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민석아, 삼계탕 먹을래, 자라탕 먹을래?"
유소정이 예쁜 두 눈으로 여민석을 바라보며 기쁜 목소리로 부드럽게 물었다.
기가 막힌 여민석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조금 뒤 다시 연락할게."
수화기 너머의 백은서가 유소정의 목소리를 듣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여민석이 전화를 끊었다.
‘조금 뒤 다시 연락하겠다니? 유소정을 혼내려는 걸까?’
‘어떻게 혼내려는 거지?’
백은서가 주먹을 움켜쥐자, 손톱이 여린 살을 파고들었으나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거둔 유소정이 막 떠나려 하자 여민석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여민석이 잘생긴 얼굴에 위엄을 담아 백은서를 내려다보며 얇은 입술을 살짝 벌려 말했다.
"이제 만족해?"
"내가 왜 만족해야 하지?"
유소정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는 숨을 들이쉬며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숨고 싶었다.
그러나 시선이 그날 자신이 떨어진 자리에 머물자 유소정은 문득 용기가 솟아올랐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비굴하게 굴어야 하지?’
유소정을 살펴보는 여민석의 눈빛이 그녀의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에 머물렀다. 평소 늘 부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을 피하던 예쁜 두 눈이 지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잘났어, 그래."
여민석은 한동안 말문이 막혀 하다가 겨우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유소정은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더는 스스로 자기를 학대하고 싶지 않았다.
물잔을 들고 방으로 돌아온 유소정은 안청하의 전화를 받았다.
"미오야, 너 또 돌아갔어? 너 설마 바보처럼 그 멍청한 자식을 또 용서한 건 아니지?"
안청하가 성질을 참으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유소정이 방안의 소파 위에 앉아 등받이에 나른하게 몸을 기댄 채 두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비록 미친개에게 강제로 끌려왔지만 곧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어?"
안청하는 깜짝 놀랐다.
유소정이 어제 벌어진 일을 간단히 설명해 주더니 이마 위의 잔머리를 어루만지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될수록 빨리 해결할게."
"그래. 그럼, 넌...."
안청하가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른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발신자를 확인한 유소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어. 내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그래."
안청하의 전화를 끊은 유소정이 유금산의 전화를 받았다.
유금산에게 욕먹을 준비를 마친 유소정은 뜻밖에도 수화기 너머 유금산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정아, 우리 예쁜 딸, 억류된 물건 건이 이미 해결됐어. 역시 네 베갯머리송사가 대단하다니까.”
"어제 아빠가 네게 심한 말을 했다고 기분 나빠 하지 마. 여자는 시집가며 남편의 말을 잘 따라야 해. 네가 여 대표를 기쁘게 하면 우리 집안이 편안해져.”
유소정은 유금산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어제 여민석이 내게 감히 떠나겠다는 말을 다시 한번 꺼내기만 해 보라고 했던 말이랑, 아침에 잘났다고 했던 말이 이 뜻이었구나.’
비록 여민석은 여씨 가문의 사생아지만, 높은 IQ와 남다른 사람 다루는 기술로 상업계에서 제대로 자리 잡았다.
이런 채찍질하고 나서 당근을 건네주는 뻔한 수법이 그녀의 아버지인 유금산에게는 아주 잘 먹혔다. 유금산은 심지어 이것이 여민석이 그들 가문에 내려준 은덕이라고 생각했다.
유소정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마음속에 품었던 의문을 드러냈다.
"아빠, 최근 삼 년 동안 유씨 가문의 사정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요?"
며칠 전에 벌어졌던 일은 분명 처음이 아닐 것이고, 결코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유씨 가문의 돈이 모두 어디로 갔지?’
"왜, 내가 너더러 도와달라고 했다고 설마 우리 가문 사업에 손을 뻗으려는 거야? 유소정! 잊지 마. 너는 이제 유씨 가문 사람이 아니야. 우리 유씨 가문 사업은 너랑 전혀 상관없어!"
"너는 여 대표를 잘 돌보고 하루빨리 여씨 가문 자손을 낳는 것이 급선무야!”
