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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장 유정아, 그만해

시선이 마주친 순간, 김유정의 표정은 생각보다 담담했고 심지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시울이 빨개졌지만 표정은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다. 김유정의 눈빛을 마주한 연수호는 인상을 쓰며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당신이 여기 어쩐 일이야? 집에 간다고 했잖아?” 김유정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정리한 후 당당하게 병실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연수호를 한번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당신은, 회사라며?” 김유정은 가볍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우리 모두 서로를 속이고 있었네. 그러니까 누가 먼저 거짓말을 한 것인지 따지지는 말자.”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대화 내용을 듣고 백혜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유정 언니예요?” 김유정의 시선이 백혜지에게 향했다. 아까는 문밖이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제야 백혜지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눈앞에 있는 여자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너무 말랐다. 너무 말라서 가냘픈 팔에 뼈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숨길 수 없었고 살이 조금 붙고 얼굴색이 좋아지면 분명 엄청난 미인일 것이다. 다만... 그녀의 두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듯 멍해 보였다. 김유정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눈이 안 보이는 건가?’ “유정 언니?” 백혜지가 다시 한번 소리 내 물었고 초점 없는 두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네, 저예요.” 김유정은 그제야 생각을 멈추고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며 물었다. “아가씨, 나를 아나요?” 백혜지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수호 아내잖아요. 알아요.” ‘수호?’ 김유정은 고개를 돌려 하찮은 눈빛으로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정말 너무나도 다정하게 불렀다. 김유정이 연수호와 결혼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랑을 표현할 때도 이렇게 편하게 그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다른 여자의 입에서 이토록 다정하게 그의 이름을 들으니, 정말 가소롭게 느껴졌다. 연수호는 차가운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가 김유정의 앞에 섰다. 그의 커다란 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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