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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김병호가 그녀에게 사인하라고 한 것은 온씨 집안에서 돈을 받으면 반드시 이혼한다는 계약서였다. "박민혁이 당신들보다 더 조급해해요." 김수지는 사인하고 싶지 않았다. 양이나를 생각할 때마다 모녀간의 따뜻한 정이 전혀 없기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뱃속에 아기가 있으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양이나에게 어느 정도 호감이 생겼다. 임신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양이나가 자신을 이 세상에 데려온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안돼. 네가 사인을 하지 않으면, 돈을 받고 나서 또 다른 수단을 써서 이혼하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러면 우리 수연이의 행복이 보장 안 되잖아." 김병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맞아. 우리가 너에게 주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엄마 아빠가 안심하게 해주면 안 될까?" 양이나가 이어 말했다. "하하." 김수지는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김병호는 날 딸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어요. 당신도......" 사실 감정이 별로 없었지만, 입만 열면 김수연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사랑을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 "사인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마." 김병호는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아예 최후통첩을 내렸다. "한 달 안에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박민혁도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 말은 사실이었다. 김수지는 박민혁이 정말 그녀를 어떻게 할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그가 김수연을 위해 그녀에게 무슨 엉뚱한 짓을 할까 봐 두려울 뿐이었다. 그녀는 도박할 수 없었고, 이 일로 더는 슬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요, 사인할게요." 김수지는 계약서에 이름을 썼다. "돈은 빨리 주시는 걸 잊지 마세요." "안돼. 수연이가 현금으로 주라고 말했어." 김병호는 계약서를 거두었다. 김수지는 어리둥절했다. "네?" 김병호는 확실하게 말했다. "수연이가 직접 너에게 줄 거야." 뭘 무서워하면 뭐가 온다더니, 김수지는 놀란 나머지 뱃속의 아기를 만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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