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신지한의 말대로 강아영의 공장은 꽤 위험한 상태였다.
일단 급한 일부터 해결하고 클라이언트들에게 연락을 돌리느라 바쁘게 돌아치던 그녀는 서지훈을 발견하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잘생긴 남자였다. 짙은 정장이 쭉 뻗은 그의 몸매를 더 부각시켜주었지만 너무나 날카로운 이목구비와 그녀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에 강아영은 그냥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형수님, 형이 도와주러 왔대요.”
쪼르르 달려온 신지한은 나 잘했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지훈이? 날 도와? 정말 돕고 싶었다면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 바로 돕겠다고 나섰겠지. 지금에서야 왔다는 건... 어머님께 또 혼난 건가?’
마음에도 없는 도움 따위 받고 싶지 않았기에 강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어요.”
강아영의 거절에 오히려 서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회사 일이야. 네가 성질부릴 때가 아니야.”
‘성질을 부려? 하여간 저 남자는 내가 뭔가 음모를 꾸미든 성질을 부리든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거지? 공사 구분도 못 하고 날뛰는 멍청이로 보는 거 아니야 지금.’
굳이 해명하기도 귀찮아 강아영은 그대로 돌아섰다.
이에 불쾌한 표정을 짓던 서지훈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야?”
욱신거리는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서지훈은 더 힘을 주더니 칼날처럼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강아영은 화가 난다기보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요? 지난 3년 동안 당신이 나한테 했던 태도가 이런 식이었잖아요. 겨우 한 번에 자존심이라도 상하는 거예요?”
서지훈이 흠칫한 사이 강아영은 그의 손목을 뿌리치고 빨개진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항상 어떻게든 그의 곁에 붙어먹으려던 강아영이 이렇게 차갑게 구는 건 처음이라 서지훈의 표정 역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역시 멍한 표정을 짓던 신지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와, 형수님 저런 모습 처음 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지훈이 귀국했다는 소문만 들으면 직접 요리까지 하며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아영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면 신지한을 찾아와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도련님께서 음식 좀 전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요리를 통해 남편이 한 번이라도 자기를 보게 하려고 하는 간절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백팔십도로 달라지나 싶어 놀라웠다.
“형, 이제 어떡할 거야?”
“여기도 하운그룹 지사야. 몇천억짜리 수출 계약 건이 달려있다고.”
‘그래서 결국 도우시겠다?’
두 사람이 괜히 또 얼굴을 붉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신지한이 중재에 나섰다.
“형수님, 이번에야말로 형이랑 제대로 대화해 보고 형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인걸요.”
한편, 업무 메일 답장을 마친 강아영이 대답했다.
“글쎄요. 이젠 딱히 관심이 없어져서요. 그 기회는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 게 좋겠네요.”
그녀의 말에 잠깐 벙쪄있던 신지한이 더 가까이 다가와 설득을 시작했다.
“이렇게 헤어지는 건 너무 아쉽잖아요. 솔직히 두 사람 같이 밤을 보낸 적도 없죠. 저 얼굴, 저 몸매, 가지고 싶지 않아요?”
강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친구도 ‘절세미남’이라는 단어로 서지훈을 묘사했으니 말이다.
“도련님, 아무리 예쁜 사과라도 침이 잔뜩 묻어있으면 먹기 싫지 않겠어요?”
“...”
‘지금 형이 더럽다는 거지?’
신지한이 뭔가 말하려던 그때 강아영의 비서, 양이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빌릴 수 있는 설비는 전부 빌렸습니다. 이제 작업 가능합니다.”
“그래. 가보자.”
일어서려는 그녀를 향해 양이현이 말을 이어갔다.
“이지원 씨가 온 것 같다는데요.”
그러자 발걸음을 멈춘 강아영이 신지한을 향해 싱그 웃어 보였다.
“지훈 씨가 그 여자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이 관계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요.”
“...”
‘이지원 그 계집애는 왜 하필 이런 때.’
잠시 후, 강아영은 마침 사무실 문 앞에서 떠나려는 서지훈과 마주친다.
“난 중요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지한이가 도와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걔한테 시켜.”
“그래요.”
강아영은 형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신지한이 그를 붙잡으며 애써 눈치를 주었다.
“형, 여기도 하운그룹 지사라고 몇천 억대 수출 건이 달려있다면서. 지금 여기보다 더 급한 일이 있을까?”
하지만 강아영은 서지훈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돌아섰다. 그가 어떤 답을 할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 일이고 뭐고 서지훈에게 이지원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와이프인 그녀는 영원히 뒷전으로 밀려도 되는 존재로 지난 3년간 살아왔다.
강아영은 방금 전 신지한의 말에 흔들리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었다.
‘안 그랬으면 이게 무슨 개망신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