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신세희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소경처럼 우수한 벤츠남한테 여자친구가 부족할 리가 없지. 부소경이 나랑 결혼하는 이유는 곧 돌아가실 어머니에게 여한을 남겨주지 않기 위해서일 뿐이야.
부소경의 여자친구가 임서아 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삶은 항상 그녀를 불행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은 점점 행복해지고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는데… 그녀는 앞길도 망가져 버렸고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도 그 사람의 이름이 뭐인지도 알지 못했다.
짚신처럼 짝이 딱 맞는 두 사람을 보니 신세희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무래도 내 앞에서 남자친구 자랑하려고 날 집으로 부른 것 같아. 엄마 사진 가지러 오라는 건 전부 다 핑계고 말이야.
그녀는 쓸한 마음을 감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처럼 흠 있는 여자가 어디 가서 잘난 떡두꺼비 사위를 얻어오겠어?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야. 집에 손님이 있었네. 그럼 더 이상 방해 안 할게. 우리 엄마 사진이나 좀 줄래? 바로 가게.”
그녀는 부소경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부소경의 얼굴에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임씨 저택에 찾아오고 싶지 않았다. 단지 임서아가 자신의 목숨을 살렸다는 사실 때문에 할수없이 일부러 시간 내 찾아온 것이었다.
여기서 신세희를 마주치다니, 부소경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서로 모르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이 임지강과 허영의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신세희는 모르고 있었다. 그날 같이 밤을 보낸 남자가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룻밤 사이에 남성에서 제일 잘나가는 남자가 됐다는 사실을.
임서아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는 신세희에게 뭐라하기 시작했다. “신세희, 내 남자친구 오자마자 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내 체면은 살려줘야지. 내 남자친구가 오해하겠다. 우리 집이 너한테 뭐 못 해줬다고 말이야.”
신세희는 고개를 돌렸고 같은 시각 임서아는 부소경에게 뭐라 말하고 있었다. “소경오빠는 모르죠? 우리가 쟤를 10살 때부터 거둬줬거든요. 입혀주고 재워주고 먹여줬는데… 근데 나쁜 것만 배워와서는! 대학교 2학년 때 그만 감옥에…”
부소경은 혐오가 가득 찬 눈빛으로 신세희를 흘겨보며 임서아에게 말했다. “이런 사람이랑 놀지 마.”
“소경 오빠 말대로 할게요. 근데 밥 한 끼 정도는 집에서 먹게 해야지 않겠어요? 그래도 우리 집에서 8년이나 지냈는데. 우리가 쟤를 얼마나 아껴줬는데요.” 임서아의 말투는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그녀는 부소경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신세희를 조롱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부소경과 꽁냥대는 모습을 신세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부소경에게 들키는 게 두렵지만 않았어도 임서아는 신세희에게 솔직하게 말했을 것이다. ‘네가 소중한 순결로 살린 남자가 바로 남성에서 제일 잘나가는 남자라고. 그리고 그 남자가 지금은 내 남편이라고.’
그녀는 신세희가 분에 겨워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임씨 집안 사람들이 사진 얘기를 꺼내지 않자 신세희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밥 먹고 갈게.”
안 그래도 저녁을 어디서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깍두기가 되고, 다른 사람들의 무시를 받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엄마의 사진만 받을 수만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니까.
그녀가 자리에 앉자. 허영은 그제야 사진 두 장을 신세희에게 건네주었다. 엄마의 사진을 확인하자 신세희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조사도 못 했는데… 여기서 밥을 먹어야 한다니…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이 가슴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꼭 부소경이 주는 돈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엄마의 죽음에 대해 조사할 것이다.
만약 임씨 집안이 엄마를 해친 거라면 반드시 백배로 돌려줄 것이다.
그녀는 사진을 가방 안에 넣은 뒤 소파의 구석에 앉았다.
임씨 집안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부소경과 얘기 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도련님, 서아랑 결혼하는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소경에게 굽신거리는 임지강의 모습은 무척이나 비굴했다.
임지강과 허영은 아직도 신세희 앞에서 자랑을 하고 있었다.
“당신 딸이랑 결혼할 겁니다. 대신 결혼식은 두 달 뒤에 올리는 걸로 하죠.” 부소경의 말투 무척이나 차가웠다.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결혼 얘기를 하는 임씨 집안의 행동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신세희!
합법적인 부부가 되었는데도 이렇게 모르는 척을 하다니.
어린 나이에 수완이 이렇게 높다니.
부소경의 차가운 모습에 임지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도련님 말대로 하겠습니다...”
임서아는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소경 오빠, 난 더 못 기다리겠어요. 두 달 뒤면 날씨도 추워지잖아요. 그럼 웨딩드레스발 안 받는단 말이에요. 난 이 번달에 하고 싶은데… 안 돼요?”
부소경은 애교 부리는 여자를 유독 싫어했다. 임서아가 그를 도와주지만 않았어도 바로 자리를 뜨는 건데.
그는 차갑게 대답했다. “결혼식은 두 달 후에!”
임서아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알… 알았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험악하게 째려보았다.
신세희는 주방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언제 결혼하는 게 나랑 뭔 상관이라고?
그녀는 배가 고팠다.
그녀 몸에는 또 다른 생명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배가 자주 고팠다.
험악한 시선이 느껴졌는지 신세희는 고개를 돌려 임서아를 쳐다보았다. “밥 먹을 시간이야?”
“…” 임서아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소경도 신세희를 주시하고 있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신세희의 모습이 그의 심장을 울렁이게 했다.
하인들은 음식을 식탁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신세희의 눈에 황도 푸딩이 들어왔다.
황도 푸딩은 임서아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였다.
푸딩이 식탁에 올라오자마자 신세희는 그걸 먹어버렸다. 그녀는 임서아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너…” 임서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허영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옆에 있는 부소경 때문에 차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녀는 가식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세희야, 몰랐네. 네가 디저트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은.”
“네. 먹고 싶었는데 계속 못 먹었거든요. 오늘 드디어 먹어보네요.” 신세희는 푸딩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허영은 이를 악물며 웃어 보였다. “뭐가 또 먹고 싶은데?”
신세희는 고개를 들어 식탁을 쳐다보았다. “매운탕, 새우튀김, 브로콜리…”
신세희는 그들이 속으로 자신을 저주할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근데, 본인들이 굳이 밥 먹고 가라고 말렸잖아?
배 속에 있는 아이가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다. 아이가 배부르게 밥을 먹는 것, 그것이 그녀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이 세상에는 그녀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다. 내가 날 챙기는 수밖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전 이제 배가 불러서, 먼저 가볼게요.”
임서아는 부소경에게 애교도 부리지 않고 질투와 증오가 섞인 말투로 신세희를 도발했다. “날이 어두워져서 그래? 그래서 그렇게 서둘러 손님 받으러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