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장

‘남자들은 원래 딴 여자에게 한눈팔게 돼 있을까?’ 남편이 외도를 저지른 영상을 입수한 후 강리아는 몇 번이고 돌려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영상 속 한 여자가 밤 11시가 다 된 시각, 박시후의 호텔 방 문을 두드렸고 이에 박시후는 샤워가운만 입은 채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3시간이 지난 후에야 방 문이 다시 열렸다. 제법 박시후다운 제스처였다. 영상 오른쪽 상단에 표시된 시간은 어제, 바로 그가 출장 간 셋째 날이었다. 아마도 밖에서 외로움과 적막함을 못 견디고 생리적 욕구를 풀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론 점잖아 보여도 이 남자는 밤에 욕구가 매우 강렬하다. 결혼 생활 2년 동안 그녀는 밤에 온전히 잠을 자본 적이 거의 없다. 만약 진짜 욕구 해소가 목적이었다면 이건 외도가 맞을까? 엄마가 교육한 바에 의하면 이건 외도가 아니다. 하지만 강리아는 여전히 마음이 안 내켰다. 그녀는 휴대폰을 끄고 식탁 위에 놓인 다 녹아내릴 듯한 케이크를 지그시 바라봤다. 박시후는 로맨틱한 남자가 아닌지라 그녀의 생일을 챙긴 적이 없다. 다만 오늘은 그의 생일이기에 강리아가 직접 케이크를 만들었다. 이 남자가 생크림을 싫어하는 걸 알고 있는 그녀는 일부러 아이스크림 케이크로 만들었다. 게다가 범띠인 박시후를 위해 그녀는 호랑이 퐁당 케이크를 배워왔다. 쌀쌀한 늦가을, 강리아는 한참 동안 남편을 기다렸고 케이크가 거의 다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호랑이 모형은 삐뚤삐뚤하게 케이크에 꽂혀서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냥 혼자 먹을지 아니면 박시후한테 전화해서 집에 돌아오냐고 물을지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방금 영상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의 차가 마당에 들어설 때까지 강리아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덜컥. 차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의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졌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박시후가 흐릿한 불빛의 현관 아래에 서 있었다. 남자는 짙은 눈동자에 높은 콧날, 얇은 입술을 지녔다.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라인이 드러나는 맞춤 정장을 입으니 우아한 기품이 저절로 흘러넘쳤다. 결혼 생활 2년 내내 그녀는 매일이다시피 이 얼굴을 마주하지만 그럼에도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박시후는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몸매, 재력과 실력을 모두 겸비하였으며 집안 출신까지 으리으리하다. 강리아는 정말 그의 몸에서 어떠한 결점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이 남자가 바로 어릴 때 혼약을 맺은 상대란 걸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결국 그와의 비밀결혼에 응했고 꿈도 포기한 채 은둔형 사모님으로 살게 됐다. 종일 박시후의 주위만 맴돌며 마치 그의 엄마 같은 현모양처가 되었다. 박시후가 그런 그녀를 좋아할지 말지는... 강리아는 문득 옛 생각에 빠져들었다. 2년 전 강씨 가문에서 투자 실패로 일락천장이 됐을 때 그녀의 아빠 강성한은 제 딸을 다 늙은 영감탱이에게 시집보내서 돈을 받아내기로 했다. 그때 박시후가 직접 나서서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했고 덕분에 강리아도 그의 와이프가 됐다. ‘그러니까... 박시후도 날 좋아하는 거겠지.’ 낯선 이에게서 받은 메시지, 어렴풋한 얼굴 정면, 어쩌면 이 영상이 오해의 소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니 내일 다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캐물을 예정이었다. “6시에 돌아오기로 했잖아요?” 강리아는 앞으로 다가가 그가 벗은 검은색 정장 외투를 건네받았는데 짙은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멈칫하며 박시후를 올려다봤다. “일 때문에 바빴어.” 그는 단답형으로 대답하곤 식탁 위의 케이크를 힐긋 보더니 미간을 구겼다. “생일 축하해요!” 강리아는 잡념을 꾹 집어삼킨 채 보조개를 드러내고 조신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남편을 지그시 바라봤다. 한편 박시후는 그런 그녀를 보는 척도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넥타이를 슬쩍 풀어헤치더니 속살을 은은하게 드러냈다. “해장국 좀 끓여놔.” 짙은 향수 냄새 말고도 이 남자의 몸에서 지독한 술 냄새가 났다. 강리아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일단 올라가서 샤워해요. 뜨거운 물 다 받아놨어요.” 아무런 대답이 없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가 어느덧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닌지라 강리아는 애초에 서운하던 데로부터 이젠 무덤덤해졌다. 엄마가 말하길 남자들은 다 이렇다고 한다. 결국 그녀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어쩌면 그 영상을 본 탓인지 자꾸만 짜증이 밀려와서 겨우 감정을 추슬렀다. 그녀는 해장국을 끓이는 와중에 케이크를 정리했다. 식탁이 어수선해지면 안 되니까. ‘과음해서 속 쓰려서 그랬어. 