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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임예지는 동료들과 인사하느라 바빠서 임서우를 보지 못했는데 강하성이 옆에서 알려주자 문득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빌딩에서 나왔는데 강하성은 어떻게 임서우를 한눈에 발견했을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쫓아갔다. “서우야, 잠깐만.” 그녀는 임서우의 팔짱을 꼈다. “함께 축하파티 하기로 했잖아. 왜 몰래 도망치려고 그래?” “됐어. 난...” 임서우는 전혀 가고 싶지 않았다. “언니 귀국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두 사람 오붓한 시간 보내. 난 방해하지 않을게.” “그게 무슨 말이야?” 임예지는 얼굴이 빨개졌다. “너랑 하성이는 아직 이혼도 안 했잖아. 게다가 네가 남이야?” “언니.” 임서우가 재빨리 해명했다. “하성 씨한테 언제 시간 되는지 물어봐 줘. 얼른 가서 이혼 수속하게.” “내가 왜 물어? 네가 직접 물어봐야지.” 임예지는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시집가지 못해서 안달인 것처럼 보이면 안 돼. 잘 들어 서우야, 남자들은 쉽게 얻을수록 소중히 여기지 않아.” 임서우는 순간 멍하니 넋 놓았다. 그러니까 강하성에게 그녀는 너무 쉽게 차려진 여자라서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걸까? 그녀는 끝내 임예지에게 끌려 차에 올라탔다. 임서우가 앞에 앉고 임예지와 강하성은 뒤에 탔다. 임서우는 머리를 푹 숙였다. 지금 창백한 이 얼굴이 얼마나 보기 흉할지 가히 짐작이 갔다. 가는 길에서 거의 임예지만 입을 나불거렸다. “하성아, 뭐 먹을래? 일식 아니면 양식?” “아무거나.” “넌 항상 이래. 됐다, 서우한테 물어봐야지. 뭐 먹고 싶어 서우야?” “응? 나도 아무거나 다 괜찮아.” “그런 메뉴는 없어. 오늘은 널 축하하기 위한 자리야. 무조건 하나 골라.” “그럼 양식 먹어.” “양식? 나 1년 내내 해외에서 질리게 먹었지만 서우가 먹자고 하니 그럼 양식으로 하자.” “응? 일식, 일식 먹어도 되는데.” “아니야. 양식 먹어.” 레스토랑에 도착한 후 임예지는 또 분주하게 메뉴를 다 고르고는 임서우를 향해 두 눈을 깜빡였다. “화장실 잠깐 다녀올게.” 임서우는 순간 그녀가 이혼 얘기를 언급하라는 걸 알아챘다. “하성 씨.” 임서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이 남자를 힐긋 바라봤다. “언제 시간 돼요? 함께 가서 이혼 수속해요.” “넌 나보다 더 급해 보이네?” 강하성이 코웃음 쳤다. “걱정 마. 시간 나면 바로 가줄 테니까.” “네.” 임서우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볼일 있어서 이만 갈게요. 언니한테 대신 잘 말해줘요.” 그녀는 도망치듯 레스토랑에서 빠져나온 후 임예지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 하성 씨한테 물어봤는데 시간 나는 대로 바로 가서 수속해주겠대.] 곧이어 임예지의 답장이 도착했다. [알았어. 하성이가 요즘 회사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네가 자주 말해줘야 해. 우리 서우 착하지. 그럼 다음에 또 맛있는 거 사줄게.] 임서우는 강변을 산책했다. 오늘은 김은아가 라이브 방송을 하는 날이라 조금 늦게 돌아가야 한다. 강변이라 바람이 세게 불어 눈물이 흩날렸다. 이젠 정말 강하성을 놓아줄 때가 되었다. 이어진 며칠 동안 강하성은 줄곧 아무 연락이 없었고 오히려 임예지가 하루가 멀다 하게 임서우를 불러냈다. 그녀는 지금 안달이 나서 임서우더러 빨리 강하성을 재촉하라고 눈치를 주고 있다. 하지만 강하성이 어떤 사람인가? 그가 과연 흔쾌히 임서우의 뜻대로 해줄까? 회사 작업실에서 텅 빈 작업대는 줄곧 비어 있었다. 임서우는 주인 따위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그저 이연아가 그녀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서우는 계속 투명인간으로 지내야 한다. 아무도 그녀에게 업무를 분배해주지 않았고 눈길조차 안 줬다. 덕분에 그녀에게 차고 넘치는 시간이 주어졌다. 임서우는 직접 화판을 챙기고 다시 펜을 잡았다. 생각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며 충실하고 유유자적한 일상을 보냈다. 사실 이연아는 그녀가 자진 사퇴하기를 기다렸지만 정작 차려진 건 몇 장의 설계도였다. “이거 임서우 씨가 그렸어요?” 그녀는 그림을 몇 번이고 훑어봤다. 주도경 디자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옆에서 그리는 걸 직접 봤어요. 