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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여민석은 얇은 입술로 그녀의 붉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흰 피부를 쓸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유 모를 분노에 조금 혼이나 내주려고 했지만 나중이 되자 여민석은 그 진한 입맞춤에 빠져들고 말았다. 피동적인 포지션의 유소정은 코앞에 있는 여민석을 쳐다봤다. 뜨거운 숨이 한데 얽혔다. 유소정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3년 동안 이건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하는 입맞춤이었다. 이 강제적이고 침범하는 듯한 입맞춤에 그녀는 정신 없이 빠져들었고 그녀를 또다시 깊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네 남자 친구도 이런 식으로 입을 맞추나 보지?” 여민석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코 끝이 서로 닿을 정도의 거리에 깊은 눈동자에는 하얗고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유소정은 살짝 입술을 벌린 채 무표정하게 그의 두 눈에 비친 자신을 쳐다봤다.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에게 반응하는 몸에 그녀는 수치스러워졌다. 비좁은 차 안의 분위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고 여민석은 별안간 악취미가 동했다. 그는 차가운 손가락으로 그녀의 피부를 살짝 두드렸다. 조금 차가운 촉감에 유소정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고 얼굴에는 거부감이 드러났다. “왜, 남자 친구를 위해서 순결이라도 지키겠다는 거야?” 여민석이 별안간 차가운 얼굴을 했다. 그윽한 두 눈동자에는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이 깃들어 있었고 커다란 손은 그녀의 목을 단단히 조르고 있었다. 유소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남자 친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홍조는 온데간데없이 목을 빳빳이 세운 채 말했다. “그래, 당신도 백은서 씨를 위해서 순결을 지키고 있는데, 나라고 왜 그러면 안 되는데?” 질책을 당한 여민석은 곤궁함에 분노가 터진 건지 아니만 그녀의 바람에 화가 난 건지 짙은 입맞춤이 다시 거칠게 팔고 들었다. 유소정은 그의 행위에 역겨워져 곧바로 손을 들어 뺨을 내려쳤다. “짝!” 그 싸대기에 차 안의 묘한 분위기는 깨졌고 여미석은 그대로 모든 행동을 멈춘 채 굳었다. 여민석은 붉어진 두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얻어맞은 얼굴이 순식간에 부어올랐고, 얼굴에는 손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차 안의 분위기는 다시금 얼어붙었다. 영하 20도보다 훨 떨어진 것 같은 냉랭함에 유소정은 닭살이 돋았다. 그녀는 자신의 충동적인 행위에 몹시 후회를 하고 있었지만 이미 늦었다.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치지. 하지만 이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백은서 씨에게 우리 둘의 행위를 보여주는 것도 서슴지 않을 거야.” 겨우 용기를 낸 유소정은 안개 너머 여민석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그 싸대기에 여민석은 입안 내벽이 상한 건지 입안에 온통 피비린내만 가득했다. 그는 혀끝으로 상처를 훑었다. 여민석은 한 손은 핸들에 올린 채 냉소를 흘렸다. “구정혁에게 전화해서 네 입으로 계약해지하고 백은서를 메인 게스트로 추천해. 그러면 방금 때린 건 없던 일로 해 주지… 휘청이는 유영 그룹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그 말은 유씨 가문으로 그녀를 협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소정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뱀잡이를 할 땐 급소를 노리는 것처럼, 그는 정확하게 그녀의 명맥을 잡아 쥐고 있었다. 차 안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한 채 그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띠리링.” 유소정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들어 통화를 끊으려는데, 아버지의 전화였다. 여민석이 먼저 그녀의 휴대폰을 받아 통화를 받은 뒤 스피커 모드를 눌렀다. “유소정!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스피커 너머로 유금산의 펄쩍 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소정은 여민석을 쳐다봤다다. 그의 오만한 미소를 본 그녀는 여민석이 유씨 가문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여 대표 환심을 사지 못한 거소 모자라 감히 화나게 하다니. 내가 어쩌다 너같이 철이 없는 아이를 낳은 것이냐? 왜, 사는 게 너무 편하니까 이제 막 나가려는 거야?” 유금산은 전화 너머에서 미친 듯이 퍼부었다. 말끝마다 질책이 뒤따랐다. “내가 오늘 한 말들 다 들었어? 