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그래. 삼계탕은 물 좋고 공기 좋은 산에서 자란 야생 삼에 알찬....... 그리고 이 늙은 암탉은.”
삼계탕의 식재료에 관해 소개하던 유소정의 목소리가 뚝 멈추더니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여민석을 바라보았다.
"솥에 넣기 전에 이 늙은 암탉이 얼마나 생기 넘치는지 너도 보았잖아?"
유소정이 이 말을 하자, 여민석의 안색이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
식탁 위의 삼계탕은 평소처럼 국물이 뽀얗지 않고 국물이 탁하고 기름기가 떠 있었다. 게다가 국물에는 닭피 찌꺼기가 떠 있었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닭껍질에도 제대로 뽑히지 않은 솜털이 붙어 있었다.
‘이거 진짜 나 먹으라고 끊인 거야?’
"이 삼계탕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다른 것으로 끓여줄게. 이 보양죽을 맛봐.”
유소정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삼계탕을 가져가더니 검은콩 대추죽을 그의 앞에 내려놔 주었다.
전혀 식욕이 느껴지지 않는 삼계탕에 비하면 이 보양죽은 멀쩡해 보였다.
"너 먼저 먹어봐."
여민석은 왠지 모르게 경계심이 들었다.
유소정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 한 숟가락을 떠서 후후 불어 식히고는 그대로 삼켰다.
죽 한 숟가락을 먹은 유소정이 예쁜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죽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여민석이 그제야 안심하고 죽을 먹었다.
죽을 한 모금 삼킨 여민석이 곧바로 죽을 전부 토해냈다.
"콜록콜록! 유소정! 죽에 뭐 넣었어?"
미친 듯이 기침을 하던 여민석이 위엄 있고 잘생긴 얼굴을 곧바로 구겼다.
유소정은 그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정색하며 말했다.
"검은콩 대추죽에 넣은 건 당연히 검은콩이지. 용안과 대추는 비교적 달기 때문에 황련을 조금 넣어 단맛을 제거했어. 너,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유소정은 의아한 말투로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 모든 것이 모두 네 몸을 위한 것인데, 설마 네가 화를 낼 줄이야!’
"너 먹어.”
여민석이 굳은 얼굴로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정말?"
유소정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여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얇은 입술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옆으로 비켜섰다. 마치 그녀가 만약 이 보양죽을 다 먹지 못하면 죽여버리기라도 할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유소정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이 두 시간 가까이 끓인 보양죽을 우아하게 먹었다.
검은콩 대추죽은 모두 최고급 품질의 식재료를 사용했는데, 심지어 황련도 황련 중의 진상품인 아련을 사용했다.
애석하게도 여민석은 먹을 복이 없었다.
여민석은 온 정신을 집중해 죽을 먹는 유소정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그녀의 어떠한 표정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빤히 쳐다보았다. 만약 유소정이 조금이라도 고통스러운 표정을 드러내기만 한다면 그는 곧바로 화를 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소정은 황련의 쓴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마치 무슨 산해진미라도 먹는 듯 우아하게 음식을 먹었다. 하여 여민석은 조금 전에 혹시 자신의 미각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유소정이 이미 죽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정신을 차린 여민석의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가 검게 변하더니 또다시 하얗게 질리기를 반복하다가 그가 결국 이런 한마디를 내뱉었다.
"한 그릇 더 먹어! 먹고 나서 서재로 올라와 내 발을 씻겨주고 마사지해 줘.”
"알았어."
유소정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민석의 발을 씻기고 마사지 해주는 일은 그가 밖에서 일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셨을 때, 서욱이 그녀에게 연락해 아파트에 가서 여민석 시중을 들 때 하는 일이었다.
매번 갈 때마다 그녀는 해장 약차를 가지고 가서 여민석에게 먹인 뒤, 밤새 그의 몸을 마사지해 주었다. 여민석이 몸에 쌓인 피로를 풀고 될수록 빨리 해장해 다음 날 깨어났을 때 숙취로 고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유소정은 여민석이 자신의 이런 노력을 전혀 모르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삼 년 동안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을 리 없으니까.
유소정은 죽을 한 그릇 떠서 자리에 앉더니 느릿느릿 먹었다. 여민석은 이미 서재로 돌아간 터라 넓은 식당 안에는 그녀 혼자만 남았다.