솔직히 말해서 좀 괜찮지 않나요?” 이연아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수중의 설계도는 전문 패션 디자이너의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과감한 컬러 선택과 정교한 디자인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카피이스트 주제에 진짜 한 실력 하는 걸까?’ 다음날 이른 아침, 그녀는 임서우를 사무실로 불렀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임서우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연아는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월급 날로 먹으니 기분이 너무 좋죠?” 임서우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녀는 이연아와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이에 이연아도 따분한 듯 서류 한 부를 꺼냈다. “이건 우리 회사 오뜨꾸뛰르 VIP 고객님의 자료에요. 약혼을 앞두고 드레스를 한 벌 요구하시는데 일주일 내로 견본 원고를 3개 만들 수 있나요?” 임서우는 감히 믿을 수가 없어서 두 눈을 크게 떴다. “대답해요!” 이연아는 인내심이 고갈 났다. 임서우는 행여나 그녀가 후회할까 봐 서류를 품에 안았다. “걱정 마세요, 매니저님.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연아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녀는 잔뜩 흥분한 임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몰래 생각했다. ‘이 아이는 내가 생각한 거랑 너무 다르잖아.’ 그녀는 또다시 어젯밤에 봤던 몇 장의 설계도를 되새겼다. 색감이며 그림 구상까지 임예지의 수상 작품과 너무 흡사했다. 설마 이 카피이스트가 임예지 팀장을 따라 하는 걸까? 다만 어제 본 설계도가 훨씬 더 성숙한 느낌을 주었다. 한편 임서우는 아예 몰랐다. 이 VIP 고객의 자료와 니즈를 임예지도 똑같이 한 부 가져갔다는 것을. 이연아는 문득 두 사람의 견본 원고가 너무 기대됐다. 자리로 돌아간 후 임서우는 드레스 작업에 몰두했다. 어렵게 구한 기회이니 그녀는 반드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며칠 동안 고객의 정보와 국제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훑어본 후 주말이 돼서야 임서우는 끝내 사로가 잡혔다. 하지만 또 한 번 임예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서우야, 나 오늘 드레스 피팅하러 가는데 함께 가줄래?” “오늘?” 임서우는 몹시 난감했다. “나 오늘 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언니 그냥...” “서우야, 나 하성이랑 결혼하는 거 아무한테도 안 알렸어.” 임예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너희 아직 이혼 안 했잖아. 다들 뒤에서 쉬쉬거리는 거 원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나랑 함께 골라줄 사람은 오직 너야. 와줄 수 있지?” 이렇게까지 말하는 한 임서우도 거절하기 어려웠다. 이참에 생각을 바꿔서 웨딩드레스 숍으로 구경하러 가면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녀는 펜과 종이도 함께 챙겼다. “알았어. 주소 보내줘 봐.” 임서우는 정리를 마치고 곧장 드레스 숍에 도착했다. 임예지는 임씨 가문 외동딸인 데다 성수시 최고 명문가에 시집가니 드레스도 반드시 제일 좋은 거로 선택할 것이다. 임서우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각양각색의 정교한 디자인의 드레스에 시선이 확 사로잡혔다. 웨딩드레스가 여자의 로망이라면 이곳은 바로 가장 몽환적인 천국일 것이다. 임예지는 안에서 최신상 드레스를 피팅하고 있었다. 임서우는 혼자 드레스를 자세히 둘러봤다. 그녀도 한때 본인이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강하성과 웨딩마치를 올릴 꿈을 꾸었었지만 현실은... 제대로 된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했다. 이때 불쑥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투 속에 야유가 은근 담겨 있었다. “왜? 너도 입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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