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한참이 지나고 고정태가 말했다.
“아라야, 너는 이미 운명에 따라 그 사람과 혼인신고를 했으니 앞으로는 네 생각대로 하렴. 내일 찾아가서 이혼하자고 얘기해.”
고아라가 먹던 것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 사람의 인품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른 채 이혼을 하라는 건가요? 그럼 결혼과 이혼을 너무 아무렇게나 막 하는 것 같잖아요.”
“난 네가 결혼한 상대가 금수저라는 걸 몰랐어. 그런 재벌들은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그들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넌 몰라. 그런 사람이 너와 혼인신고를 했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어쩌면 몸에 심각한 장애가 있을지도 모르지...”
“제가 봤을 땐 걸음걸이도 안정적이고 사지도 멀쩡해요. 장애는 없어 보였어요.”
고정태는 잠시 침묵한 후 말했다.
“아마도 그쪽에 문제가 있는 걸지도 몰라.”
고아라는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말했다.
“그 사람의 문제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죠?”
고정태는 화가 나고 어이없어서 어색하게 힌트를 주었다.
“내가 말하는 건 그 사람의 그쪽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겉모습만 사내의 모습일 뿐 사실은 내시 같은 거지.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 같은 대기업 대표가 어떻게 너와 갑자기 결혼을 할 수 있겠어? 너를 전혀 알지 못했잖아.”
고아라는 순간 깨달았다.
“아, 그런 뜻이었군요. 그건 정말 뭐라고 말하기 힘들어요.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바로 떠났으니 그 사람이 그쪽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시험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 일은 서로 감정이 없으면 할 수 없으니까요. 나중에 감정이 생기면 그때 다시 생각해볼게요.”
“사실은 그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할머니가 결혼을 재촉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분명 나와 이렇게 갑자기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할머니의 재촉을 막기 위해 나를 이용한 거라고요. 그리고 나한테 우리 관계를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어요. 우린 비밀 결혼을 한 거라고 말이에요.”
고정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넌 억울하지도 않아? 이유야 어찌 됐든 그 사람이 재벌이라고 해도 내일 가서 이혼하자고 말해.”
“내일이라니... 또 도시로 가야겠네요.”
고아라는 매우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산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매일 누군가의 재촉 없이 잠에서 깨어난 다음 4천 자를 업데이트하고 그녀의 꽃과 풀을 만지작거리거나 뒷마당에서 채소를 심거나 했으며 한가할 때에는 고정태가 그녀를 위해 지은 작은 정자에 앉아 여유롭게 독서를 하면서 향긋한 차를 음미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정태가 눈을 흘기자 고아라는 급히 말했다.
“알겠어요. 내일 가서 이혼에 대해 얘기할게요.”
고정태는 청경채를 볶고 나서 말했다.
“밥 먹자.”
고아라는 계란 팬케이크를 집어 들고 나가며 걸으면서 음식을 먹었다.
고정태는 그녀의 먹보 같은 모습을 보며 말했다.
“너 같은 무심한 성격이라면 부잣집에서도 달가워하지 않을 거야. 내가 무정해서 너한테 이혼을 강요하는 건 아니야.”
고아라가 답했다.
“전 이혼하는 거 신경 쓰지 않아요. 어차피 운명에 따라 한 번 혼인신고를 한 거예요. 숙명을 완수했으니 이혼하면 그만이에요. 슬프지는 않아요.”
감정이 없는데 슬퍼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내일 또 도시로 가야 한다는 게 좀 피곤할 뿐이었다. 집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게 훨씬 좋지 않은가.
고정태는 술 한 병을 가져왔고 고아라는 급히 두 개의 술잔을 준비했다.
“넌 이따가 산에서 내려가서 네 쇼핑백을 가져와야 하니까 술은 마시지 마. 넌 취하면 길가에 누워 자잖아. 나도 이젠 늙어서 성인인 널 옮길 힘이 없어. 예전처럼 어디서든 너를 업고 집에 올 수가 없다고.”
