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장

그를 보자마자 진이나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재욱아 미안해,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 내가 그때 수혈해 준 거 봐서라도 용서해 주면 안될까? 이젠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아직 쓸모 있는 거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봐줘.” 여자의 부모님들도 다가와 애원했다. “재욱아, 다 우리 탓이다. 이렇게 속여선 안되는 거 알면서도 이나가 널 너무 사랑하길래. 너 구하려다 죽을 뻔했는데 넌 여태껏 약혼식 미뤘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 거야, 이나도 헌신 많이 했어. 그러니까 우리 봐서라도 제발 용서해다오.” 애석하게도 차재욱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차가운 눈동자는 갈수록 어두워져만 갔다. “수혈해 준 거로 핑계 대지 마, 너한테 빚진 피는 진작 교통사고 때 다 돌려줬어. 진이나, 이젠 서로 빚진 거 없는 거야.” 진이나의 호흡이 덜컥 멈춘 순간이었다. 선을 그으려는 건가? 두 번 다신 수혈해 줬다는 걸 앞세우지 못하게 되는 건가? 여자가 차재욱의 손을 덥석 잡고 울먹였다. “재욱아, 나 버리지 마. 내가 언제든 너랑 현승이한텐 수혈해 줄 수 있어. 다른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네 옆에만 남게 해줘, 사모님 자리 안 가져도 돼. 근데 너 없으면 난 죽어.” 가련한 표정의 진이나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차재욱을 잃을 순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얼마나 오래도록 품은 꿈인데. 단번에 진이나를 밀쳐낸 차재욱이 천천히 몸을 굽혔다. 날카롭고 선득한 눈빛이 내리꽂혔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옆에 남아? 왜 널 거둬야 되지? 다리도 못 써, 애도 못 낳는 쓸모 없고 하찮은 걸 내가 왜!” 진이나가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재욱아, 내 다리 다 나았어. 이젠 무대에도 오를 수 있다고. 단장님이 그러시는데 연습 잘하면 분명 제일 큰 무대에 설 수 있을 거래. 꼭 네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존재가 될게, 강서현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게.” 차재욱이 진이나의 턱을 덥석 움켜잡은 채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