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강설아는 박강우가 계속 말이 없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제 강은영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그녀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에 칼까지 박은 여자인데 아무리 박강우라도 인내심이 바닥났을 것이다.
다만 갑자기 바뀐 강은영의 태도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박강우를 싫어하지 않았나?’
“강우야, 내가 은영이랑 잘 얘기해 볼게. 은영이 내 말은 들으니까.”
강설아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안 그래도 화가 나 있던 강은영은 가식적인 그 얼굴을 보자 화가 치밀어 그녀에게 다가가며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허공에서 남자에게 잡혀 버렸다.
박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잡아당겨 품에 안고 물었다.
“어딜 가려고?”
그녀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강은영이 옆에서 치고 들어왔다.
“은영아, 소란은 이제 그만하면 됐어. 너도 이제 철 좀 들어야지!”
‘뭔데 자꾸 끼어들어?’
“일단 이거 놔!”
화가 치민 강은영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저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박강우는 바둥거리는 그녀를 보자 머리가 지끈거려 사납게 호통쳤다.
“그만!”
순간 강은영은 동작을 멈추고 상처 입은 눈으로 박강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내 앞에서 강설아 편을 드는 거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고용인들은 속으로 통쾌해하고 있었다. 모두가 박강우의 인내심이 바닥났을 거라고 생각하던 찰나, 남자는 울먹이는 그녀를 품에 꽉 껴안고 입을 열었다.
“진 비서!”
“네, 대표님.”
“사모님 얘기한 대로 전부 처리해!”
그 말만 남기고 그는 강은영을 안은 채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현장에 남은 사람들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박강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그들은 멍하니 서로 눈치만 보았다.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던 강설아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진기웅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오늘 안으로 짐 싸서 나가주세요. 급여는 정상적으로 여러분의 계좌에 입금될 겁니다.”
“진… 진 비서님… 이건….”
진 집사는 혹여나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 진기웅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진기웅은 일관되게 싸늘한 표정으로 응대했다.
“대표님 하신 말씀 못 들었어요?”
“아니! 그러니까 왜….”
“그건 당신들이 사모님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생각해 봐야겠죠.”
진기웅은 집안 고용인들이 주제 파악을 못 한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봤던 이유는 강은영이 그들의 태도를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오늘은 대체 뭘 잘못 먹었기에 이 난리가 난 것일까?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강설아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위층을 올려다보며 손으로 볼을 감쌌다.
한편, 침실로 들어온 박강우는 그대로 강은영을 침대에 던져버렸다. 강은영은 꼴도 보기 싫은 인간들을 내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자신의 위에 올라탄 목을 껴안으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여보, 아까는 나 지켜주려고 조용히 하라고 한 거지?”
남자의 숨결이 순간 거칠어지더니 욕망이 가득한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강은영은 집요한 집착이 가득한 그 눈빛을 보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서 시선을 피했다.
“상처 또 벌어진 거 아니야?”
조금 전 아래층에서 셔츠에 스며 나온 핏자국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가볍게 남자의 어깨를 밀쳤다.
하지만 남자는 꿈쩍도 않고 거친 숨결을 그녀의 귓가에 토해냈다. 강은영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그에게 말했다.
“일단 상처 좀 확인하게 일어나 봐.”
“말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지?”
박강우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싸늘하게 물었다.
평소에 신경도 안 쓰던 고용인들을 무시하고 가장 신뢰하던 언니의 귀뺨을 때린 건 너무도 이상했다.
설마 목숨 걸고 협박해도 안 통하니까 그의 경계를 느슨하게 해서 도망칠 기회를 엿보려는 것은 아닐까?
강은영은 자신이 했던 일이 있기에 박강우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자기 상처가 빨리 낫게 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
그녀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억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박강우는 몸을 살짝 일으키고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피가 새어 나와 셔츠가 벌써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강은영은 서운한 마음도 뒤로 하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이거 봐! 상처 또 벌어졌잖아!”
이 상태로 그녀를 안고 위층까지 올라오다니!
강은영은 자기 몸을 아낄 줄 모르는 박강우가 야속해서 날이 선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말 좀 들으면 안 돼?”
그러면서 손을 뻗어 남자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박강우는 피부를 간지럽히는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았다.
“왜 이래? 일단 이거 놔!”
강은영이 다급히 소리쳤다.
“은영아.”
그의 부름에도 강은영은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허겁지겁 셔츠를 풀어헤쳤다. 아직도 자신이 해준 붕대를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보자 순간 화가 치밀었다.
“병원에 안 갔었어?”
박강우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했다.
“같이 갈래?”
“알았어. 나랑 같이 가.”
강은영이 힘껏 고개를 끄덕이자 박강우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자유를 찾은 그녀는 재빨리 가서 소독약과 붕대를 챙겨 대충 처리한 뒤에 깨끗한 셔츠를 찾아 그의 몸에 걸쳐주었다.
세심하지만 숙련된 동작은 마치 원래 현모양처였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박강우는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한 채 생각에 잠겼다.
만약 이게 연기라면 까발리지 않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연기할 거면 멈추지 말고 평생 해!’
그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다 됐으니까 이제 가자.”
강은영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숙여 그 작은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그녀의 눈동자를 지그시 응시했다.
별을 담은 것 같은 해말간 눈빛에는 일말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박강우는 차마 거절의 말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짐 정리를 마친 고용인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저택을 나가고 있었다. 강설아는 여전히 남아 진 집사를 위로하는 중이었다.
“진 집사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강우 화 풀리면 다시 부를 거예요. 저도 은영이 잘 설득해 볼게요.”
‘저년은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꺼지라고 한지 언젠데!’
강은영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박강우의 치료가 시급하지 않았으면 당장 달려가서 머리채라도 잡고 싶었다.
진기웅은 그들을 보자마자 다가와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박강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진 집사와 강설아를 노려보았다.
그가 뭐라도 하기 전에 강은영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일단 병원부터 가자!”
강설아는 병원에 다녀와서 혼내도 늦지 않았다.
박강우는 걱정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설아는 두 사람을 보자 치미는 분을 꾹 참으며 진 집사에게 말했다.
“진 집사님, 먼저 가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터벅터벅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손을 꽉 잡고 있는 두 사람을 보자 속에서 질투의 불길이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강우야, 은영이랑 나가려고? 마침 나도 집에 갈 건데 나 좀 집까지 태워다 주면 안 돼? 안 그래도 은영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비록 강은영이 사람들 보는 앞에서 자신을 망신 주기는 했지만 일단은 이유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박강우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릴 수도 있으니 부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박강우는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먼저 다가가서 차 문을 연 강은영은 박강우를 먼저 차에 태웠다.
그러고는 뒤를 졸졸 따라오는 강설아의 팔목을 잡고 말했다.
“내가 다시 집에 왔을 때 다시는 네 역겨운 얼굴 보지 않았으면 해.”
“은영아.”
“꺼지라고.”
순간 강설아는 그녀의 섬뜩한 표정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거지?
이 멍청이가 왜 나한테 이러는 걸까?
설마 뭔가 눈치라도 챈 걸까?
강설아는 점점 기분이 착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