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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시... 시영아, 들었어? 주은우가 쟤를 시아라고 불렀어.” 전영미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호칭은 너무 애매했다. 이 시대의 고등학생들은 모두 매우 보수적이었다. 어떤 친밀한 호칭도 여러 가지 상상을 떠올릴 수 있게 했다. 그러니 도시아와 전영미가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뭐 어때, 날 시영이라고 부르니!” 유시영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지만 눈동자에는 당황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주은우가 자신이 사준 콜라를 받아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배드민턴을 치자고 하는 것도 거절했다. 그녀는 주은우가 자신을 포기할까 봐 매우 걱정했다. 도시아는 주은우가 농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그늘진 나무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표정이 복잡했다. 주은우는 정교한 농구 기술로 상대를 제압했다. 도시아는 흥미진진하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주은우가 다가와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어때, 멋있었어?” “뭐?” 도시아는 발그레한 얼굴을 들어 주은우를 쳐다보다가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치고 또 재빨리 머리를 숙여 낮은 소리로 말했다. “멋져.” 1m 78㎝의 키에 빛나는 눈동자, 수려한 이목구비, 살짝 흐트러진 앞머리에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눈빛은 이 나이에 속하지 않은 깊이가 담겨 있다. “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주은우가 자기 자랑을 했다. “자기애가 넘치네!” 도시아는 돌아서서 강의실로 갔다. “야, 시아야, 배드민턴 칠래?” 뒤에서 주은우가 큰소리로 물었다. ‘또 시아!!!’ 도시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은우는 탈의실에서 보송보송한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 교실로 돌아와 도시아와 함께 영어 복습을 했다. 두 사람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때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한 여학생이 도시아의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반장, 저기... 화학 문제를 하나 물어봐도 될까?” 여자아이는 긴장한 기색이라 목소리가 낮았다. “그래...” 도시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주은우도 고개를 들어 힐끗 보았다. 곧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구청아는 집안이 가난하다. 수능 당일 택시기사에게 당한 뒤 경찰이 시신을 찾았을 때 이미 얼굴이 가려볼 수 없을 정도 훼손됐고 몸에는 7, 8명의 DNA가 남아 있었다. 자신이 죽기 전까지 구청아를 침해한 무리를 잡지 못했다. 구청아 가족은 범인을 찾느라 재산을 탕진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주은우는 호흡이 가쁘고 펜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주은우, 먼저 자리를 비켜줘.” 도시아는 고개를 돌려 주은우를 바라보았다. 주은우의 안색이 좋지 않자 그녀는 주은우가 자리를 양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여 구청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창문 쪽으로 가자.” 구청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아니야, 내 자리에 앉아.” “고마워.” 구청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웃었다. 주은우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구청아를 두어 번 더 본 후 창가 아무도 없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신이 환생하면서 운명의 궤적이 조금 어긋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건이 기존 노선을 따라 추진되고 있다. 구청아의 참사는 아마 또 발생할지도 모른다. 주은우는 심호흡하고 나서 구청아를 구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것이 환생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도시아의 인내심 있는 설명 아래, 구청아는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반장, 고마워.” 도시아는 빙그레 웃었다. “천만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응!” 구청아는 힘껏 고개를 끄며 울 것 같았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내성적인 그녀는 반에서 사람들과의 접촉이 적었고, 그녀와 놀려는 사람도 적었다. 그녀는 화학 성적이 좋은 친구를 찾아 배우려 했지만 그 친구는 핑계를 대고 사양했다. 