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지난번 김도영은 하채원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병원 직원들에게 그녀의 상황을 항상 보고하도록 했다.
육태준은 어쩐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인데?”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오늘 병원에 갔는데 의사로부터 하채원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어.”
이 말은 마치 번개가 내리치는 것처럼 육태준의 귀에 들려왔다.
‘죽었다고? 그럴 리가? 분명히 어젯밤에도 멀쩡했는데!’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현기증이 몰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의사가 그러는데 어젯밤 하채원이 실려 왔는데 오늘 응급조치 중 죽었대.”
육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양복 외투를 집어 들고 문을 나섰다.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는 육태준의 귓가에는 어젯밤 떠나기 전, 하채원이 한 말이 맴돌았다.
“태준 씨, 내가 죽으면 슬퍼할 거예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는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는데 셔츠 맨 위의 단추 두 개를 풀었는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더니 김도영이 일찌감치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있어?”
육태준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갔다.
“간호사가 그러는데 누군가 데려갔대. CCTV를 확인했더니 차지욱이었어.”
새벽 1시라 김도영은 피곤한 기색으로 CCTV를 육태준에게 보여주었다.
“어젯밤 12시가 넘어 하채원이 무슨 일인지 병원에 왔는데 과다 출혈로 죽었대...”
12시.
육태준은 자신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과다 출혈로 죽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던 그는 황급히 전화해서 차지욱과 하채원의 행방을 조사하라고 했다.
오늘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김도영은 육태준의 앞에서 천천히 걸었다.
“어제까지 잘 살던 사람이 이렇게 죽었다니. 난청 환자 또 무슨 짓 꾸미는 거야?”
육태준은 그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없어 병원의 상황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후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나간 후 병원에서 최근 하채원에 대한 검사 보고서를 정리해서 김도영에게 제출했다.
김도영은 주인 의자에 앉아 귀찮다는 듯이 보고서를 펼쳤다.
전에 하채원이 약을 먹고 자살하려다가 병원에 입원해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다른 병원에서 옮겨온 모든 병례들을 보았다...
난청이 심해져 귀가 안 들린다! 습관성 귓속 출혈! 심한 우울증! 기억력 감퇴! 불임...
사망 원인: 장기 우울증으로 수면제를 과다 섭취하여 정신 장애를 일으켜... 팔목을 긋고... 출혈 과다로 사망...
김도영이 본 내용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옆에 있던 원장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좋은 아가씨가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고생을 했네요. 도련님, 하채원 씨가 4년 전에 도련님을 구했으니 지금은 도련님이 하채원 씨를 잘 도와야 해요.”
“뭐라고요?”
김도영은 어리둥절해 하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지 하채원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
원장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이 아가씨가 도련님을 구하려다 팔이 유리에 길게 찢어진 상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이 사진을 좀 보세요.”
원장은 4년 전, 피투성이가 된 소녀가 자신도 다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그는 아직 원장이 아니었다.
소녀는 그를 붙잡고 사고가 났다고 빨리 사람을 구하라고 했는데 환자를 보고 나서야 구하려는 사람이 김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공으로 지금 그는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시간이 오래 지나 소녀의 모습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소녀의 팔에 난 기다란 상처는 여전히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 소녀가 팔에 그렇게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구하려고만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인했다.
원장이 팔의 상처를 언급하는 것을 들으며 김도영은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확실히 하채원의 가늘고 하얀 팔에 손바닥 길이만큼 긴 얕은 흉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가슴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