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요즘 나와 임세린은 거의 매일 관계를 가졌으니 임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난 임세린이 임신했을 가능성에 이유 모를 혐오감을 느꼈다.
임세린이 더럽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아기가 이런 헬 난이도의 가정 환경을 맞이하는 게 싫어서인지, 혹은 두 가지 다일 수도 있었다.
“임신 검사 결과지잖아.”
임세린은 나한테 숨기지 않았고,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일을 아주 쉽게 알려 주었다.
“너 어젯밤에 늦게 들어온 이유가 이 검사를 하러 갔던 거였어?”
난 애써 내 감정을 숨기며 에돌려 물었다.
“아니, 어제 브랜드 로고 업그레이드 케이스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미팅했어. 검사는 그냥 한 거야.”
임세린은 머리를 묶으며 어제 일을 얘기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이 눈빛이 차가워졌고 주위 공기마저 얼어붙었다.
“묻고 싶은 게 뭐야?”
난 오랜만에 느끼는 숨 막히는 공기 때문에 잠깐 망설이다가 바로 머리를 돌리고 말했다.
“그냥 물어 본 거야.”
하지만 임세린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나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오래였고, 내가 거짓말을 할 때의 습관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임세린의 당장 찢어버릴 듯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에 든 고무줄을 내려놓고 천천히 다가왔다.
“내가 임신하는 게 싫어?”
임세린이 직설적으로 내 진짜 생각을 말해버리자 난 깜짝 놀랐다.
“그럴 리가.”
난 임세린의 눈을 피하며 일어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임세린은 다가와 내 앞을 가로막고 문도 닫아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난 퇴로가 막혀 어쩔 수 없이 다시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하지만 내 눈동자는 여전히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넌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임세린의 표정은 갑자기 사나워졌고 말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서 그래. 넌 할 일도 많고 매일 바쁘니까 임신을 준비할 겨를이 없잖아.”
난 당연히 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임세린은 거절했다. 이유는 바로 내가 말한 그 이유였다.
그때는 유강우가 없었을 때라, 난 아주 쉽게 임세린의 말을 믿었고, 심지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사소한 일에는 많은 징조들이 숨겨져 있었고, 난 진작에 알아차려야 했다.
하지만 난 임세린을 너무 사랑했다. 하여 그런 사소한 일과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바보 같았다.
난 임세린이 나와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모습을 알고 있었으면서 그때는 왜 이런 일들을 못 본 척했던 걸까?
“그건 예전이고, 지금 회사 상황은 안정됐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임세린은 금방 묶었던 머리를 다시 풀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난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 씻고 올게.”
“지금 날 피하는 거야? 역시 아기가 싫은 거지? 왜?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임세린은 너무 예리했다. 내 작은 동작만 보고 바로 내 거짓말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