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재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날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하는 수 없이 수술 동의서를 꺼냈다. "생각 끝냈어요? 혹시라도 수술에 문제가 생기면 일이 어려워질 겁니다." "의사 선생님, 전 선생님 믿어요, 정말요." 나는 종이와 펜을 받고 신속하게 사인했다. 나의 생사였기에 내가 당연히 결정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더 뭐라고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사무실 누군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와서 소리 질렀고 누가 날 세게 밀었는데 난 중심을 잃고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난 눈앞이 까매지는 걸 느꼈고 뜨거운 액체가 이마에서 흘러내려 시야를 가리는 걸 느꼈다. 사무실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모두가 큰 소리로 소리 질렀다. "무슨 주임 의사가 이래요? 돈을 그렇게 많이 썼는데 다시 수술해야 한다니요?" "당신들 다 사기 아니에요? 그때 종양이 제거됐다고 했는데 왜 다시 재발했는데요?" "사기꾼 의사, 돈을 위해서 사람 노릇을 안 하네, 당신 가만 안 둬!" 나는 이마를 잡았고 완전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나의 옷을 밟았고 내가 아무리 힘을 써도 잡아당길 수 없었다. 사무실은 난리였고 몇 분 뒤 경비원이 도착해서야 쌍방은 싸움을 멈추었는데 그때 누군가 소리 질렀다. "피 났어요, 사람 죽겠어요!" 나는 모두가 날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뒷걸음쳤고 결국 간호사가 날 부추겨 일으켰다. "강하연 씨, 괜찮으세요? 먼저 저랑 같이 상처 처리하시죠." 하지만 그녀의 힘은 너무 약해서 날 일으킬 수 없었고, 그때 의사 선생님도 걸어와 같이 나를 일으켰다. 나는 그의 한쪽 안경알이 깨진 걸 보았고, 머리도 흐트러진 걸 보았다. 맞은 게 뻔했고 얼굴에 손톱자국도 있었다. 나는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몸이 너무 허약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해요, 강하연 씨만 힘들게 했네요, 수술은 아마 미뤄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머리를 저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 같은 사람은 하루를 더 살든, 덜 살든 큰 상관이 없었다. 아무도 나의 생사에 관심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 진술을 받으러 왔을 때야 나는 컨디션이 조금 회복되었다. 여자 경찰은 날 동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많이 아프신 것 같네요, 이번에 소란 피운 사람들을 모두 잡았으니 배상을 요구해도 됩니다." "가족분한테 연락했으니 바로 올 겁니다."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족이요?" "네, 하지만 남편분 비서가 받았어요, 걱정 마세요, 올 겁니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올까? 모르겠어, 경찰에서 연락 갔으니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때 사무실에 환자가 두 명 더 있었는데 나와 의사 선생님만 다쳤다. 옆에 있던 환자는 나한테 재수가 없었다고, 다들 괜찮은데 내가 제일 심하게 다쳤다고 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재수가 없었어.' 겨우 수술할 돈이 생겼는데 수술이 미뤄졌고, 지금 내 몸 상태로 수술을 미뤄도 될지 알지 못했다. 응급실에 모두가 가족들과 함께 있는 걸 보며 나는 마음이 복잡해 났다. 의사 선생님의 와이프와 딸도 그를 둘러싸고 눈시울을 붉혔는데 그는 계속 그들을 위로해 주고 있었고, 난 부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집도 그랬던 적 있었는데, 아쉽게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나는 힘껏 코를 훌쩍이며 기대하지 않은 채 기다렸다. 하지만 의외였던 건 배지훈이 정말 왔고, 여진아도 같이 따라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마에 한 바늘 꿰맸고, 봉합하던 의사 선생님은 계속 잔소리했다. "상처가 머리카락 속에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흉터가 지면 얼마나 안 예쁘겠어요?" 나는 그녀의 뒤에 있는 유리에 비친 나를 보았다. '뼈밖에 안 남았는데 뭐가 예쁘다고?' 바로 그때, 배지훈이 온 것이었다. 여진아가 먼저 다가가 의사 선생님한테 내 상황을 물었다. 한 바늘 꿰맸다는 소리를 들은 여진아는 경멸하는 눈빛을 하고 말했다. "고작 이 정도에요? 하연 언니, 오늘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 계약이 있었는지 알아요?" "대표님이 언니 위해서 영상 회의까지 미뤘어요, 뭐가 중요한 일인지 모르시네요." 의사 선생님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병원에 있어?" 배지훈은 나한테 걸어와 날 내려다보았다. "입원하려고." 나는 암에 걸려서 입원해서 수술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연 언니, 한 바늘 꿰맸다고 입원하는 건, 너무 오버 아니에요?" "대표님한테 문제밖에 안 만들어 주네요, 언니 전화 한 통에 그렇게 중요한 계약도 미뤘는데, 회사 손실은 누가 책임져요?" 여진아는 한발 다가와 배지훈과 나란히 서 있었고 사모님 행세를 했다. 조금 전 경찰이 배지훈한테 전화했다던 말이 떠올라 나는 그녀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전화한 게 아니란 걸 알잖아요."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배지훈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날 차갑게 바라보았다. "강하연, 내가 널 얕잡아 봤어, 동정받으려고 정말 무슨 짓이든 다 하네." 그는 몸을 숙여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날 바라보았다. "개까지 이용하다니, 너 정말 대단하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고 소리 없이 웃었다. '며칠이나 지났는데 이제야 몽이가 이웃집에 간 걸 발견한 거야?' "강하연! 무슨 낯짝으로 웃어? 네가 이런 사람인 줄 내가 전에는 왜 몰랐을까?" 그가 나의 옷깃을 잡으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의 손을 내리쳤다. "누구세요? 강하연 씨가..." 간호사가 해명하기도 전에 여진아는 억울한 표정으로 배지훈의 소매를 당겼다. "대표님, 간지러워요, 알레르기 생긴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심해?" 배지훈이 다정하게 그녀의 팔을 들었는데 역시나 빨개 있었고 그는 아주 마음 아파했다. "개가 있다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의사 선생님한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