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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몇 년 전 주광호는 길가에서 CD를 팔아 많은 돈을 벌었고, 주성에 집과 차를 샀다. 요 몇 년 동안 돈을 버는 뾰족한 방법이 별로 없었지만, 그가 저축해 둔 돈이 수백만은 된다고 짐작한다. 부자와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일반 사람보다는 나은 편이다. 주광호의 놀란 눈빛을 보면 주은우가 알아맞혔음을 알 수 있다. ‘형이 돈을 벌었어! 요즘 내가 일자리가 없으니 형에게 부탁하면 나를 데리고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가족을 위해 고개를 숙여야 할 때는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주광호는 술잔을 들고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많이 벌지는 못했어. 그저 현대 2대 정도야!” 현대 2대면 거의 천만 원이다! 주광욱의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어떻게 벌었어? 나를 데리고 함께 해줘!” 주광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너도 올해 큰돈을 벌었잖아. 작년에 고향에 갈 때는 차가 없었어.” “에이, 아니야.” 주광욱은 술잔을 들고 크게 한 모금 마시고는 사실을 말했다. “내 차는 팀장에게 빌린 거야.” “푸흡...” 장계영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억지로 체면을 세웠군!” 방금까지도 주광욱이 돈을 벌었기에 그의 체면을 좀 봐주었다고 생각했으나 차를 빌려 온 줄을 몰랐다. “도련님, 사람은 실속이 있어야 해요. 돈이 없는 주제에 왜 허세를 부려요?” “허영심이 강하면 자식 농사를 망치게 돼요!” 장계영은 생글생글 웃으며 비웃었다. 하영은 민망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채 매서운 눈빛으로 주광욱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그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당신은 체면을 버릴 수 있어도 난 안돼! 아들 생각을 하지도 않아?’ 주광욱은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코를 만지며 말했다. “형, 돈을 버는 방법이 있으면 우리 같이 해. 같이 하면 힘을 키워 가문을 빛낼 수도 있어. 마을에서 우리를 업신여겼던 졸부한테도 본때를 보여줘야지.” “광욱아, 네가 오해했어. 그들은 너를 업신여긴 거지, 난 아니야.” 술을 마시며 웃는 주광호의 눈에는 경멸의 기색이 짙었다. “우리는 친형제인데 형이 조금만 도와주면 안돼?” 주광욱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운명은 자신의 손에 있어!” 주광호는 차분하게 말했고 동생을 보살펴줄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은우가 방금 한 말은 모두 사실이야. 형은 단지 돈 벌었다고 자랑하러 온 거야?” 주광욱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주은우는 굽실거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속으로 마음이 쓰라렸다. 아버지는 기개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늘 자신에게 가난해도 뜻이 있어야 한다며 남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 직접 하는 것이 낫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정말 가족의 더 나은 생활을 위하여 그는 존엄을 버리고 사정했다. 주은우는 꼭 많은 돈을 벌어 부모님을 좋은 저택에서 살게 해주고 고급 차도 몰게 하여 큰아버지네보다 더 잘살게끔 하겠다고 다짐했다. 마을의 졸부들도 자기 부모님을 우러러보게 할 것이다. “자랑하러 온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동기 부여하려고 왔어!” 주광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하영은 듣다못해 수저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주광욱은 술을 끊임없이 술을 마셨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주광호는 가족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 주광욱과 주은우는 그들을 아파트 입구까지 바래다주었다. 주광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주은우의 어깨를 다독였다.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도 괜찮아. 내가 알고 있는 공사장이 있으니 합격하지 못하면 그곳에서 일을 배울 수도 있어.” 주은우는 피식 웃었다. “큰아버지, 쓸데없는 걱정이 참 많아요. 난 꼭 강성 대학교에 붙을 거예요!” 전생에 많은 것을 겪어 본 주은우는 감정을 억제할 줄 알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데 자신의 감정조차 주체하지 못하면 남들의 눈에는 그저 무능하여 광분한 사람일 따름이다. “너 혹시 생각해 봤어? 강성 대학교에 입학했더라도 꼭 성공하지는 않을 거야.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모두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주광호가 한 말은 다소 현실적이지만 또한 사실이기도 하다. 주은우도 몇 년 간 밖에서 떠돌면서 세상 물정을 많이 알았기 때문에 이 말을 대뜸 이해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아이가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지식은 운명을 바꿀 수 있어요!” “큰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운명은 자신의 손에 있어요. 그러니 내가 나의 운명을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간섭할 필요가 없어요!” “큰아버지...” “응?” 