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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도시아는 수업이 임박해서야 교실로 돌아왔다. 주은우는 그녀가 교복을 갈아입은 것을 알아차렸다. 도시아는 통학생이니 옷을 갈아입으려면 집에 가야 했다. “주은우, 고마워...” 도시아는 머리를 파묻고 볼이 발그레했는데 너무 귀여웠다. “정말로 고마우면 내 공부를 많이 도와줘.” 주은우는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도시아는 분홍빛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네가 열심히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도울 수 있어.” 주은우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흘렀다. 반에서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시아는 가정 배경이 좋고 성적도 좋지만, 그녀는 자신에 대해 조금도 반감을 갖지 않으며, 자신의 공부를 도와주려 한다. 그 순간, 주은우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도시아가 설마 나 때문에 강성대학교에 가려는 건 아니겠지?’ 이 생각은 떠오르자마자 주은우에 의해 중단되었다. 자신은 얼굴 반반한 것 말고는 정말 남보다 뛰어난 데가 없다. 반에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훨씬 많다. 도시아는 부잣집 따님인데 어떻게 자신 같은 가난한 아이가 마음에 들 수 있겠는가? 오후 자습 시간에 도시아는 인내심으로 주은우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그리고 주은우도 열심히 배웠다. 환생한 탓인지, 주은우는 머리가 아주 맑고, 스스로 종잡을 수 없던 부분을 도시아가 설명하기만 하면 이내 깨달을 수 있다고 느꼈다. 도시아는 주은우에게 수학 시험지를 한 장 건네주었다. “이걸 한 번 풀어봐.” “알았어.” 주은우는 탁자 위의 생수를 집어 들고 병마개를 비틀어 몇 모금 마셨다. 도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은우...” “왜?” “이 물 내 거야...” 도시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것은 주은우가 생리대를 살 때 겸사겸사 산 생수였는데 이미 반이나 마셨다. “어쩐지 이렇게 달더라니...” 주은우는 입술을 다시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아의 얼굴이 더 빨개지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내가 마셨던 물도 마시다니, 이거 간접 키스 아니야?’ 얼굴이 화끈거려 책상에 머리가 파묻을 지경이었다. 주은우는 병 뚜껑에 체크 표시를 하고 펜을 들어 시험지를 작성했다. ‘여자애가 부끄러움을 이렇게 잘 타다니. 너무 재미있는데...’ 학교가 거의 끝나갈 무렵, 주은우는 다 쓴 시험지를 도시아에게 건네주었다. 대충 훑어본 도시아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주은우를 바라보았다. “너 몰래 내 답안지 훔쳐본 거 아니야?” 비록 대충 훑어봤을 뿐이지만, 그녀는 주은우의 시험지가 적어도 70점은 나올 거라고 확신했다. 주은우의 수학 성적은 지금까지 합격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어... 시험지는 네가 줬으니 답안지는 당연히 너한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주은우는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 “그럼 너무 빨리 배우는 거 아니야?” “반장이 잘 가르쳐 준 덕분이야!” “정말 그럴까?” 도시아는 맑고 큰 눈을 깜박거리며 하마터면 주은우의 거짓말을 믿을 뻔했다. “응응, 그래!” 주은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야기하며 웃었다. 이 장면은 마침 유시영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중얼거렸다. “주은우,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거로 생각하지 마. 일부러 다른 여자에게 접근해서 내 주의를 끌려고 하는 거잖아. 내가 질투할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오종현은 펜을 깨물며 갑자기 자신의 시험지를 유시영의 책상 위로 밀어였다. “유시영, 이 문제는 네가...” “꺼져...” “오...” 오종현은 서둘러 자신의 시험지를 거두어들인 후 유시영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오후 방과 후 주은우가 교과서를 정리하고 있을 때, 도시아는 갑자기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시아야, 나 출국 다녀와야 해, 운전기사가 오늘 데리러 갈 시간이 없으니 네가 직접 차를 타고 와!” “네, 알았어요!” 도시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왜 이렇게 우울해?” 주은우는 책가방을 메고 한마디 물었다. “우리 아빠가 또 출국하신대...” 도시아는 마지못해 한숨을 쉬었다. “‘또’라고?” “우리 아빠는 평생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어.” 