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장
임세린이 언제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6시, 혹은 7시, 어쩌면 8시.
어쨌든 이미 출근했을 것이다.
난 몸을 일으키고 약간 어지러운 방 안을 정리했다. 그리고 안방에서 나와 세수하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득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정교한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육세훈에게 준 것과 비슷했지만, 다른 케이스란 건 확실했다.
내가 너무 오래 지켜봐서 그런지, 또 혹은 임세린이 가기 전에 미리 당부했는지, 도우미가 나에게 말했다.
“사모님께서 나가시기 전에, 이건 주환 씨한테 드리는 선물이라고 하던데요?”
선물?
약간 궁금해졌다.
왜 임세린이 갑자기 나에게 선물을 준 건지.
그것도 시계 하나를.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 케이스를 열어보았다. 어제 육세훈에게 준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비싼 시계였다.
시계 옆에 쪽지가 놓여있었다.
그 위에 정교한 글씨로 이런 글이 적혔다.
“어제 잘했어. 선물이야. 잊지 말고 차고 다녀.”
내가 여러 번 봤던 임세린의 글씨였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봐봐!
이게 바로 배우인 나한테 주어진 상품이야.
난 그 시계를 손목에 찼다.
이 선물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임세린이 준 거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또 싫었다. 가식으로 내 자신을 지켜낸 증명이기도 하니까.
난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쐴 생각이었다. 원래는 어제저녁의 계획이었는데, 육세훈의 선물을 가져다주느라고 지체되고 말았다.
어제 못했던 산책을 오늘 할 생각이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또 번듯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지금의 난 과거의 강주환이랑 너무나도 달랐다. 사실 어디가 다른지 나도 잘 모른다.
굳이 말하자면, 아마 인생에 대한 태도?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도 난 태연하게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시간을 때우는 것과 별반 차이 없는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좀 어엿했으면 좋겠다.
외출하기 전, 도우미에게 만약 임세린이 물어보면 내가 나갔다고 알려주라고 했다.
그리고 강가에서 아주 여유롭게 산책하기 시작했다.
미풍이 내 귀가에서 스쳐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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