생일 축하한다는 내 말에 대답하기 귀찮았던 거야. 이따가 해장국 마시고 나면 케이크 꼭 한 입 맛볼 거야.’ 강리아는 이렇게 생각하며 케이크를 한쪽 옆으로 옮겨놓고 해장국을 다 끓인 후 박시후에게 전화하려 했다. 내려와서 밥을 먹으라고 전화하려던 참인데 휴대폰을 연 순간 상단에 기사가 하나 떴다. [시온 그룹 대표 거액으로 소속 부대표의 생일파티 마련, 두 사람 열애 의혹 증폭.] 순간 강리아는 심장이 움찔거렸다. 기사를 클릭해보니 사진 몇 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박시후가 셔츠를 입고 옷깃의 단추를 느슨하게 풀어헤친 채 실핏줄이 튀어 오른 손으로 여자의 가녀린 손을 잡고 6단 케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사진 아래의 부연 설명은 이 여자가 바로 시온 그룹 부대표 임지유라고 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생일파티는 박시후가 그녀를 위해 직접 준비한 서프라이즈라고 한다. 회사의 수많은 직원들도 덩달아 보너스까지 받게 되었다. 임지유는 박시후와 생일이 같은 날이다. 둘은 서로 생일선물을 주고받으며 생일 축하 송까지 나란히 불렀다. 직접 계획하고 미리 준비한 생일파티, 바로 오늘 저녁 무렵 회사일 때문에 바쁘다고 했던 그 시각이었다... 즉 다시 말해 강리아가 정성껏 남편의 생일상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정작 남편이란 자는 임지유를 위해 서프라이즈나 해주고 있었다. 박시후가 임지유에게 준 생일선물은 몇천만 원대의 해외 브랜드 액세서리였다. 한편 임지유는 그에게 넥타이를 선물했고 케이크까지 한 입 먹여줬다. 박시후의 차가운 얼굴에 따스한 온기가 감돌았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없이 다정할 따름이었다. 고작 사진 몇 장이지만 강리아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임지유가 바로 그 영상 속 심야에 박시후의 호텔 방 문을 두드린 여자란 것을... 굵은 웨이브 머리와 S라인의 몸매가 영상과 똑같았다. 강리아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박시후가 출장이 잦고 매번 두세 날 혹은 일주일씩 다녀오는데 저번 출장에서는 그녀의 전화도 안 받고 문자에 답장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때 임지유와 함께 애틋한 시간을 보낸 걸까? 그녀가 외롭게 잠들면서 남편 생각에 젖어있을 때 박시후는 딴 여자를 껴안고 불타는 밤을 보낸 걸까? ‘그렇다면 그 영상도 팩트인 거네!’ 강리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머리가 띵해지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박시후와 임지유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만나온 걸까? 왜 그녀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 결혼식 날 박시후는 그녀에게 전업주부가 되어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강리아도 선뜻 꿈을 포기한 채 본인 삶을 2년이나 헛되이 했다. 그러다가 이제 와서 알아버렸다. 이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여강자 스타일의 임지유라는 것을. 강리아는 더 이상 저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결혼 생활 내내 어떠한 서러움을 당해도 엄마의 말대로 고분고분하게 참아왔지만 외도만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짐 정리 좀 해줘.” 이때 박시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마에 흘러내린 앞머리, 그레이 컬러의 홈웨어까지 착장하니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한결 다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피곤한 눈길로 그녀 옆에 앉아서 해장국만 마실뿐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 눈길 한번 안 줬다. 강리아의 휴대폰은 줄곧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화면도 켜진 상태라 임지유가 박시후에게 케이크를 먹이는 사진이 떡하니 보였다. 박시후는 그 사진을 힐긋 보더니 계속 국물만 마실뿐 딱히 어떤 해명도 없었다. “소속 직원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도 업무 중 하나인가 봐요?” 강리아가 참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결혼한 뒤 처음 이런 말투로 박시후에게 질문하는 그녀였다. 박시후는 미간을 구기고 음침한 얼굴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당연하지.” “시후 씨랑 항상 함께 회사 드나드는 부대표가 여자라는 말은 왜 안 했어요?” 강리아는 그의 당당한 태도에 더욱 화가 났다. “뭣 하러.” 이에 박시후가 해장국을 다 마시고는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의 냉랭한 태도가 마침내 강리아를 제대로 건드리고 말았다. 순간 그녀는 엄마의 훈계도 잊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시후를 잡아당겼다. “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우린 부부예요. 딴 여자한테 생일선물 사주는 것도 다 우리 공동 재산이고 나도 알 권리,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요!!”
이전 챕터
1/100다음 챕터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