주은우는 아연실색하며 웃었다. 도시아는 두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우리 아빠가 차를 쓰실 거야. 오늘 아무도 날 데리러 오지 않아. 아니면 네가 나를 집에 데려다줄래?” 주은우는 눈썹을 치켜들며 대답했다. “영광이지!” “그런데 우리 집이 좀 멀어.” “괜찮아, 나 자전거 잘 탄다니까!” 주은우는 도시아와 함께 가방을 메고 웃고 떠들며 교실을 나갔다. “야, 주은우, 너 우정보다 여자를 더 밝힐 거야. 나를 기다리기로 했잖아...”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려던 진태용이 욕설을 퍼부었다. 도시아는 주은우를 따라 주차장으로 왔다. 여기에 자전거가 빽빽이 주차되어 있었다. 주은우의 자전거는 산악자전거였다. 그것은 주광욱이 담배를 석 달 동안 끊어 산 것이다. 학교 교문 안에서는 자전거를 탈 수 없다. 주은우는 자전거를 끌고 교문 앞으로 걸어갔다. 도시아는 그의 곁을 따라다녔는데 마치 한 쌍의 연인과 같았다. “시영아, 주은우 혹시 다른 사람에게 빠진 거 아니야?” 멀지 않은 곳에서 전영미가 앞에 있는 주은우와 도시아의 뒷모습을 보며 두 사람의 관계에 의문을 품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도시아는 순하기로 소문난 순둥이인데 연애할 리가 없어.” “게다가, 돈 좀 있는 것 빼고는 도시아가 나하고 비교가 돼?” 유시영의 얼굴에는 지극히 자신만만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불안했다. 어제부터 자신에 대한 주은우의 태도는 완전히 변했다. 오늘은 생수 한 병 사기도 아까워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의 사과를 기다리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은 분명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시아는 도시 중심부에 살고 있는데, 학교에서 대략 5㎞ 떨어져 있다. 체인이 거의 닳아 없어질 정도로 마력을 풀가동으로 달리는 데도 40여 분이 걸렸다. 지금은 여름이라 주은우의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주은우, 고마워...” 도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맙다고 말했다. 주은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아니야... 나 먼저 갈게!” 도시아는 빨간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면 우리 집 가서 에어컨 틀고 쉬다 갈래?” “쿨럭... 아니, 집에 안 가면 엄마, 아빠 조급해하실 거야!” 주은우는 웃으며 도시아의 호의를 거절하고는 자전거에 올라 쏜살같이 떠났다. 도시아는 주은우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 주은우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다. 주광욱은 베란다에 서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영은 거실의 낡은 소파에 앉아 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저 왔어요!” 하영은 하던 일을 제쳐놓고 웃으며 말했다. “늦게 들어오는 걸 보니 또 그 여자애랑 데이트하러 간 거 아니야?” 주광욱이 밖에서 걸어 들어와 정색하고 물었다. “여자애라니? 이 자식이 연애한 해?” “학교에서 복습 좀 더 하고 오느라 늦은 거니 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요.” 주은우는 아빠의 미간에 수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애써 감추고 있지만, 전생에 힘든 사회생활을 해봤던 그는 그래도 실마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때쯤 아빠는 직장을 잃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요독증을 앓고 있으니 약을 끊으면 안 된다. 며칠 뒤 투석도 해야 한다. 아직은 반찬 셋에 국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지만 사실상 잔고가 바닥이 났다. 아무래도 돈을 좀 벌어서 아빠의 스트레스를 좀 풀어야 할 것 같았다. 하영은 부엌에 가서 따뜻한 음식을 내놓았다. “밥부터 먹자...” “오늘 네 아버지가 직접 요리를 했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찜 만들었는데 먹어 봐.” 주광욱이 만든 생선찜은 일품이다. 새콤달콤해서 입에 딱 맞다. 생선 머리, 생선, 꼬리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부모님께서 자신에게 남겨주신 것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이었다. 주천우는 코끝이 시큰거림을 느끼며 밥그릇을 들고 허겁지겁 먹었다. “자식, 천천히 먹어, 가시 목에 걸리지 않게.” 주광욱은 웃으며 말했다. 하영이 이때 물어왔다. “오늘 수능 원서 다 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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