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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이준은 천천히 강서현의 곁으로 걸어가 그녀의 입에 약을 넣었다. “지혈에 도움이 될 거야. 붕대는 내가 다시 감싸줄게.” 그 말에 강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약을 먹은 후, 팔을 이준의 앞으로 내밀어 그가 붕대를 감싸주기를 기다렸다. 그의 앞에서 이렇게 순한 그녀의 모습은, 차재욱을 대하는 냉담함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그 모습에 차재욱은 마치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혀왔다. 이준은 그가 감은 붕대를 가차없이 뜯어내어 바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그러더니 지혈제 한 병을 꺼내 강서현의 상처에 발랐다. 이준의 그녀에게 약을 먹이는 것부터 붕대를 감는 것까지 일련의 모든 동작은 마치 가시처럼 차재욱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4년이란 결혼 생활 동안, 강서현은 그를 아주 사랑했었지만, 결국엔 이렇게 남들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강서현은 이준에게 자신의 병세를 말할지언정 그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았었다. 이런 차별적인 대우에 차재욱은 마음속으로 질투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좀처럼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강서현. 넌 나한테 네가 이런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한번도 말한 적 없어. 우리가 부부생활을 유지해 온 4년 동안 넌 나를 네 남편으로 생각이나 한 거야?” 피를 워낙 많이 흘린 탓에 강서현은 입술색이 약간 창백해졌다. 그녀는 차재욱의 말에 깜짝 놀랐다. 4년 동안, 그는 강서현이 이런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도 못했으면서 지금은 되레 그녀가 말하지 않았다고 나무라고 있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아마 진작에 발견했었겠지. 당시 아이를 낳을 때, 강서현은 행여 차재욱이 걱정할까 봐 자신의 병을 숨긴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차재욱이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재욱이 자신이 이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낳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녀는 그들의 결혼에 넘치는 애정과 가장 진실된 사랑만을 쏟아부었었다. 그녀만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차재욱의 음모일 줄이야… 차재욱은 진이나에게 아이를 선물해주고 싶어했었다. 때문에 아무리 그녀가 자신의 병세를 얘기했어도, 차재욱은 그녀의 생사 따위는 돌보지 않았을 것이고 무조건 아이를 낳도록 고집했을 것이다. 차재욱은 처음부터 끝까지 애정없이 그녀를 이용하기만 했었다. 이런 생각에 강서현은 당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저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강서현은 차재욱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이준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콩이에게 갈비찜을 만들어주려고 했었는데 보아하니 다음에 만들어야 할 것 같아.” 그 말에 이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네 몸이나 잘 돌보도록 해. 넌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어.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렸으니, 내가 삼계탕을 끓여줄게. 기력을 보충해야지. 콩이를 돌보는 일은 나한테 맡기도록 해.” 강서현의 무시와, 두 사람의 달달한 대화를 듣고 있자니 차재욱은 마치 온몸에 피가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차재욱은 강서현을 바라보는 이준의 눈빛에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콩이에 대해 언급할 때에도 그의 두 눈에는 행복이 가득 느껴졌었다. 문득, 차재욱의 머릿속에는 세 식구가 행복하게 지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도 한때 가져본 적이 있는 행복이었다. 차재욱은 질투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강서현과 이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강서현. 이게 네 대답인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넌 나를 네 남편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어. 차라리 그를 믿을지언정 나를 한번도 믿어 본 적이 없지. 정말 그랬던 거야?” 강서현은 부드러운 눈빛을 거두어들이고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딱 잘라 말했다. “그래.” 그 대답에 차재욱의 가슴 속 응어리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는 이를 꽉 악물었다. “강서현. 차라리 배우를 하지 그랬어? 이렇게 오랫동안 현모양처 노릇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네?” 그 말에 강서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두 사람 다 마찬가지야. 그동안 좋은 남자인 척 연기하느라 수고했어. 차재욱 대표님.” “강서현. 지금 내가 그동안 연기를 했다고 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네가 두 눈으로 똑똑하게 봤잖아. 요 몇 년 동안 너한테 잘해준 건 다 어디에 버린 거야? 네가 이렇게 냉혈하고 무자비한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어.” 강서현은 차재욱이 무슨 염치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시 진이나를 위해 그녀를 방패막이로 삼은 것도, 그녀를 속여 아이를 낳게 한 것도 전부 그의 짓이고, 그녀의 아들과 그녀 사이를 이간질한 것도 전부 차재욱의 짓이었다. 