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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박 대표가 법을 잘 모르나 본데,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30일이 지나면 계약은 자동으로 종료돼. 그 누구의 승인도 필요 없다고.” 우리는 순식간에 팽팽한 신경전을 이뤘다. 다들 멍하니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그녀의 험상궂은 얼굴을 외면해버리고 곧게 익숙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다만 평상시에 앉던 메인 석이 아니라 방청석에 앉았고 서류나 펜도 챙기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여유롭게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다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런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만 비벼댈 뿐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말이 회사 업무이지 실은 나 홀로 완성한 작품이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문외한이다. 10분 뒤에 회의가 곧 시작된다. 박서아는 계속 내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나는 보는 척도 안 했다. 결국 그녀가 메인 석에서 일어나 내게 달려오더니 복도로 끌고 나가는 것이었다. “요즘 내가 좀 거칠었지? 알아 나도. 그러니까 얼른 화 풀어.” “어제도 내가 먼저 화낸 건 맞지만 너라고 아무 잘못 없어? 결혼기념일에 선물은커녕 시큰둥하게 있는데 화가 안 나?” “됐어, 그만하고 오늘 회의는 네가 주최해. 모든 사람 앞에서 네 실력을 인정받는 거잖아. 이따가 투자자분도 네가 직접 소개해줘, 응?” “되긴 뭐가 돼?” “난 이미 사표 냈어. 이렇게 중요한 회의는 박 대표가 눈여겨보는 최 이사한테 시키든가. 최고 매출 달성자라며?” 말을 마친 후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가 시작되고 최이준은 나 대신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는 어디서 내 PPT를 구해왔는지 뒤쪽에 배경판만 떡하니 만들어놓았다. AI 홈퍼니싱에 관한 기능과 제작 컨셉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도 없고 그저 회사의 미래와 자신의 기여에 대해서만 번지르르하게 자랑을 늘려놓았다. 이건 뭐 처음부터 끝까지 빅 픽처만 그리다 말았고 최이준에 관한 허풍밖에 남은 게 없었다. 그는 잔뜩 흥분해서 연설했지만 투자자의 얼굴은 점점 더 짙어져만 갔다. 결국 회의는 침묵 속에서 종료했다. 투자에 관한 얘기도 없고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말도 없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박서아가 투자자를 붙잡고 똑똑히 물어보려 했지만 최이준이 덥석 가로챘다. 그는 투자자가 협력을 묵인한 줄 알고 눈치도 없이 악수하며 아양을 떨었다. “아이고, 우리 대표님들, 오늘 밤엔 제가 근사하게 모시겠습니다. 다들 끝까지 달리는 겁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가까이 다가가 이제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최이준이 또다시 가로챘다. “구 대표, 아니지, 민기 씨는 이제 사직했으니 이런 장소에 나올 필요 없어. 굳이 오늘 밤 회식 자리에 나와서 깽판 부리지 마.” “박 대표님이야말로 우리 회사 오너야. 쿨하게 내게 페라리도 선물했다고. 민기 씨처럼 쪼잔해서야 무슨 일을 성사하겠어? 영업이라는 건 친구 사귀는 거나 다름없어. 서로 말이 잘 통하면 자연스럽게 성사되는 거지. 안 그래요?” 그는 동네 건달들처럼 투자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순간 주위에 있던 동료들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투자자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고 아무도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다만 어리석은 박서아도 투자자가 묵인한 줄 알고 재빨리 비서에게 룸을 예약하라고 했다. 최이준은 맨 뒷줄에 서 있는 내게 경멸의 미소를 날리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민기 씨, 기운 내. 이 프로젝트가 민기 씨 공로인 걸 알아. 하지만 회사가 박 대표님 회사이자 우리 모두의 회사잖아. 그럼 민기 씨 성과도 회사 성과 아니겠어? 인간이 너무 이기적이면 못 써.” “앞으로 시름 놓고 나랑 함께 잘해나가면 돼. 혹시 알아? 내가 기분 내키면 민기 씨 연봉 올려주고 승진시켜줄지? 그거 다 내 말 한마디면 해결될 일이야.” 그는 말하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다 회사 이익을 위해, 박 대표님을 위해서잖아. 뭘 화내고 있어 속 좁게?” “아직 불만이 많은 거 알아. 이렇게 해 그럼. 오늘 밤 회식에 민기 씨도 끼워줄게. 우리 함께 술 한잔 기울이면서 회포를 풀자고, 응?”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매우 차분하게 말했다. “분명 사직했다고 말했을 텐데? 그리고, 내가 왜 너희 둘이랑 술을 먹어야 해? 그 더러운 손 당장 치워.” 많은 회사 임원들 앞에서 최이준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는 짜증 난 표정으로 그를 밀치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이때 최이준이 속상한 눈빛으로 박서아를 바라봤다. 이어서 박서아가 기세등등하게 다가오더니 나를 홱 돌려세우고 뺨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찰진 귀싸대기 소리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구민기, 이 X신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네 멋대로 굴어? 네가 가당키나 해?” “이준이가 너 난감할까 봐 최대한 체면 살려주고 있잖아. 적당히 해야지, 감히 투자자분 앞에서 우릴 망신을 줘? 일부러 프로젝트 망칠 작전이야?” 옆에 있던 최이준이 속절없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마치 본인은 할 만큼 했다고 티 내는 것 같은데 아쉽게도 눈치 빠른 나에게 금세 들켰다. 나는 드디어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코앞에 있던 박서아는 나의 포효에 넋을 잃고 말았다. “내 체면을 살려줘? X발 너야말로 미쳤어?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완성한 거야. 프로그램도 전부 내가 작성한 건데 대체 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체면을 살려준다는 건데?” 박서아는 꼭지가 돌아서 상황을 가리지 않고 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준이는 곧 나랑 결혼할 거고 차기 회사 대표가 될 거야. 이거면 되겠어?” 그녀는 내 옷깃을 잡아당기고 미친 듯이 날 가격했다. “지금 당장 이준이한테 사과해. 이건 명령이야! 또한 회사에 손해배상금도 물어! 안 그러면 우리 이혼이야. 빈 몸으로 내쫓아버리는 수가 있어!” 이젠 투자자까지 입이 쩍 벌어졌다. 그는 싸움을 말리려고 했으나 내가 가로막았다. “그래? 빈 몸으로 내쫓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투자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오늘 투자 건은 취소하고 박서아 씨를 공식적으로 회사 주주에서 제명할 겁니다. 앞으로 업계에서 무릇 박서아 씨와 협력하는 분들은 저 구민기와 등지겠다는 거로 이해하겠습니다!” 투자자는 곧장 내게 깍듯이 경례했다. “네, 구 대표님.” 순간 박서아는 온몸이 굳은 채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뒤돌아봤다. “방금 뭐라고 했어, 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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