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웃음거리

대학교 졸업 후, 내가 가난뱅이 남자 친구를 차버리고 재벌 2세랑 출국했었다. 2년 뒤, 차이고 다시 귀국했지만, 그사이 전 남자 친구는 성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나랑 결혼했고, 사람들은 그가 과거를 잊고 나를 깊이 사랑하는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결혼 후 그가 끊임없이 여자를 바꾸면서 나한테 복수했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그가 나한테 왜 신경 안 쓰냐고, 왜 질투 안 하냐고 물었고 난 그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 곧 죽을 텐데, 신경 쓸 게 뭐가 있겠어?' ****** 결혼 3주년, 배지훈은 여진아와 함께 바닷가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난 소파에 쭈그리고 누워 그한테 계속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께서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수화기 너머로 기계음이 들려왔고 난 완전히 기절해 버렸다. 다시 깨어났을 때, 난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날 보며 머뭇거렸고 난 차분하게 물었다. "저 얼마나 더 살 수 있어요?" 의사 선생님은 형식적으로 말했다. "만약 지금 수술하고 정기적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면 희망은 있습니다." 난 무표정하게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벌써 두 번째 재발이에요." 가슴에 다시 세밀한 통증이 몰려왔고 이마에도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강하연 씨, 지금 새로 나온 약이 암세포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맞는데 천만 원이 들어요." "수술 후에 6개월만 꾸준히 맞으면..." 의사의 말이 끊겼다. 그도 나한테 돈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난 배성 그룹 대표 사모님이었지만 돈이 한 푼도 없었기에 병을 계속 미루고 또 미룬 것이었다. 난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정리하고 말했다. "수술부터 예약해 주세요." 몇백만 원 하는 수술비는 아마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슴에 걸린 펜던트를 만지작거렸고 마음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렀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이웃 아주머니께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먼저 찾아갔다. 아주머니는 날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몽이한테 감사해야지. 몽이가 짖지 않았으면 네가 쓰러졌는지도 몰랐을 거야." "119가 빨리 와서 다행이지, 요즘 젊은이들, 건강 잘 챙겨야 해." 몽이는 내가 입양한 래브라도 리트리버였다. 내가 배지훈이랑 결혼한 지 한 달 되던 날, 그가 여자를 데리고 신혼 방에 왔었다. 내가 집에 온 걸 봤지만, 그들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내가 듣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듯 더 크게 신음을 냈다. 그러고는 인과응보라고 했었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사정했는데도 네가 돌아보지 않았잖아, 이게 다 네가 자처한 거야." 난 그와 크게 싸웠고 실망해서 집을 나왔는데 몽이를 만난 거였다. 전염병에 걸린 채 동물병원 앞에 버려졌던 몽이, 의사는 투덜거리며 몽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절망스러운 몽이의 눈빛을 본 순간, 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몽이도 나처럼 병으로 망가져 갔고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었다. 우린 모두 버림받은 거였다. 나중에 내가 금목걸이를 동물 병원에 줬고 몽이를 구해달라고 했었다. 이번엔 몽이가 날 구했다. 몽이는 내 다리를 비비며 나에게 기뻐하는 눈빛을 보냈다. 난 울먹였고 몽이의 머리를 만져줄 수 없었다. "아주머니, 제가, 아마 한동안 입원해야 할 것 같은데, 몽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웃집 아주머니 골든 리트리버가 작년에 죽었었기에 난 아주머니가 무조건 날 도와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역시나, 아주머니가 동의했고 나한테 몸조리 잘하라고 했었다. 몽이가 아주머니와 따라가는 걸 보고서야 나도 안심했다. '내가 죽더라고 몽이를 보살필 사람이 생겼네.' 집에 돌아와서야 난 내가 자신을 과대평가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한테는 몇백만 원 하는 수술비도 없었다. 배지훈은 확실히 통쾌했었다. 내 옷이며 가방이며 액세서리들은 모두 최고로 비싼 거였다. 사람들 앞에서 난 영원히 화려한 배 사모님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연회에 참가하는 드레스와 액세서리들은 모두 그가 동의해야 비서가 원격 조종으로 집안의 옷장을 열어주었다. 그는 내가 이 집을 위해 공헌한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누릴 수도 없다고 했었다. 다시 휴대폰을 보니 회사의 가십 단톡방에서 아직도 어제 배지훈과 여진아의 일을 토론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표님 이번에 진짜 아니에요? 애인을 원래 한 달에 한 번 바꾸지 않았어요?] [무조건 진짜일 거예요, 여진아가 대표님이랑 3개월 되지 않았어요?] [어제 5월 20에 두 사람이 바닷가에서 불꽃놀이까지 했던데, 너무 낭만적이에요. 여진아가 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봤어요? 너무 눈부시더라고요!] [배 대표님이 5월 20에 결혼하지 않았었어요? 우리 참석했던 것 같은데?] 나는 자조하듯 웃었다. 동료도 어제가 우리 결혼기념일인 줄 아는데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난 어제 원래 그와 진지하게 얘기 나누려고 했었다. 우리 엄마가 남긴 물건을 돌려받고 서로 좋은 방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다 이미 식어버린 식탁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다 난 문을 나섰다. 지금의 나는 그가 필요 없고 돈이 필요했다. 배성 그룹에 도착하자 여진아가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칭찬을 받고 있었다. "진아 씨, 대표님이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야? 이거 몇백만 원 하지 않아?" "눈 잘 뜨고 봐, 이건 M 브랜드 신상 목걸이잖아, 몇천만 원이라고." 여진아는 의기양양하게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내가 좋다고 하니까 사준 거야." "내가 너무 비싸다고 했는데, 비싸야 나한테 어울린다고 하더라고." 나는 사무실 앞에 서서 차갑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비참한 현실이었다. 난 수술비 몇백만 원이 없어서 죽게 생겼는데 배지훈은 애인한테 몇천만 원씩 하는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다. 여진아는 나를 처음 보는 거였는데,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부서야? 회사 규정 몰라?" 그녀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날 보더니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진아 씨, 저분이 사모님 강하연 씨야." 여진아의 눈에는 순간 당황이 비쳤지만 뭔가가 떠올랐는지 바로 다시 오만하게 변했다. "저분이 그 유명한 퀸카 강하연이야? 꼴이 왜 저래? 그냥 웃음거리인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