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6화

다시 눈을 떴을 때 서하린은 자신이 방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차가운 시선을 내리깐 채 서 있는 한태훈이 보였다. “이번 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고였어. 원래라면 며칠은 가둬둬야 하지만...” 그는 비꼬듯 낮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연희가 널 용서해달라고 하더군. 참 마음이 너그럽지 않냐?” 서하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한태훈은 한 걸음 다가서며 단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네가 아직도 날 포기하지 못한 거 알아. 하지만 잘 들어, 신하린.” 그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는 절대 나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여자애를 사랑할 일 없어. 그러니까 정신 차려. 너랑 나는 애초부터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갑자기 세게 닫히며 방 안 가득 채운 소리에 서하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그녀가 하려던 말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서하린은 침대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한태훈, 이제 정말로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 후 며칠 동안 한씨 가문은 매우 바빴다. 별장 전체가 한태훈과 차연희의 다가오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데 분주했다. 차연희는 지시를 내리며 한편으로는 서하린의 팔꿈치를 살짝 잡아끌었다. 마치 이전의 불편한 일들은 이미 잊힌 듯 보였다. “장소랑 장식은 거의 다 끝났어. 이제 필요한 건 신부 들러리만 남았지. 하린이가 딱 좋겠다. 기운 좀 받으면 나중에 남자친구도 생길 거야.” 차연희의 목소리에는 장난스러운 톤이 묻어 있었다. 서하린은 그녀처럼 그렇게 연기할 수 없었고 팔을 빼려던 찰나 갑자기 차갑고 냉정한 남자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그건 안 돼.” 서하린과 차연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그 자리에 서 있는 한태훈을 마주했다. “왜 안 돼?” 차연희는 그의 거절에 조금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태훈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어 서하린을 바라보았다. 최근 그녀는 조금 더 순하게 행동한 듯했고 더 이상 그에게 들러붙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하린이 남자친구를 찾는 모습을 떠올리니 왠지 모를 답답함과 불쾌함이 밀려왔다. 그 이유는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한태훈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대충 핑계를 대려던 찰나 서하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후배라서 신부 들러리로 서는 건 좀 어색할 것 같아요.” 사실 그녀는 곧 해외로 떠날 예정이었고 애초에 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한태훈은 그녀의 말을 듣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차연희도 더 이상 들러리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서하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차연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린아, 네가 들러리를 못 서는 대신 전에 디자인한 그 웨딩드레스를 나한테 주면 어떨까?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래.” 그 말을 듣자 서하린은 본능적으로 한태훈을 바라보았다. 그 드레스는 그녀가 18살 때 디자인해 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명망 높은 가문의 많은 명문가 딸들도 탐냈지만 서하린은 단 한 번도 그것을 팔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였기에 오직 자신만이 입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드레스를 입고 한태훈과 결혼하고 싶었다. 한태훈은 그 드레스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연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입을 열었다. “서하린, 그 드레스를 나한테 팔아. 대신 네가 원하는 어떤 조건이든 들어줄게.” 그러나 서하린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연희 언니 말이 맞아요. 저도 축하의 뜻을 전해야 하니까요. 이 드레스, 선물로 보내드릴게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웨딩드레스 샵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샵 직원이 드레스를 가져와 직접 차연희에게 건넸다. 원하던 드레스를 손에 넣은 차연희는 더 이상 서하린을 곤란하게 만들 생각 없이 기쁜 마음으로 탈의실로 향했다. 서하린은 그녀의 뒷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섰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한태훈만이 묵묵히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날 새벽, 서하린은 홀로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짐은 정리된 상태였고 필요한 서류들도 빠짐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제 그녀는 떠날 준비를 마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캐리어를 숨기고 막 잠자리에 들려던 순간 갑자기 방 문이 거칠게 열렸다. 서하린이 반응할 틈도 없이 한태훈이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에는 날 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너 웨딩드레스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연희가 잠깐 입어봤을 뿐인데 온몸이 가렵고 발진이 났어. 서하린, 이러려고 드레스를 준 거야? 연희를 해치려던 거냐?” 어두운 조명 아래, 한태훈의 날카로운 눈빛이 마치 차가운 칼날처럼 그녀를 꿰뚫었다. 서하린은 급히 머리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드레스를 손댄 적도 없고 그런 짓을 할 이유도 없어요.” 그러나 한태훈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는 거칠게 그녀를 침대 위로 밀치며 날 선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네가 무슨 변명을 하든 상관없어. 네가 아직도 나한테 미련이 있다는 거 모를 줄 알아?”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연희한테까지 손대선 안 됐어. 연희가 무사하길 빌어. 그렇지 않으면...” 한태훈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가정부가 다급한 얼굴로 방으로 뛰어들었다. “큰일 났습니다. 사장님! 차연희 씨가 쓰러졌어요.” 한태훈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러나 방을 나서기 전 서하린을 향해 차가운 명령을 내렸다. “아가씨, 절대 도망 못 가게 지켜.”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망설임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