우리 그 재고들 안 팔리면 파산하는 수밖에 없어.” 유금산은 버럭 호통을 쳤다. “유소정, 네가 지금까지 지낼 수 있었던 건 다 이 유씨 가문 때문인 거야. 만약 유씨 가문이 파산하면 여씨 가문 사모 자리에 네가 계속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유소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열 기회조차 없었다. 입술을 꾹 다문 그녀는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을 꾹 참았다. 가슴이 답답한 게 숨을 쉬는 것마저도 고통스러웠다. 사랑을 받지 못하니까 그런 거겠지? 그렇지 않으면 친아버지마저 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신을 탓하는 걸까? “알겠어요.” 한참을 침묵하던 유소정은 갈라진 목소리로 그 세글자만 말했다. 통화가 끝나자 유소정의 하얀 얼굴에 처량하고 완벽한 미소가 드리웠다. “여민석, 네가 이겼어.” 그녀는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은 뒤 연락처를 열어 구정혁의 번호를 눌렀다. 여민석은 한 손으로 핸들을 짚은 채 곁눈질로 올라간 그녀의 입꼬리를 쳐다봤다. 그 미소는 빼곡한 바늘이 되어 그의 심장을 찔렀다. 조금 아팠지만 그다지 선명하지는 않았다. “구 대표님. 정말 죄송하지만 계약을 파기하려고요.” 유소정은 여민석의 두 눈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전화 너머의 구정혁은 그녀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줄 알고 받았는데 계약을 파기하려 할 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유미오 씨, 왜 계약을 파기하려는 거예요? 스케줄이 맞지 않는 거예요? 촬영 시간은 조정이 가능해요. 무슨 문제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주세요. 저희가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잖아요.” 구정혁은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그의 최애 아이돌이란 말이다! 게다가 그는 여민석에게 200억을 배상하면서까지 유미같이 조용하지만 실력 있는 의사가 대중들의 시선에 드러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었다. 유소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몹시 가볍게 말했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요. 너무 바쁠 것 같아서요. 괜히 시간 낭비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막 귀국한 유학파 천재 의사 백은서 씨가 이 프로그램에 더 어울릴 것 같으니 가능하다면 고정 게스트로 그분을 추천하고 싶네요.’ 그 가벼운 말을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혔다. “네? 유소정 씨, 진심이세요?” 구정혁은 조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소정은 내내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여민석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네, 백은서 씨는 아주 뛰어나신 분이죠. 저희 모두가 동경하시는 분이에요.” “… 알겠어요. 해지 계약서는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위약금은 됐어요. 나중에 언제 시간 되시면 저희 프로그램에 놀러 와 주시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구정혁의 목소리에는 젊은 남자다운 설렘이 담겨 있었다. 유소정은 위약금이 필요 없다는 말에 한시름을 놓았다. “고마워요.” 통화를 끊은 뒤, 유소정은 감정을 가다듬은 뒤 공적인 말투로 말했다. “이제 만족해? 그만 가도 될까?” 여민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소정은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차가 빠르게 다시 움직이는 바람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차 문을 닫았다. 운전 중인 여민석은 왠지 모르게 가슴에서 열불이 들끓었다. 분명 유소정은 이미 계약을 해지했는데 왠지 모르게 불쾠다. 몹시 불쾌했다! 연속으로 신호를 몇 개나 지나치고 유소정이 메스꺼움에 구역질이 올라올 때 드디어 차가 멈춫었다. 유소정은 차 문을 열고 휘청거리며 나왔다. 안 그래도 창백하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우뚝 솟은 여 씨 별장을 본 그녀는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차에서 내린 여민석은 차갑게 굳은 유소정을 잡아끌고 별장으로 들어갔다. 천장이 높은 로비는 텅 비어 있었지만 유소정의 시선은 구석의 텅 빈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그녀가 2층에서 굴러 아이를 잃은 곳이었다. 유소정은 이미 깔끔하게 청소가 된 대리석을 쳐다봤지만 두 눈에는 핏발이 서버렸다. 복부에서도 자궁이 수축하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져 몸을 웅크린 채 몸을 살살 떨며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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