그녀가 정성들여 가꾼 그녀의 가정은 차재욱의 손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녀의 목숨과 바꾼 아들은 차재욱에게 무자비하게 빼앗겨버렸었다. 그녀의 모든 꿈과 희망은 그의 손에서 전부 망가져버렸었다. 차재욱은 그녀를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했고 여러 번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도록 했었다. 차재욱이 그녀에게 남긴 건 오직 악몽과 상처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현재 자신을 비난하는 건지 강서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를 떠올리며 강서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자비하다고? 당신은 나를 방패막이로 삼았고, 나를 속여 아들까지 낳게 했어. 그런 너랑 비교하면 난 아직 갈 길이 멀었어.” 그 말에 차재욱의 표정은 한껏 어두워졌다. “누가 널 속였다고 그래? 강서현. 말 똑바로 해.” 강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위해, 차재욱에게 당시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 자신의 기분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4년이란 시간이 지나니, 차재욱에 대한 원한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딸의 병세를 알게 된 그녀는 차재욱을 찾아가 복수하고 싶었다. 그는 그녀의 인생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딸까지 병에 걸리게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원한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녀가 현재 유일하게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직 콩이의 병을 고치는 것이었다. “과거의 일은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만 내 사생활에 신경을 꺼줬으면 좋겠어. 앞으로 우리는 학부모와 선생님 사이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강서현.” 차재욱은 강서현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의 손을 무자비하게 피하기만 했다. 이내, 그녀는 냉담한 표정으로 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 이 일은 차현승 학생의 소행으로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하마터면 한 아이가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전 학교 측에서 이 일을 엄중하게 처벌했으면 합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교장은 강서현이 자신에게 갑자기 말을 걸자 깜짝 놀라 온몸을 벌벌 떨었다. 강서현은 그가 높은 임금을 주고 초빙해 온 최고의 인재이고, 차재욱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차씨 가문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인 차현승 또한 함부로 처벌할 수가 없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교장은 이 일을 강서현에게 떠넘겼다. “강선생님, 제가 이 반을 강 선생님한테 맡긴 것은 강 선생님을 완전히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차현승 학생은 강 선생님과 차 대표님의 아이이니 두 분에게 저보다 더 좋은 교육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저는 무조건 강 선생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 말에 강서현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한마디 했다. “전 이미 오래전 이 사람과 이혼했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전 아무런 발언권이 없습니다.” 차재욱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강서현. 현승이는 네 아이야. 정말 현승이를 상관하지 않겠단 말이야?” 그러자 강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현승이를 신경 쓰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현승이와 부자의 연을 끊고 앞으로 절대 만나지 마.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럼 됐어. 우리는 그저 학부모와 선생님 사이일 뿐이야. 네 아들의 행동은 이미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혔어. 그러니까 반드시 사람들 앞에서 우현이에게 사과를 하고 300자 분량의 반성문을 써서 내일까지 나한테 제출하도록 해.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수업에 참여할 생각도 하지 말고. 이런 내 징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교장 선생님더러 나를 해고하라고 해도 괜찮아. 네 뜻대로 따를 테니까.” 이런 강서현의 매정한 모습은 마치 차현승이 자신과 아무런 사이도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이미 퇴사할 각오하기 했었다. 강서현은 겉으로는 온유해 보이지만 사실은 고집이 아주 세다는 것을 차재욱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일단 결정한 일은 누구도 저지할 수 없었다. 그가 반대하지 않자, 강서현은 장우현의 손을 잡고 말을 꺼냈다. “이의가 없다면 우리는 이만 가볼게.” 말을 마치고, 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차재욱은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조금 전 강서현을 그렇게 몰아붙였지만, 그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그는 강서현이 정말 자기와 아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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