며 진가희를 향해 말했다. 침묵하던 진가희가 한참 뒤에 대답했다. "여기가 돈을 많이 줘." 얼마나 지났을까, 하도훈은 담배를 끄고 차 창문으로 담배꽁초를 던지더니 진가희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진가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 하도훈은 반짝이는 진가희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만둬. 내가 돈 줄게." 진가희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내리깐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는 모습이 날개를 펄럭이는 나비 같았다. 하도훈은 고개를 숙여 한동안 진가희를 바라보다 그녀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핸드 브레이크에 내려놓았다. 진가희의 손이 마침 핸드브레이크 쪽에 놓여 있었다. 우연하게 두 사람의 손이 닿은 순간 진가희는 곧바로 손을 움츠렸다. 그때 하도훈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진가희는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 앉은 채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한참 후, 하도훈의 큰 손이 느릿하게 진가희의 손을 손바닥 안에 완전히 가두었다. 따뜻한 노란색 조명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반쪽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진가희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하도훈이 진가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호텔로 가자. 응?" 그날 밤 차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진가희의 머릿속에 영화 필름처럼 떠올랐다. "며칠 동안 날 피한 거야?" 하도훈의 목소리는 낮고 야릇했다. 확실히 진가희는 하도훈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 맞지만 하도훈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하도훈이 또다시 물었다. "응?" 말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는 것이 섹시하고 허스키했다. 나지막한 목소리는 우지성의 쾌활한 목소리와 달리 매력적으로 들렸다. 두 사람 사이에 또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도훈이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약은 발랐어?" 진가희의 얼굴이 조명 아래에서 옅은 홍조를 띠었다. 진가희는 살짝 고개를 돌린 채 지금 이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성이 일은 고마워." 하도훈은 진가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 후, 하도훈은 진가희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진가희는 하도훈의 뒤를 따라 호텔로 들어갔다. 하도훈은 방 키를 받은 다음 진가희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진가희는 하도훈의 뒤에 서 있었다. 하도훈은 진가희의 어깨를 감싸 안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순간 진가희는 통제를 잃은 사람처럼 그를 따라갔다. 이후로 어떻게 호텔 방에 들어왔는지 진가희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는 순간, 하도훈이 자신을 꽉 끌어안았다는 사실만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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