유소정은 마치 아무런 감각이 없는 로봇처럼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고 쓴맛이 나는 죽을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먹었다.
‘황련이 아무리 쓴 들 내 마음만큼 쓸까?’
유소정은 죽을 먹으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주방 정리를 마친 정윤지가 그 모습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은 정말 너무 안 됐어!’
유소정은 죽을 다 먹고 나서도 오랫동안 머뭇거렸다. 여민석이 인내심이 다 닳아 화를 내려던 순간,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유소정이 서재로 들어왔다.
유소정은 울었는지 두 눈이 조금 붉어져 있었으나, 얼굴에는 웃음기를 띠고 말했다.
"일어나. 먼저 목욕해서 피로를 풀고 나서 물에 발을 담그면 조금 더 편할 거야."
그녀의 진심 어린 모습을 보니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여민석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곧장 샤워하러 들어갔다.
그가 샤워를 마치고 나서 나오자, 유소정이 이미 족욕제를 족욕 통에 푼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여민석의 손을 잡더니 그를 침대 위에 앉히고는 발을 족욕 통에 담가 물의 온도를 체크하게 했다.
여리고 작은 손이 조금 차가워 여민석이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나 유소정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자기 할 일만 했다.
족욕제는 유소정이 전문적으로 여민석을 위해 만든 것이었으나, 이번에 푼 족욕제는 다른 재료를 넣은 것이었다.
‘쇄양, 은양곽, 사상자 등은 모두 정력에 좋은 물건이지. 여민석이 백은서를 그리도 좋아하니 침대 위에서 무시당하고 싶지는 않겠지?’
유소정이 이런 생각을 하며 쓸쓸한 얼굴을 했다. 그들은 결혼한 지 삼 년이 되었으나 한 번도 같은 침대에서 잔 적이 없으니 잠자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민석은 십 분 정도 몸을 담그고 나자 온몸이 후끈후끈해져 매우 개운했다.
"누워봐."
유소정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여민석은 어쩐지 유소정의 말투가 별로 좋지 않다고 느꼈으나 그녀의 표정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그 말을 따랐다.
여민석이 침대에 누운 뒤, 유소정이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각도에서 보면 그의 복근 여덟 조각과 치골이 똑똑히 보였다. 그녀는 장난치듯 차가운 손끝으로 그의 복근을 찔렀다.
"유소정!"
여민석이 그녀의 차가운 손길에 놀라 깊은 두 눈을 어둡게 빛내며 소리 질렀다. 그가 온몸에서 위압감을 뿜어내며 얇은 입술은 꼭 다물고 큰 손으로 오일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유소정은 비록 손끝으로 그를 희롱했으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왜 그래?"
유소정이 그의 손을 밀쳐내고 오일 병뚜껑을 열었다. 이 오일은 열 가지 넘는 약초를 혼합해 만든 것인데 그 주요 목적이 바로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다.
유소정이 여민석의 몸에 오일을 바르고는 그의 피부를 가볍게 주물렀다.
여민석은 늘 사무실 앉아 일하나 그의 몸매는 남자 모델에 비견되게 멋졌다. 키가 크고 단단한 몸매는 상대방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다만 애석하게도 그에게서 안정감을 느끼는 상대는 그녀가 아니었다.
유소정은 순간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미 정해진 일이니, 내가 강요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네 복근 주변을 잘 마사지해 줘야 해. 복직근 양쪽의 천추혈이랑 대횡혈은 내분비 질환을 조절할 수 있어."
유소정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녀의 손이 여민석의 하복부 쪽을 가볍게 눌렀다.
유소정은 여린 손으로 혈 자리를 천천히 마사지하면서 복근의 피로를 풀어주었지만, 장난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작은 손은 마력이라도 있는 듯 닿는 곳마다 그에게 더 유린해 주기를 바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이런 이상한 생각을 깨달은 여민석이 유소정의 입가에 걸려 있는 웃음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손을 뻗어 그녀를 자기 몸 아래에 가두었다.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유소정, 너 일부러 그랬지?"
식사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겉으로는 여민석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듯 공손하게 굴었지만, 실제로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를 놀리고 있었다.
유소정이 길고도 풍성한 속눈썹을 바르르 떨며 막 설명하려던 차에 방 문 쪽에서 연약하지만 충격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