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이튿날 아침, 고현우는 특별히 운전해서 나랑 같이 엄마 보러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병실에 도착하자 안에 아무도 없었고 침대도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고 얼른 복도에 있는 간호사를 잡고 물었다.
"저기요, 603실 환자분 왜 없어요?"
"603실 환자분..."
간호사는 복도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아침 VIP 병실로 옮겼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멈칫했고 바로 머리를 돌려 고현우를 바라보았다.
"네가 엄마 VIP 병실로 옮긴 거야?"
고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이내 미간을 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내가 아니면 누구겠어?"
나는 감동에 목이 멨다.
"고마워, 여보."
교대 병원의 병실이 워낙 많지 않았기에, 일반 병실도 그때 고현우가 겨우 부탁해서 입원할 수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엄마가 간암 말기라, 아파서 잘 쉬지도 못하시는데, 옆 침대에 또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가 매일 저녁 신음을 내서 더 쉬지 못하셨다.
오빠도 엄마가 편히 있었으면 해서 사람을 찾아다녔지만 VIP 병실이 계속 예약이 접속된 상태라 예약할 수가 없었다.
고현우가 엄마한테 이렇게 신경 쓸 줄 몰랐다. 어제 육지연 때문에 억울했던 마음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우리 사이에 뭘 감사 인사를 해?"
고현우는 가볍게 웃고는 내 손을 잡고 VIP 병실로 걸어갔다.
고개를 들어 그의 잘생긴 옆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설렜고 드디어 결심했다.
"현우야, 너한테 할 말 있어..."
어제, 육지연의 일 때문에 임신했다는 걸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육지연의 오해도 풀렸기에 그를 속일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일?"
고현우가 묻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뻥긋거렸다. 하지만 말하기도 전에 오빠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VIP 병실에서 흘러나왔다...
"형님, 별말씀을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진성의 목소리가 문밖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고현우를 바라보았다.
"네가 선배한테 부탁한 거야?"
고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아주 의아했다- 왜 머뭇거리지?
설마 현우가 선배한테 부탁한 게 아닌가?
하지만 내가 답을 찾기도 전에 고현우가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현우?"
오빠는 고현우를 보자 바로 미간을 찌푸리고는 비꼬며 말했다.
"그래도 안 잊고 왔네?"
오빠랑 고현우가 계속 사이가 안 좋았었다. 특히나 나랑 고현우가 결혼하고 나서, 오빠는 고현우가 나를 소홀하다면서 나까지 마음에 안 들어 했다.
고현우는 오빠를 무시하고는 침대에 기대 있는 장모님을 보며 말했다.
"어머님, 괜찮으세요?"
"현우 왔니? 나 괜찮아, 걱정 마."
엄마는 웃으며 고현우를 바라보았다. 다만 어제 응급실에 실려 갔었기에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했다.
"어제 일은 하윤이한테 들었어요."
고현우는 침대 앞으로 가서 다정하게 말했다.
"어머님, 죄송해요, 걱정 끼쳐드렸네요."
고현우는 역시 사업 엘리트라 말을 잘했기에, 몇 마디로 바로 어제의 '스캔들'을 해명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난 엄마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랑 하윤이가 괜찮으면 돼."
목적을 다 이뤄서야 고현우는 고개를 돌려 부진성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친구 보러 왔다가, 어머님 만났거든, 그래서 보러 왔어."
부진성은 눈썹을 씰룩거리며 여전히 나른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제 후배님이 아줌마한테 VIP 병실로 옮기고 싶다고 들어서, 병원에 마침 친구가 있어서 바로 바꿨어."
나는 의아해서 부진성을 바라보았고, 그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 분명히 이런 말 한 적 없었는데...
아니야-
나는 그제야 반응했다. 엄마가 VIP 병실을 옮긴 게 부진성이 도와준 거였어?
그럼 고현우가 왜 방금 자기가 했다고 한 거지?
고현우도 그걸 눈치챘는지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머쓱해서 코를 만지작거리더니 부진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다, 친구야."
부진성은 그를 힐끗 보더니 바로 고현우의 손을 쳐내고는 웃는 둥 마는 둥 한 표정으로 말했다.
"착각하지 마, 후배님 체면 보고 해준 거니까."
"너 이 자식!"
고현우와 부진성은 바로 얘기 나누러 나갔다. 나는 얼른 고현우가 가져온 과일을 씻어 침대 옆에 앉아 엄마가 드시기 편하게 작은 조각으로 썰어주었다.
"너랑 현우 어제 안 싸웠지?"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엄마가 걱정할까 봐 얼른 말했다.
"안 싸웠어요."
"그럼 다행이네..."
엄마는 안도의 숨을 쉬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랑 현우가 잘 살아야지, 내가 죽으면 네가 기댈 사람은 현우밖에 없어..."
"엄마..."
나는 코끝이 찡해 났고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그런 말 마세요, 엄마 백 세까지 살 거예요."
엄마는 힘없이 웃었는데 눈빛에 세상에 대한 미련과 동경으로 가득했다.
"그래, 우리 하윤이 결혼하는 것도 보고, 아이 낳는 것도 봐야지..."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심호흡하고는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엄마, 저 임신했어요."
"뭐?"
엄마와 오빠가 동시에 소리 질렀다.
"하윤아,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보고 있던 오빠가 '슉'하고 일어나더니 내 옆에 와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내 배를 바라보았다.
오빠의 시선이 너무 뜨거운 탓이었는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어루만지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제 알게 됐어요..."
"정말 잘 됐어!"
엄마도 아주 기뻐했다.
"현우도 알아?"
"아직 말 못 했어요..."
"얘도 참, 이렇게 큰 일을 말 안 하면 어떡해?"
엄마는 진짜 너무 기뻐하셨다.
"이러지 말고 얼른 현우한테 가서 말해."
나는 엄마를 이길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고현우 찾으러 병실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두 사람이 없었기에, 고현우한테 전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육지연이 너 때문에 이혼한 거라고?"
부진성의 목소리였다, 다만 그 말투에 평소의 나른함은 사라졌고 오히려 위압감이 가득했다.
쉬운 질문이었지만 상대방은 머뭇거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고현우의 대답이 들렸다.
"응..."
미소로 가득했던 나는 순간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피까지 굳어버린 것 같았고 얼음 속에 빠진 듯 차가워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