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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이미 사랑의 맛을 알아버린 남자는 거칠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강은영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정오가 넘은 시각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박강우는 이미 나가고 자리에 없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근육통과 시트에 묻은 핏자국이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이 모두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내가 회귀했다니!’ 게다가 회귀하자마자 침실에서 눈을 뜨다니! 생각할수록 강은영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밤새 사랑을 나눈 흔적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분노에 이성을 잃은 박강우가 얼마나 거칠게 그녀를 안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장면들만 생각하면 강은영은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지금쯤이면 회사에 있겠지?’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찾았다. 상처는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도 되고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보고 싶었다.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가 그리운 적은 처음이었다. 강은영이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짓던 순간,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문밖에서 고용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강설아 씨 오셨습니다.” 순간 강은영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안 그래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제 발로 찾아와 주다니!’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금 나갈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씩씩거리며 옷을 찾아 입었다. 거울 앞에 마주 서니 어젯밤의 흔적들이 생생하게 목덜미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목이 파인 원피스를 찾아 입고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강설아의 역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영이 야채 샐러드 좋아하니까 야채 듬뿍 넣어주세요!” “네. 강설아 씨는 참 자상하네요.” “강우 좋아하는 갈비찜 가져왔어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레인지에 데우면 돼요.” 은방울 굴러가듯이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강은영은 불현듯 지난 생의 일이 떠올랐다. 박강우의 가족들은 그녀보다 강설아를 더 좋아했다. 다들 박강우가 결혼한 여자가 온화하고 예의 바른 강설아가 아니라 성격 포악하고 쩍하면 소란을 부리는 강은영이라서 무척 아쉬워하고 박강우를 측은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강설아의 계략이었고 그녀가 그렇게 미친 짓을 한 것도 강설아의 부추김 때문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모르고 있었다. 다시 그 역겨운 얼굴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강은영은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지난 생에는 왜 저 여자의 더러운 속내를 모르고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 준 유일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 사모님?” 뒤늦게 강은영을 발견한 고용인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고개를 돌린 강설아는 검은색 롱 원피스를 입고 있는 강은영을 보고 눈빛이 음침하게 변했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이 드레스는 박강우가 직접 그녀를 위해 디자인한 유일무이한 드레스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V넥 설계 덕분에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목덜미의 흔적 들이었다. 강설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억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 집사님, 저 은영이랑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요.” “네, 설아 씨.” 진 집사는 공손한 미소를 짓고는 고용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강설아가 이 집의 안주인이라도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강은영은 뒤돌아서 나가는 진 집사를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모두가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더니 마지못해 뒤돌아섰다. 강은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힐끗 바라보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강설아의 옆을 지나칠 때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강은영은 매몰차게 피해갔다. 강설아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은영아, 어제 연락 듣고 바로 온 거야. 넌 어때? 다치지 않았어?” 관심을 가득 담은 것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는 강은영을 더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강은영은 피식 웃고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진 집사님.” “네, 사모님.” 진 집사는 공손히 허리를 숙였지만 표정이나 말투는 전혀 공손하지 않았다. 강설아를 대하던 태도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말투와 표정이었다. 강은영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당신 해고야.” 모두가 벙찐 얼굴로 강은영을 바라보았고 진 집사 역시 충격 받은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사모님, 왜….” “나를 사모님이라고 생각은 해요?” 강은영은 비꼬듯 말하며 강설아를 노려보았다. 명백한 비웃음에 강설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가식적인 미소를 장착하고 다가와서 강은영의 손을 잡았다. “은영아, 무슨 일 있었어? 진 집사님은 시댁 본가에서부터 일해온 분이잖아. 진 집사님한테 그런 식으로 대하면 안 돼.” “언니 우리 집안 사정을 나보다도 더 잘 아는 눈치다? 진 집사님이랑 친해?” 강은영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강설아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이렇게 많은 허점들이 보였는데 지난 생에는 왜 몰랐을까!’ 어쩌면 한 번도 이 집에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번 생에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은영아, 너….” 강설아는 잔뜩 날이 선 강은영의 눈빛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그녀를 달래려 말했다. “네가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진 집사님은 이 집안을 위해 오래 일해온 분이야. 진 집사님한테 이러면 안 돼.” 강은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진 집사와 고용인들의 눈빛을 보고 점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지난 생에도 이런 식이었다. 강설아는 어딜 가나 착한 척, 자상한 언니인 척, 그녀를 어린애처럼 타일렀고 강설아가 그럴수록 강은영은 성격 나쁘고 이기적인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다를 거야!’ 인내심이 바닥난 강은영은 더 이상 이 역겨운 연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무해? 진짜 너무한 게 뭔지 알려줘?” 말을 마친 강은영은 차갑게 강설아의 손을 내쳤다. 강설아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강은영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 말을 잘 듣던 동생이었는데 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거지? 그녀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강은영은 주저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귀뺨을 때렸다. 짝! 순간 거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은영을 바라봤다. 강설아는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순간 표정관리가 무너져 버렸다. “은영아!” 강은영은 힘을 너무 줘서 살짝 화끈거리는 손을 어루만지며 차갑게 말했다. “그 역겨운 얼굴 보기도 싫으니까 당장 내 집에서 꺼져!” 강설아가 치미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고 있을 때, 문밖에서 뚜벅뚜벅 힘 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박강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강우야.” 강설아는 볼을 감싸며 박강우에게 다가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강은영은 남자의 싸늘한 표정을 보고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동시에 박강우도 그녀의 그런 반응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공기마저 차가워진 분위기였다. 박강우는 뻘겋게 부은 강설아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인상을 쓰며 고용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진 집사가 앞으로 다가서며 대답하려던 순간, 강은영은 그를 밀치고 박강우에게 다가가 그의 팔짱을 꼈다. “여보,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조금 전의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눈망울이 박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흥! 애교 부리고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거, 나도 할 수 있어!’ 강설아를 비롯해 거실에 모여 있던 고용인들은 어이없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강은영은 깔끔히 무시했다. 그녀는 상처 난 남자의 가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같이 올라가서 붕대를 갈자고 하려는데 남자의 큰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들자 박강우는 말없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본가에서 온 사람들이라 그녀를 걱정해서 그러는 듯했다. “진 집사!” 박강우는 아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싸늘한 목소리로 집사를 호출했다. 부름을 받은 진 집사가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도련님, 앞으로는 도련님을 보살펴 드리지 못할 것 같네요.”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해고했어!” 강은영은 박강우의 손을 다정하게 잡으며 뾰로통하게 말했다. 박강우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강은영은 입을 삐죽이며 그에게 말했다. “진 집사뿐이 아니고 나머지 사람들 다 해고했어!”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거실에 숨막히는 정적이 찾아왔다. 강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성질 나쁜 강은영이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박강우도 이번에는 강은영 편을 들지 못 하리라! 강은영 본인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울적하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랑 나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 박강우가 불쾌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자 강은영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정말 나 보고 나가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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