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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사모님. 그 국… 오래 끓이신 것 같은데 지금이 딱이에요. 버리면 얼마나 아까워요 도련님 오늘 돌아오신다고 하는데 위도 안 좋으시니 닭고기 국물이 딱 몸보신하기 좋곘어요.” 정윤지가 얼른 말을 건넨 뒤 이내 눈치껏 이쪽의 소리는 들리지 않게 마이크를 끈 뒤 여민석에게 보여주었다. 여민석은 이내 깜짝 놀랄 만큼 기침을 하더니 국을 두 번 마시며 기침을 눌렀다. “저 그 국에 침 뱉었어요.” 유소정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 크게 한 입 먹었던 여민석은 국이국이 그대로 목에 걸려 이대로 삼켜야할지 뱉어야 할지 몰라 굳어버렸다. 정윤지는 별안간 휴대폰이 이상하게 뜨거워져 떨리는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사모님, 언제 돌아오세요?” “앞으로 여 씨 별장은 안 돌아갑니다.” 유소정이 말했다. “사모님, 지금 어디세요? 혼자 밖에서 지내시는 건….” 정윤지는 진심으로 걱정이 됐다. 유소정이 막 시집왔을 때만 해도 얼굴에 아직 앳된 얼굴의 20살짜리 아이였다. 정윤지는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자기 아이 같았었다. 여 씨 별장에서 2년 넘게 지내는 동안 유소정은 매일같이 여 씨 별장에서 지냈고 친정 한 번 돌아가지 않았었다. “이미 지낼 곳 찾았어요.” 유소정은 빠르게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아주 안전해요.” 정윤지는 다시 휴대폰의 스피커를 끈 뒤 여민석에게 눈짓으로 의견을 구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사람으로서 아내가 친정으로 돌아갔을 땐 도련님이 직접 마중을 가는 게 가장 좋은 갈등 해결 방법이었다. “전해요. 10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카드 전부 정지시키겠다고.” 여민석은 차갑게게 말하며 국을 옆으로 밀었다. 정윤지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유소정은 그동안 내내 여씨 가문에서만 지낸 터라 여씨 가문에서 주는 생활비가 유일한 수입이었다. 유씨 가문은 믿을 게 못 되는 집안이라 유소정이 유씨 가문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지 않았지만 그동안 그들은 유소정을 통해 유씨 가문에서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려고만 애를 썼다. 이 다 늦은 밤에 모든 카드가 다 정지가 된다면 사모님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이모님, 제 안방 침대맡에 카드와 수표들 전부 두고 나왔으니까 여민석이 돌아오면 가져다주세요.” 유소정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전해졌다. 정윤지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시 한번 여민석에게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정말로 스피커를 껐는데 유소정은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여민석의 말을 맞받아친 걸까. “안에 있는 돈 한 푼도 안 썼으니까 LS 그룹 회계팀한테 맞춰봐도 돼요.” 유소정은 계속해서 논리정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결혼용 다이아 반지며 액세서리들 전부 서랍 두 번째 칸에 넣어놨으니까 부탁드릴게요, 이모님.” “사모님….” 정윤지는 정말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여민석은 티슈 하나를 꺼내 입을 닦은 뒤 세게 테이블에 내려쳤다. 참고 있던 화를 억누르기 힘든 모양이었다. “유소정에게 전해요, 만약 안 돌아오면….” “그리고, 도련님에게 전해주세요. 괜히 유씨 가문 괴롭히지 말라고요. 제가 한 밥을 3년이나 드셨으니 그 값을 봐서라도 아량을 베풀어달라고요.” 말을 마친 유소정은 전화를 끊었다. 미처 뱉지 못한 말이 목에 턱 걸렸다. 전화 너머로 뚝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고 정윤지는 휴대폰을 들고 있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사모님의 뜻은 도련님이 지금 3년 동안 공짜 밥을 얻어먹었다는 뜻인가? 도련님이 생활비로 준 돈을 쓰지 않았고, 도련님은 확실히 사모님이 해주신 식사에 익숙해졌으니 따지고 보면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여민석은 젓가락을락을 내던졌다. “이딴 거, 개도 안 먹을걸.” 정윤지는 더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여민석도 그걸 알아채고는 안색이 더 어두워지더니 서재로 돌아갔다. “오늘 일 어르신께는 한 마디도 하지 마세요.” 서재 문이 닫히기 전에 여민석이 말했다. 정윤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사흘간 유소정은 여 씨 별장으로 한 걸음도 하지 않았고 여민석은 집에 돌아 올 때마다 유소정이 보이지 않자 안색이 날아 갈수록 어두워졌다. 여민석의 옆을 따르는 비서인 서욱의 말에 따르면 여민석은 종일 저기압이라 지나가던 개도 LS 그룹 앞을 지날 때면 꼬리를 말고 지나간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딱 한 사람은 LS 그룹에 들어올 때면 최대한 화려하게 하고 들어왔다. 