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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이모, 저 해외연수 갈게요." 심자영이 동의하자 추영자는 기뻐하며 홀가분해했다. "잘 됐어, 자영아, 드디어 마음먹었네." "이모가 바로 입학수속이랑 비자해줄게. 남은 한 달 동안 친구들이랑 잘 인사해. Y 국에 가면 아마 만나기 힘들 거야." 추영자는 말하다가 머뭇거렸다. "네 오빠한테는 내가 말할까?" 심자영은 주먹을 꽉 쥔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모, 제가 오빠랑 말할게요." "그래, 네가 결정해." 추영자는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나 거실을 떠났다. 심자영이 주먹을 펴자 손바닥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묵묵히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거실문을 열고 불이 켜진 순간, 벽에 가득 걸려 있는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가까이 가서 제일 가운데 있는 사진을 보았다. 햇살이 밝고 무성하게 피어난 치자꽃나무 아래, 잘생긴 소년이 고개를 숙이고 옆에 하얀색 치마를 입고 있는 소녀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건 스무 살의 주경민과 열다섯 살의 심자영이었다. 손을 내밀어 사진을 만진 심자영,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조용히 흘러내린 눈물이 그의 볼을 적셨다. 시선이 흐릿해졌지만 머릿속을 떠도는 그 기억들은 뚜렷했고 뼈저렸다. 너무 쉽게 변하는 세상사, 그녀와 주경민은 결국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주경민은 명의상으로 심자영 오빠였지만 두 사람은 혈연관계가 없었다. 그는 이미 추영자의 후아들이었다, 그의 친엄마가가 돌아가고 나서 계속 추영자가 그를 돌봤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심자영은 잘생긴 오빠 뒤를 따라다니기를 좋아했다. 일곱 살 되던 해, 심자영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갔고, 그녀가 그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 그녀는 심씨 가문 사람들한테 재수 없는 년이 되었고 자기 부모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추운 겨울날, 그녀는 친할머니한테 쫓겨나, 눈 내린 바닥에서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그녀가 거의 얼어 죽을 것 같을 때, 주경민이 도착해서 그녀를 구했다. 심자영은 지금까지도 주경민이 화를 참으며 심씨 가문 사람들한테 했던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심씨 가문에서 키우기 싫은 거면 제가 키우겠습니다! 심자영은 이제부터 주씨 가문 사람입니다, 심씨 가문이랑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는 부드럽게 심자영의 손을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자, 오빠랑 집에 가자." 그 약속을 주경민은 정말로 지켰다. 심자영은 거의 주경민이 키웠다. 그의 편애와 사랑에 심자영은 부모님을 잃은 고통과 불안에서 서서히 헤어 나왔다. 매번 주경민이 그녀를 지켜줄 때면, 심자영은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참을 수 없이 자신과 함께하고 자신을 지켜준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오늘은 우리 자영이 생일이야, 네가 무슨 소원을 빌어도 오빠가 다 들어줄게." 그래서 18살 성인식에서, 주경민이 이 말을 했을 때 그녀는 더는 사랑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발꿈치를 들어 그한테 입맞춤했다. 그런데 주경민이 그를 세게 밀어냈다. "심자영! 지금 무슨 짓하는지 알아? 난 네 오빠야!" 심자영이 큰소리로 반박했다. "피가 섞인 거 아니잖아, 내 친오빠도 아닌데, 왜 못 사귀어?" 주경민은 표정이 아주 안 좋았다. 심자영은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네가 나한테 의지하는 거 알아,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야, 앞으로 다시는 이런 말 하지 마!" "왜 말하면 안 되는데?" 심자영은 고집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나 오빠 사랑해, 내 감정 잘 안다고, 오빠는 나 안 좋아해?" 주경민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심자영, 너 정말 미쳤어. 진정 좀 하고 있어, 잘 생각해. 한 번만 더 이딴 소리 집어치면 우리 집에서 나가!" 주경민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날, 두 사람은 그렇게 안 좋게 헤어졌었다. 