요 며칠 반장이 인내심 있게 주은우를 가르치는 걸 본 그녀는 용기를 내 반장을 찾아온 것이었다. 뜻밖에도 반장이 정말 승낙했다. “구청아...” 주은우는 교과서를 안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어어, 왜?” 구청아는 매우 얌전하게 주은우를 바라보았다. “주은우, 자리를 양보해 줘서 고마워.” 주은우는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반장은 화학 문제를 가르쳐줬다. 그녀는 처음으로 학생들의 열정을 느끼고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왜 기숙사에 안 있는 거야?” 주은우가 입을 열어 물었다. 구청아는 학교와 집이 멀어 수능 당일 택시를 탔다. 그녀가 기숙사 생활을 했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다른 도시에서 일하는데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어. 그래서 내가 할머니를 돌봐야 해...” 구청우는 고개를 숙이고 설명했다. “그럼 너 학교에 있는 동안 할머니는 어떻게 해?” 도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낮에는 착한 이웃이 돌봐주고 저녁에는 내가 할머니를 돌봐.” 따르릉! 하교 종이 울렸다. “반장, 주은우, 고마워. 할머니 밥해드리러 가야겠어.” 구청아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떠났다. 도시아가 감탄했다. “어쩐지 구청아가 너무 아낀다 싶었어. 버스도 못 타더라니까.” 주은우는 손에 쥔 펜을 돌리며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들었다. 구청아가 뇌졸중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돌봐야 해서 학교에 입원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고교 기숙사비도 만만치 않다. 보아하니 수능 전에 구청아가 택시를 타지 못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주은우, 나 집에 데려다줄래?” 도시아가 교과서를 정리하고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래...” “그래도 콜라는 사줘야지!” 주은우는 돌리고 있던 펜을 움켜쥐고 웃었다. “콜라 안 좋아하잖아.” “누가 주냐에 따라 다르지!” “누가 주든 다 콜라잖아.” “아니야, 달라.” 주은우는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도시아는 안경을 고쳐 쓰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 버킷 가든 단지. 입구에는 현대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다. 주광욱은 올백 머리를 하고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셔츠 자락을 양복바지에 묶었다. 검은 구두는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았다. 방금 이웃과 함께 시장에서 장을 많이 보고 돌아온 하영은 주광욱이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하영 씨, 남편이 승진해서 월급이 올랐어요?” 이웃 오혜영이 입을 가리고 몰래 웃었다. 이에 하영이 대답했다. “말도 말아요. 잘리지 않으면 다행인데 승진이 뭐고 월급 인상이 뭐예요.” “오늘이 두 사람 결혼기념일이에요?” 오혜영이 계속 물었다. “아니에요. 오늘은 아주머님이 우리 집에 올 거예요.” 하영이 웃으며 설명했다. “어쩐지 이렇게 많이 사더라니!” “아이고, 우리 딸 학교 끝나가니까 빨리 데리러 가야 하니까 이 식자재들 좀 갖다 줘요.” 오혜영은 하영의 주머니에 식자재를 쑤셔 넣었다 하영은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주광욱을 향해 걸어가며 투정 부리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있는 척은....” 주광욱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 우리 형 성질 알잖아. 우리가 있는 척하지 않으면 또 뭐라 할 건데, 우리는 괜찮지만 아들 입장은 생각해야지 않겠어?” “엄마, 아빠... 다녀왔습니다!” 주은우는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현대 차 옆에 멈춰 섰다. 이 현대차를 본 주은우는 안색이 좀 이상해졌다. 이 차는 아버지께서 빌려온 것이니, 아마 공항에 가서 큰아버지 가족을 마중해야 할 것이다. 04년형 현대차는 몇천만대로 미래의 랜드로버와 맞먹는다. “엄마랑 밥하고 있어, 내가 공항에 큰아버지 마중 나갈게!” 주광욱은 주은우의 어깨를 툭툭 친 뒤 운전석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주은우는 멀어져 가는 현대차를 보며 속으로 탄식했다. 전생에 유시영을 따라다니느라 학업을 등한시하여 부모님이 잘 지내지 못했다. 이번 생에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해야 한다. 집에 돌아온 하영은 곧장 부엌으로 걸어갔다. “주은우,너는 집 청소해!” “하든 말든 똑같아요!” 주은우는 입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뭐라고?” “아니에요.” 주은우는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전생에도 큰아버지가 오신 대서 방을 먼지 하나 없이 청소했지만, 큰어머니는 여전히 집이 더럽다고 싫어했다. 큰아버지 가족은 친척 집 방문이 아닌 자랑질 하러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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