고아라는 그의 손에서 술병을 뺏어 두 잔 가득 따르며 말했다.
“제 주량은 제가 잘 알아요. 취하지 않으면 돼요. 사부님은 점점 잔소리가 많아지는군요. 어서 이 닭발 무침을 먹어봐요. 우리가 자주 먹는 가게에서 샀으니 맛있을 거예요.”
“뼈 없는 닭발도 있었는데 우린 술을 마셔야 하니까 천천히 씹으면서 먹어야 더 맛있다고 생각해서 뼈 없는 닭발은 안 샀어요.”
고정태는 먼저 달걀 팬케이크 한 조각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내 계란 팬케이크 요리 솜씨는 점점 좋아지는구나. 정말 맛있어.”
“그럼요. 누구의 사부인데요.”
고정태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며 말했다.
“네 말은 내가 네 덕을 보았다는 뜻이구나.”
고아라는 히죽 웃었다. 그녀는 닭발을 씹으며 술을 마시고 고정태가 즐기는 모습을 보며 이런 삶이 행복이라고 느꼈다.
띠리리링...
전화가 울렸지만 고아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전화는 아직 차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울리는 전화는 분명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고정태는 술잔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탁자 위에 놓인 전화를 집어 들고 전화를 받았다.
몇 분 후 그가 돌아와서 고아라에게 말했다.
“내일 나도 너와 함께 도시로 가겠어. 방금 주문을 받았는데 도시로 가서 해결해야 할 것 같아. 먼저 가서 해결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거절할 수밖에 없겠어.”
“이미 주문을 받았는데 거절할 수 있나요? 먼저 해결할 수 있는지 보고 가격을 협상한 다음 일을 해야죠. 매번 아무 생각 없이 주문을 받지 말고요. 사부님의 그 엉터리 귀신 잡는 능력으로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사부님은 벌써 귀신에게 잡혀갔을 거예요.”
“그것도 나쁘지 않군.”
고아라가 고정태를 노려보자 고정태는 항복하며 말했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방금 통화한 사람은 임영진 대표였는데 그분 누나의 삶이 매우 고달프다며 나한테 좀 봐달라고 했어. 귀신이 들렸는지 조카와 조카며느리가 갑자기 변해서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게 되었대.”
“귀신이 들렸다고 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누나라는 사람이 나쁜 일을 해서 아들 부부의 마음을 다치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들 부부가 그 분의 누나를 돌보지 않으려는 건 아닐까요? 수치스러워서 친정에 진실을 알리지 않은 거죠. 아니면 친정에서는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했든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아들이 엄마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 좋아하는 고아라는 얘기를 하면서 좋아하는 조개 요리를 먹었다.
“그건 묻지 않았어. 내일 가서 보자고. 임영진이 성공하면 나에게 큰 보상을 주겠다고 했어. 마침 이번달에 거의 거래가 없었는데 이번 큰 거래만 성공하면 다음 달 생활비도 해결돼.”
회사의 대표라는 사람들은 기업의 규모를 떠나 일만 해결이 되면 아주 많은 보수를 주었다.
고정태와 고아라는 산에서 살면서 쌀과 고기를 사는 데에만 지출이 필요할 뿐 야채는 스스로 재배한 것을 먹었고 기름 역시 직접 땅콩으로 짜서 만들었다. 때문에 평소 지출이 거의 없었던 두 사람은 단 돈 몇 푼만 있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침 너도 내일 이혼하니 사위가 어떤 사람인지 봐야겠어.”
고아라가 말했다.
“이혼할 사람인데 얼굴은 봐서 뭐해요.”
고정태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하긴. 그냥 너 혼자 가서 해결하렴.”
“고 선생님! 고 선생님!”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아라가 고정태를 향해 말했다.
“사부님, 제가 나가서 볼게요.”
고아라는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대나무 문 밖에서 손전등을 들고 서서 큰 소리로 고정태를 외치고 있던 남자는 고아라가 나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아라야, 사부님은 혹시 집에 계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