말을 마친 유금산이 욕설을 퍼부으며 전화를 끊었다.
유소정은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시선을 들어 올려 천장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똑똑똑-"
방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도련님이 아홉 시 전에 검은콩 대추죽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알았어요."
유소정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이익으로 얽혀있는지라, 유씨 가문이 방금 여민석의 도움을 받았으니, 그녀가 아무리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도움을 받는 것을 봐서라도 어쩔 수 없이 그를 챙겨줘야 했다.
유소정은 마음을 가다듬고 방 문 앞으로 다가가 방 문을 열었다.
정윤지가 문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 다급하게 말했다.
"사모님, 제가 끓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련님이 사모님 음식에 맛 들인지라...."
"괜찮아요, 이모님. 저도 알아요."
유소정이 부드럽게 웃었다.
‘만약 내가 삼 년 동안 여민석에게 끊임없이 보양 음식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그가 어찌 이런 습관이 들었겠어?’
‘모두 내가 자초한 거야.’
유소정이 피식 쓴웃음 지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떠나 살 수 없는 것은 아니지. 그러니....’
유소정이 문득 두 눈을 반짝이며 즐겁게 웃었다. 그녀는 문득 무엇인가 깨달은 듯 더는 기죽은 표정이 아니었다.
정윤지가 유소정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사모님은 정말 너무 안 됐어. 사모님이 어떻게 사는지는 사모님 본인과 매일 사모님과 함께 하는 나만이 알고 있지.’
‘그러나 사모님은 무슨 마력이라도 있는 듯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활기 넘치지.’
서재 안.
여민석이 컴퓨터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문득 아래층에서 "펑펑펑"하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하게 방 문 쪽을 바라보았다.
여씨별장의 방음은 나쁘지 않았다. 5미터에 가까운 층고가 있으니 아래층에서 나는 소음이 이 층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또 한차례 "펑펑펑"소리가 들려오더니 곧바로 "탕탕탕"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쉬지 못한 여민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밖으로 나갔다.
그가 문을 열고 복도로 걸어나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유소정이 쇠 대야와 나무막대기를 들고 "탕탕탕" 두드려대며 이미 털이 절반쯤 뽑힌 닭을 쫓고 있었다.
닭의 목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닭은 조금도 멈출 기미가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여민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아래층의 이 난리를 구경했다. 그의 시선이 하얀 타일 위에 떨어진 닭피에 머물더니 곧바로 얼굴을 굳혔다.
“유소정! 지금 뭐 하는 거야??”
여민석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난리 통이 벌어진 거실에서 유소정이 걸음을 멈추고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들어 여민석을 쳐다보았다.
"닭 잡는 것을 구경한 적이 없어? 네가 삼계탕을 먹겠다고 해잖아?"
말을 마친 그녀가 비난 가득한 얼굴로 반쯤 죽었으나 아직도 정력이 왕성한 닭을 계속 뒤쫓았다.
여민석은 너무 화가 나서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는 닭을 잡는데 이렇게 큰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게다가 식재료를 보내온 사람이 닭을 죽이지 않고 그냥 보내왔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 분 뒤, 피를 거의 다 흘린 닭이 끝내 유소정에게 붙잡혔다.
유소정은 주방에 들어가기 전에 닭을 들어 올려 그에게 자랑하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맛있게 끓여줄게."
꿀이라도 바른 듯 달콤한 목소리가 그의 심장을 자극했다.
여민석은 그제야 유소정의 목소리도 이렇듯 듣기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식을 만드는 유소정의 손동작이 매우 빨랐다. 그녀는 식재료를 간단하게 씻은 뒤, 곧바로 솥에 넣고 끓였다. 삼계탕을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점심 열한 시.
흰 요리사복을 입고 앞치마를 두른 유소정이 꼿꼿하게 식탁 옆에 서 있었다. 여민석은 어두운 얼굴로 식탁 위의 삼계탕과 보양 음식을 바라보더니 이를 갈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소정, 네가 사심을 담아 이 탕을 끓인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어?”