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장

송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옅은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멈췄다. 곧이어 머리를 돌리고 한재혁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녀는 일부러 놀란 척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어머, 재혁 씨도 여기서 식사했어요?” 그러고는 몹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한재혁은 그녀의 물음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따라와.” 송유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그를 따라갔다. ‘정신줄 잡자! 정신 똑바로 차려!’ “재혁 씨도 오늘 여기서 약속 있었나 봐요?” 한재혁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녀만 빤히 쳐다봤다. 송유진은 그의 뜨거운 시선이 불편했던지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되물었다. “왜 그렇게 봐요?” 이때 한재혁이 그녀의 볼을 가볍게 만지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얼굴은 왜 이래?” 그녀는 순간 몸이 움찔거렸지만 곧바로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진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가 대답을 피하려 하니 한재혁도 더는 캐묻지 않고 차 문을 열어주었다. 송유진은 고맙다고 인사한 후 조수석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매려고 할 때 무심코 2층 창가에 서 있는 배도현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순간 송유진은 가슴이 움찔거려서 시선을 피했다. 운전석에 탄 한재혁은 그녀가 안전벨트를 그대로 잡고 있자 몸을 기울이고 대신 잘 매주었다. 송유진은 그제야 정신을 다잡았다. 한재혁은 사랑스럽게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왜 멍하니 있었어?” 이에 그녀가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런 거.” 이어서 운전하는 내내 송유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배도현이 전에 했던 협박들이 자꾸 뇌리를 스쳤으니까. 그녀는 내적갈등이 점점 깊어졌다. 배도현을 통해서 한재혁에게 둘 사이의 관계를 알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신분으로 한재혁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단 말인가? 지금 이 둘은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옛친구일 따름인데... 별안간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한재혁은 운전하느라 벨 소리를 듣고 조수석에 앉은 송유진에게 부탁했다. “유진아, 대신 전화 좀 받아줄래?” 송유진은 난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