주은우가 어떻게 이런 말을 했는지 의아해하던 주광호는 갑자기 주은우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난한 소년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주은우는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이후에 출세할 수 있으니 나보고 지금부터 아부하라는 거니?” 주광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날이 어두워졌으니 일찍 돌아가서 쉬세요. 아니면 방이 없을 수도 있어요.” 주은우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는 가볍게 웃었다. 말다툼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돈을 벌어야만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 주광욱은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고는 힘껏 한 모금 빨았다. 그의 말투에는 자책감이 가득했다. “아들아, 오늘 내가 너와 네 어머니를 망신시켰구나!” 178cm인 주은우는 주광욱보다 키가 더 컸다. 그는 오른손을 주머니를 넣고 왼손으로 주광욱의 어깨를 끌어안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도 가족을 위해서 자존심을 내려놓았어요. 잃어버린 체면은 우리가 조만간 찾아올 거예요!” 주광욱은 입을 벌리고 또 일부러 엄숙한 체하며 말했다. “아들, 봤니? 능력이 없으면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수 있으니 넌 반드시 대학교에 입학하여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누가 우리 아빠가 능력이 없다고 했어요?” “나중에 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여줄 거예요.” 부자는 웃고 떠들며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갔다. 어두컴컴한 가로등 아래로 뒷모습이 점점 길어져 갔다. … 주광호 일가가 주성에 돌아간 후 주은우는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6시에 한 시간 복습을 한 뒤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밥을 먹은 후 복습을 하다가 11, 12시가 되여서야 비로소 샤워하고 잠을 잤다. 하영은 주은우를 걱정했다. “여보, 아들이 당신 형한테 자극을 받은 거 아니지? 이렇게 강도 높은 공부를 몸이 감당할 수 있을까?” 주광욱은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말했다. “우리 아들이 최근에 많이 성숙해졌고 철이 들었어. 당신 발견했어?” 하영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른스러워졌어.” 무슨 생각이 난 듯 하영은 갑자기 몸서리를 치며 물었다. “아들이 혹시 귀신에게 홀린 것이 아닐까? 옆집 형수님의 말을 들어보니 사람은 귀신에 홀린 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고 했어.” 주광욱은 하영의 이마를 튕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우리 아들이 이제 다 컸어.” 시간은 쏜살처럼 빨리 흘렀다. 고 3학년 학생들은 더 열심히 수능을 준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능시험이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 최옥하는 교단에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능시험까지 아직 5일이 남았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니 선생님은 너희들이 꼭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다고 믿어!” 선생님은 안경을 밀고 자기 앞에 앉은 주은우를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그중에서 가장 칭찬받을 만한 학생은 주은우야! 몇 번 모의시험을 봤는데, 각 과목 성적이 모두 우수했어!” 훌륭할 뿐만 아니라 변태 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옥화는 심지어 주은우의 점수를 감히 보고하지 못했다. 매 과목에서 모두 낙제를 하던 주은우가 짧디짧은 한 달간의 복습을 거쳐 각 과목의 성적이 모두 90점에 달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녀는 자신이 이 비밀을 털어놓으면 주은우가 연구센터에 붙잡혀 실험용 쥐처럼 실험대상이 될까 봐 걱정되었다. “은우 형, 요즘 공부에 미쳤어. 점심 휴식 중에도 시험지를 풀고 있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화장실에 갈 때도 영어책을 들고 갔어!” “젠장, 말도 안 되는 소리!” 학생들은 모두 주은우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진태용은 가슴을 움켜쥐고 심장이 아픈 척하며 말했다. “은우야, 우리의 맹세를 잊은 거 아니지? 우리는 함께 공장에 들어가 함께 일하겠다고 했었어!” 주은우는 고개를 돌려 진태용을 노려봤다. “내가 언제?” “말했었어, 말했었다고!” 진태용은 입을 삐죽거리며 괴상한 표정을 지었고 주은우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등신을 알게 되었을까?’ 비록 진태용은 활발한 학생이지만 그는 깊이 사귈만한 좋은 친구였다. 전생에 진태용은 지방대에 붙었으나 자신이 수능에 합격하지 못하여 공장에 일하러 가게 되자 공부를 포기하고는 함께 일하러 갔다. 그러나 3, 5개월 후에 진관영에게 붙잡혀 강제로 입학하게 되었다. 진태용은 대학교 졸업후 진광영이 준 2000만 사업자금을 가지고 작은 장사를 시작했고 그 후로 몇 년 동안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다행히 임종 전에 진태용은 병원에 와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그는 비통해하면서도 부모님을 잘 보살펴 드리고 친부모처럼 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주은우는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마지막 5일은 모두 집에서 적당히 휴식도 하면서 조율해. 5일 후에 수능시험을 보게 되니 시험 당일은 지각하지 말고 일찍 도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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