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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화났어?

김유정은 길가에 서서 차들 사이로 들어가는 스포츠카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지금 질투하는 거야?’ 콜택시를 부르려고 핸드폰을 꺼내려던 찰나 스포츠카의 굉음이 다시 울려 퍼졌고 곧이어 멋진 부가티가 다시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연수호는 긴 다리로 조수석의 문을 걷어차며 무심하게 말했다. “빨리 타.” 표정은 굳어있었고 말투에서는 분노가 느껴졌다. 이를 발견한 김유정은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해 얌전히 차에 올려 탄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꼬리를 낮췄다. 그런데 차에 앉자마자 싸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김유정.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김유정은 그 어떤 감정기 복도 없이 환하게 웃고선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왜? 화났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수호는 그녀를 덮쳤고 김유정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연수호는 한 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위압적이게 김유전의 턱을 움켜쥐었다. “수...” 입가에 맴돌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연수호의 격렬한 키스가 이어졌다. 마치 먹이를 보고 흥분한 사자처럼 말이다. 김유정은 무심코 고개를 뒤로 젖혔으나 그럴수록 연수호는 그녀의 턱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고 키스는 점점 더 격해졌다. 김유정은 창밖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힐끗 보더니 마음이 조급해져 어물어물 몇 마디 했지만 연수호는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김유정은 손을 뻗어 그의 가슴과 어깨를 밀었으나 연수호는 마치 굳건한 산처럼 끄떡없었다. 그녀의 손이 말을 듣지 않자 연수호는 뒤로 넘기며 두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오른손에 감긴 거즈에 닿고선 아차 싶었는지 눈빛이 흔들리더니 손을 타고 내려와 김유정의 손목을 꽉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두 손이 잡힌 김유정은 이도 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고개를 들자 연수호의 짙은 눈동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윽한 눈빛을 보니 김유정은 기분이 착잡했다. 3년이나 지났음에도 김유정은 여전히 그의 눈동자 속에 감춰진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도대체 왜 화를 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늑대처럼 자신의 먹이를 탐내는 다른 짐승을 못마땅해하는 건가? 김유정이 딴생각을 하는 게 못마땅한 연수호는 벌주듯 또다시 입술을 깨물었고 너무 아픈 나머지 김유정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표정에 연수호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치켜뜨더니 다정하게 키스했다. 가까이에 있으니 연수호 특유의 청량한 향과 더불어 은은한 담배 향이 느껴졌다. 강하지 않아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다. 결혼 3년 동안 연수호의 키스 스킬은 나날이 향상되어 이제는 김유정에게 어떤 스타일이 먹히는지 완전히 깨닫고 있었다. 불과 몇 분 만에 김유정은 숨이 거칠어졌고 다리와 온몸에 힘이 풀렸다. 산소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쯤 연수호가 타이밍 좋게 놓아주었다. 김유정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수호를 째려봤고 매번 잡아먹을 듯이 과격한 그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좋아하지도 않으면 키스할 때만 욕망을 드러냈으니 기분이 그닥 좋지는 않았다. 자세를 바로잡은 연수호는 표정이 한결 풀렸다. 그는 운전대에 손을 얹고 손가락 끝으로 몇 번 두드리며 김유정을 바라봤다. 격렬한 키스를 나누고 나니 김유정의 입술을 수정같이 맑고 화사한 홍조를 띠었다. 다시 물어뜯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혹적이다. 연수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집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 그 말속에 숨겨진 뜻을 김유정이 모를 리가 없다. 만약 지금 집에 있었다면 연수호의 미친 기세로 아마 저녁 내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김유정은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뻔뻔하네.” 사람이 오가는 길 한복판에서 이런 짓을 했으니 생각만 해도 수치스러웠다. 연수호는 피식 웃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뻔뻔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왜 그래.” 하긴 뻔뻔함은 연수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연수호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차창 밖 커피숍을 싸늘하게 훑어보고선 액셀을 밟았고 스포츠카는 로켓처럼 튀어 나갔다. 차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김유정은 저도 모르게 옆으로 꼬꾸라졌고 다리에 올려놓은 가방도 밑으로 떨어졌다.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 욕하려던 순간 고개를 돌리니 연수호의 또렷한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는 급하게 차에 올라탄 탓에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오늘따라 연수호의 옷차림이 예전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올백 머리를 하고 있으니 눈부시게 화려하고 또렷한 이목구비가 한층 더 부각되었다. 길고 다부진 몸에는 블랙 컬러의 하이웨스트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자수로 포인트를 주니 심플하면서도 고급졌고 전체적으로 절제된 고귀함을 뿜어냈다. 운전대를 잡은 팔목 아래로 하얀 손목이 살짝 드러났는데 평소에 잘 끼지 않던 폴 뉴먼 시계를 차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여전히 검은 염주가 희미하게 드러나 있었다. 평소에는 그와 어울리지 않던 염주가 오늘따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잘생겼네. 내가 좋아할 만해.’ 유난히 잘생긴 그의 모습에 김유정은 문득 그에게 첫눈에 반한 순간이 떠올랐다. 시선은 다시 그의 수트에 쏠렸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어딘가 낯익은 옷이네?” 연수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한껏 밝아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선 입꼬리를 올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옷을 디자인한 사람은 무조건 성공할 거야. 남다른 안목을 갖고 있잖아.” 듣다 못 한 연수호가 한소리했다. “뻔뻔스럽게 자기 칭찬을 하다니.” 그의 반응에 김유정은 웃음이 터졌다. “기자들이 말하던 후원자가 수호 씨였어?” 연수호가 입고 있는 수트는 이탈리아 최고급 브랜드 키튼의 올봄 한정판이다. 자성 그룹은 국내 최고의 패션 디자인 회사로서 키튼과 공동 디자인에 참여하게 되었고 김유정은 그 디자인팀의 주역 중 한 명이다. 또한 김유정은 한국 스타일과 서양 의류를 접목한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어 직접 한국풍이 물씬 풍기는 스탠드 칼라 수트를 디자인했다. 당시 쇼케이스가 끝난 뒤 그 옷은 미스터리한 후원자에게 아홉 자릿수 고가에 팔렸다. 김유정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사고 나서 내가 왜 입는 걸 못 봤지?” 연수호는 신이 나서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선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더니 무심하게 말했다. “못생겨서 입기 싫었어.” 김유정은 꼭 기분 좋을 때마다 초를 치는 유강후가 너무 미웠다. “그럼 왜 샀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느낌이랄까?” 그 말을 듣고 나니 김유정은 당장이라도 연수호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상대하기 귀찮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연수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침대에서만 지냈다. 사실 마주 보며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순간은 몹시 드문데 꼭 그럴 때마다 서로 잡아먹지못해 안달이다. 김유정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연수호와 애초에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혼약이 아니었다면 연수호는 아예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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