그 후로, 두 사람한테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주경민은 더는 매일 집에 오지 않았기에 심자영도 그를 일주일에 한 번도 만나기 힘들었다. 심자영은 겁이 났다. 그녀는 이런 주경민이 싫었기에 먼저 고개 숙이고 화해하고 싶었다. 그녀는 반지를 두 개 제작했고 주경민의 생일 파티에서 직접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부푼 기대를 안고 룸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민아, 너한테 계속 달라붙던 양동생은 오늘 왜 안 왔어?" "걔 말 꺼내지 마, 기분 잡치잖아." 심자영은 몸이 굳어져버렸다. 문 틈사이고 짜증 섞인 주경민의 얼굴을 보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결국 포기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어 선물을 들고 들어갔다. "오빠, 생일 축하..." 심자영을 본 순간, 주경민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왔어?" 심자영은 씁쓸한 마음을 누르며 조심스럽게 주경민한테 선물을 건넸다. "오빠, 내가 직접 오빠를 위해서 디자인한 거야, 오빠한테 할 말..." 주경민은 그녀한테 시선을 주지도 않고는 갑자기 옆에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다음 날에 나랑 유리 결혼해, 다들 우리 약혼식에 참석해 줘." 강유리, 주경민 아빠가 데리고 온 여자애였다. 강유리랑 주경민이 어떻게!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드디어 폭발해 버렸다. 심자영은 주경민의 뒷모습을 보며 고집스럽게 물었다. "오빠, 지금 장난하는 거지? 내가 포기하게 하려고 아무 하고나 약혼하는 거지?" 주경민은 싸늘하게 그녀를 돌아다보며 비웃었다. "심자영, 착각하지 마, 나랑 유리 진작부터 만났어, 넌 지금 유리를 새언니라고 불러야 해." 심자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주위의 축하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마치 물에 빠진 듯 어지러워났기에 강유리가 그녀의 손에 든 선물박스를 들고 간 것도 느끼지 못했다. 강유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물박스를 열어 커플링을 꺼내 보이며 일부로 놀라운 척했다. "커플링이잖아! 민아, 설마 너한테 프러포즈하려고 했던 거 아니야?" 심자영이 정신을 차리자 다들 그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그녀가 입술을 파들 거리며 말하려고 했지만 역겨워하는 눈빛을 하고 있는 주경민과 눈을 마주쳤다. "난 네 오빠라고 말했잖아, 어떻게 이런 역겨운 생각을 할 수 있어?" 주경민은 반지박스를 빼앗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반지도 그녀의 사랑하는 마음처럼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심자영은 피가 멎는 것 같았고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주경민을 좋아하는 게 주경민한테는 이렇게 역겨운 일인 줄 생각도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 룸을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주경민도 쫓아 나오지 않았다. 온통 주경민과의 과거들을 떠올리며 심자영은 흐리멍덩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이모를 본 순간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이모의 품에서 펑펑 울었다. 그녀가 진정해서야 추영자가 말했다. "자영아, 유학하는 거 말이야, 네가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이모가 그동안 회사 돌보느라 너 잘 챙기지 못한 거 알아. 네 오빠가 널 다 키워서 네가 오빠 아쉬워하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이 감정은 끊어내야 해, 이모는 네가 다치는 게 싫어." 보름 전, 이모가 그녀한테 이 얘기를 꺼냈었지만 심자영은 주경민을 포기할 수 없어 한 번 더 해보려고 했다. 이제 이미 결과가 생겼고, 그 순간 그녀는 완전히 마음이 식어버렸다. 이제 포기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추억에서 헤어 나온 심자영은 눈물을 닦으며 묵묵히 벽에 걸린 액자들을 떼어냈다. 이제 주씨 가문에 새로운 여주인이 올 것이고 그녀도 떠나야 했다. 그녀와 주경민의 지난날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이곳에 남겨두는 게 부적절했다. 심자영은 모든 사진을 꺼내한 줌 불길 속에 던졌다. 그녀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주경민에 대한 사랑도 함께 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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