그 사람은 바로 구정혁이었다. 바로 구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으로 여민석의 많지 않은 라이벌이었다. 구씨 가문은 서울에서 비교적 청렴한 명문세가였다. 화학을 기본으로 가문을 세웠지만 게임 라이브 방송에서 거하게 벌어들였다. 구정혁은 아예 서울의 도련님들 중 가장 사차원으로 반경 500m 내엔 반드시 전여친이 있다고 할 정도로 즐기면 그만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된 프로그램은 바로 응급 의료 구급과 라이브를 결합한 방송이었다. 이런 예민하고 까다로운 호제에도 예능과 결합을 해 수천만 명의 구독자를 끌어낼 수 있는 건 전 세계에 오직 구정혁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서우가, 너희 집 멍청이 안에 있어?” LS 그룹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구정혁이 서욱을 향해 말했다. 서욱의 머리에 빠직 마크가 팍 돋았다! 서욱은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진정한 의미로 특수 부대의 우두머리였다. 부대에서 정예 부대로 훈련을 시키려고 간절히 남기려고 하던 인재였다. 지금은 그저 여민석에게 일찍이 생명의 은혜를 받은 적이 있기에 여민석의 곁에서 비서 노릇을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서욱에게는 전투력이 몸에 배인 날카로움과 엄숙함이 있었던 탓에 사람과 마주할 때면 저도 모르게 피하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었다. 오직 구정혁만이 그를 쫓아다니며 서우가라고 불러댔다. 구정혁은 주먹을 꽉 말아쥔 서욱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서류 하나를 꺼내 손에 탁탁 쳤다. “서우가, 내 손에 있는 서류 보면 여민석 분명 3초내에 웃음을 터트릴 거야.” 서욱은 입가의 근육이 움찔하더니 서욱을 도와 엘리베이터를 꾹 눌렀다. “정혁 도련님, 이쪽입니다.” “이번 회차 게스트 엄청 대단해. 온갖 풍파를 다 겪은 재벌가 어르신들 앞에서 자기 실력을 드러내야 하는 건데, 네 그 첫사랑 정말 대단하던데? 미녀 의사에서 아예 의료계의 빛이 되어버렸어.” 구정혁은 서류를 여민석의 앞에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파일을 들어 흘깃 본 여민석의 얼굴이 잠시 풀어졌다. “게스트는 백은서로 해. 투자 금액은 네가 알아서 적고.” 여민석은 파일에서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여민석은 서류만만 봐도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파급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구정혁이 데려온 환자들은 대부분 군부 요양원의 어르신들이었다. 여민석은 단박에 여씨 가문 어르신의 옛 동료들과 옛 부하들을 발견했다. 구정혁이 이 사람들을 데려왔다는 건 이번 회차는 정말로 남다르다는 뜻이었다. 이 파일이 공개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들이부을까. “민석이 형, 백은서한테 진짜 진심인 거야?” 구정혁은 여민석의 말을 듣자 되레 미간을 찌푸렸다. “은서의 실력은 걱정 안 해도 돼.” 여민석은 사인을을 하며 투자 금액란은 비워뒀다. “하지만 난 아직 ‘유미오’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구정혁의 얼굴에 이루 감출 수 없는 아쉬움이 떠올랐다. “미오?” 여민석은 혐오오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어느 전여친이야?” “그런 모욕은 하지 말아줘! 유미오 말이야, 내 아이돌! 이번 프로그램은 유미오를 위해 만든 거란 말이야!” 구정혁은 오바스럽게 떠들더니 금액에 100억을 적었다. 서욱은 미간이 움찔했다. 1억의 투자금액이라니, 같은 급의 프로그램의 예상 투자 금액의 3배가 훌쩍 넘는 금액을 저 망나니는 참 편하게도 적는다 싶었다. 하지만 구정혁은 여전히 아쉬운 얼굴을 했다. “마스크를 쓴 채 자원봉사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전문성 하며 그 실력, 그 침술, 그리고 그 비단결같이 하얀 피부에 봉긋한 가슴, 잘록한 허리는 36D에 절대로 60cm는 안 넘을 거야. 게다가 귓가에 있는 붉은 점은 정말….” 말하는 게 의술이 맞나? 서욱의 머리 위로 빠직 마크가 하나 더 늘었다. 더 말을 이어나가면 구정혁의 머리에는 온통 모자이크 화면 뿐이어싿! 하지만 여민석은 조금 넋이 나갔다. 유소정의 피부도 눈처럼 하얬다. 늘 단정하게 입어 가슴에는 눈이 가지 않지만 허리는 확실히 아주 얇았다. 고개를 숙일 때면 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가 드러났고 귀 뒤에는 작고 붉은 점이 하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뭐라고? 유미오가 게스트로 나오겠다고 했다고? 지금 당장 초대해!” 여민석이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 구정혁이 별안간 큰 소리로 외치더니 사인을 마친 계약서를 탁하고 여민석의 앞에 내던졌다. “나 계약 파기할래!” 여민석이 위험하게 번뜩이는 눈을 쳐다봤다. LS그룹과 게약을 맺자마자 파기를 하겠다는 건 구정혁이 처음이었다! 고작 유미오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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